2030년 3월 14일 목요일 새벽 3시(춘분 6일 전)
강태석 소장의 손목이 심하게 떨렸다. 시계를 봤다. 잠이든지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다음 주 있을 학회 발표 준비로 계속 야근을 한 탓인지 머리도 띵하고 눈이 떠지질 않았다. 손목을 흔들자 황정민 박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장님, 큰일 났어요. 빨리 재단으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그는 눈을 뜨려고 했지만 눈꺼풀이 자꾸 내려앉았다.
“황 박사, 무슨 일인데?”
그는 크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했어요.”
“지난번에도 있지 않았었나? 여진은 있는 거고.”
그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황정민 박사가 다급하면서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첨성대가 무너졌어요!”
그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떠지지 않던 눈이 첨성대라는 말에 번쩍 떠졌다.
“첨성대가?”
그는 홀로그램을 켰다. 어쩔 줄 몰라 하는 황정민 박사의 얼굴이 보였다. 커다란 눈이 더 커 보였다. 최근까지 첨성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서 그도 당황스러웠다. 멍하니 아무런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흔들어 잠을 쫓았다.
‘지금까지 수많은 지진에도 끄떡없었는데 첨성대가 무너질 정도면 엄청 큰 지진이 왔었다는 건가? 하지만 난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거기 상황이 어떤지 알고 있나?”
“아뇨, 지금 파악 중이어요.”
“난, 경주로 가서 상황 파악을 할 테니 황 박사는 경주 문화재 피해가 더 있나 알아봐 줘.”
“알겠어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아직 경주에는 여진이 있어서 위험해요.”
황정민 박사의 얼굴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는 손목의 터치패드를 눌렀다. 컨트롤러가 보였다. 원격으로 자동차 시동을 켠 후 주차 대기 모드로 전환했다. 스마트 슈트로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가서 자동차에 탔다. 음성인식 시스템을 켰다.
“경주로.”
그는 마음이 급했다.
“경주 어디로 갈까요?”
인공지능 센서가 사무적으로 물어왔다. 그는 위급 상황에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는 기계가 이럴 때는 이성적으로 일을 잘 처리할 거 같았다.
“첨성대로.”
인공지능 자동 모션이 도착 장소를 확인 후 출발했다.
같은 시각, 한국지구지질연구소
“차 팀장, 경주 이외의 상황은 어때?”
김찬민 부장이 다급히 상황실에 들어오며 물었다.
“지금 우리만 문제가 아닙니다.”
차현민 팀장이 상황판을 보며 말했다.
“무슨 말이야?”
차현민 팀장이 상황판을 손으로 펼쳐 보였다. 상황판에는 세계지도가 입체적으로 묘사되었고, 붉은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미국, 칠레, 필리핀 등 태평양 주변 나라들에서도 지진이 발생했어요. 더 큰 문제는 바다 주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쓰나미 우려가 큽니다.”
차현민 팀장이 침착하면서도 빠르게 보고했다. 세계지도에 붉은빛이 점점 늘어났으며, 지진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었다. 불의 고리인 태평양 주변 상황은 더 심각해 보였다.
“이 상태라면 태평양 주변 섬들과 인근 도시들은 큰 피해를 입을 겁니다.”
“그럼, 제주도는?”
김찬민 부장은 갑자기 제주도가 걱정됐다. 쓰나미가 발생되면 제주도도 안전할 수 없었다.
“지금으로선 장담하기 어려워요. 일단, 제주도에 재난 시스템을 가동하는 조치가 필요해요.”
김찬민 부장은 망설여졌다. 시계는 새벽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재난 시스템 발동은 도지사 결정사항이야. 아직 위험 단계가 아닌 상황에서 도지사를 깨울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너무 빨리 재난 시스템을 가동해서 주민들만 불안하게 하는 건 아냐? 쓰나미가 온다 해도 일본이 먼저 영향권에 접어 들 텐데 현재 일본의 대응은 어떤가?”
“오키나와 주변 열도들도 심상치 않아요. 만약 그쪽에서 쓰나미가 발생하면 제주도는 한두 시간 안에 바로 영향권에 들어가요. 서둘러야 해요. 판단은 도지사님이 해요. 우리는 지금, 상황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어요.”
