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람은 대간과의 거리가 좁혀 짐을 느꼈다. 대간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대간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에 하람의 심장이 요동쳤다. 나침반의 테두리가 빛났다. 나침판이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는 건물들로 하람을 이끌었다. 하람은 대간이 있을 만한 곳을 천천히 살폈다. 나침판 바늘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1층 상가에는 대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람은 천천히 2층으로 올라갔다. 새벽녘이라서 건물 내부는 조용했다. 조심조심 하람은 나침판의 밝기에 따라 대간의 위치를 살폈다. 컴컴한 2층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불은 다 꺼져 있었다. 인기척이라곤 전혀 없었다.
2층 점포 앞에 서자 나침판의 밝기가 최대로 빛났다. 간판의 이름은 ‘사주 관상’이었다. 하람은 문 앞으로 귀를 가까이 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람은 창가 쪽으로 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커튼 안쪽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하람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하람의 몸이 점점 사라져 연기로 변해 창문 틈으로 흘러 들어갔다. 연기가 창문 안으로 다 들어가자 검붉은 피부색이 서서히 나타났으며, 앳된 얼굴도 윤곽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하얀 두건이 붉은 머리를 감쌌다. 하람은 불빛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대간?”
하람이 조심스럽게 대간의 이름을 불렀다. 커다란 등이 보였다. 몸이 공중에 떠 있는 상태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하람은 직감적으로 그가 대간임을 확신했다. 머리카락은 흰색과 검은색이 섞여 있었고 어깨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의 몸이 천천히 하람이 있는 쪽으로 돌아섰다. 대간의 얼굴이 정면으로 보였다. 얼굴은 주름 하나 없었으며, 오히려 반짝반짝 빛이 났고 갈색 눈과 검은색과 흰색이 혼재되어 있는 처진 눈썹이 그의 인상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었다. 대간은 하람을 잠깐 바라봤을 뿐 다시 눈을 감고 계속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대간의 자리 밑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라 대간의 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힘이 대간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대간! 내 말 들려요?”
하람이 크게 소리 내어 불렀으나, 대간에게는 하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하람이 발을 동동 굴렀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어요. 큰일 났어요. 제발 저 좀 도와주세요!”
여전히 대간은 죽은 시체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람의 몸이 푸른색으로 변해갔다. 하람은 자신의 목소리가 대간에게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불안했다. 대간을 누군가 조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너는 하늘로 올라갈 수 없어.’
환청처럼 하람의 귀에 소리가 들렸다. 하람은 주변을 살폈지만, 방에는 대간과 자신 둘 뿐이었다.
‘하람, 마음으로 얘기해 봐.’
다시 소리가 들렸다. 대간이 말하는 거 같았지만, 그는 여전히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람은 눈을 감고 마음을 진정시켰다. 마음으로 대화를 하는 것은 하늘의 요정들만이 할 수 있는 대화 방식이었다. 요정들은 언제든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면 누군가를 지칭하고 그와 이렇게 은밀히 마음으로 대화를 했