차현민 팀장이 강력하게 말했다.
“알겠네.”
김찬민 부장이 손목의 터치패드를 눌렀다. 전화 신호음이 들렸다.
새벽어둠이 가시지 않은 시각이었지만 하람은 낮은 언덕을 급히 오르고 있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찼다. 하얀 두건을 쓴 머리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한적한 교외 언덕에 자리 잡은 집은 단층으로 담장은 없었다. 불은 꺼져 있었고, 창문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새벽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불었다. 하람은 주변을 살핀 후 작은 마당을 지나 현관문 쪽으로 급히 걸어가 재빨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매우 어두웠다. 서늘한 기운이 하람에게 전해졌다. 새벽 탓만은 아니었다. 집에 들어오면 느껴졌던 온화한 불빛과 따뜻한 온기가 사라져 있었다. 밖에서 느꼈던 음산한 분위기가 집안에서도 그대로 전해졌다.
“불빛이 사라졌어.”
왠지 모를 불안감이 하람을 감쌌다. 하람은 손목의 황금 팔찌를 바라봤다. 가온누리님의 징표가 빛나지 않았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징표 위에 올렸다.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뭔가 이상해!”
하람은 직감적으로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지구에서 500년 넘게 전령 일을 하면서 이런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집에 들어오면 자동으로 불이 켜졌는데 안 켜졌다. 하람은 다시 황금 팔찌를 보았지만 여전히 빛나지 않았다. 징표를 만져도 가온누리님의 모습이나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하람은 천장을 보았다. 하늘의 문도 열리지 않았다. 더 이상 이곳은 하늘을 이어주는 공간이 아니었다. 하람의 작은 몸이 파르르 떨렸다. 아늑하고 안전하게 느껴졌던 집이 가장 무서운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몸이 점점 움츠려 들었다. 부리부리한 눈이 더 커졌다. 구릿빛 얼굴과 몸이 푸르게 변했다. 불안감은 점점 공포감으로 밀려왔다. 이곳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 금방이라도 현관문으로 누군가 들어와 자신을 위협할 것 같았다. 하람은 크게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지난 상황을 생각해 봤다.
‘얼마 전부터 지구의 기운이 심상치 않았어. 그런데, 가온누리님에게 어떤 얘기도 듣지 못했어. 내가 먼저 말을 했어야 했나? 너무 안일하게 대응했어. 아니야, 지금은 자책을 할 때가 아니야.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는 게 중요해. 하늘에 오르지 못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지?’
하람은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하자 도무지 생각이 안 났다.
“침착해야 해! 시간이 없어!”
하람은 몇 번이고 자신에게 말을 하며 방법을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도 수시로 변했고, 몸 따로 생각 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방안을 서성이다 창밖을 보았다.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는 거 같았다. 아직 밖은 어둡고 주변에는 사람의 기척도 없었다.
‘하늘의 문이 열리지 않으면 하늘로 올라갈 수 없어. 무슨 방법이 없을까?’
하람은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하얀 두건 밖으로 곱게 땋아 내린 붉은 머리카락과 반대로 몸은 푸르게 변해 있었다. 그때 하람이 누군가를 생각해 냈다.
“맞다. 대간! 가온누리님이 말했던 지구수호자!”
하람은 이곳에서 가온누리님과 대화할 때 만났던 대간이 생각났다. 하람은 대간이 신과 같은 마력이 있어서 그가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늘의 문을 여는 방법을 대간은 알고 있을 거야. 지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야.”
푸른색으로 변했던 몸이 서서히 보랏빛으로 변하면서 구릿빛의 검붉은 색으로 변했다. 하람은 가방에서 대간을 찾는 나침반을 꺼냈다. 대간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대간은 수시로 거처를 바꾸고, 얼굴을 바꿨다. 대간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침반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는 것으로, 대간과 가까워지면 나침반의 테두리가 빛나게 되어 있었다. 하람은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한 후 조용히 집을 빠져나왔다. 아직도 새벽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새벽안개마저 자욱하여 하람의 시야를 더 흐리게 만들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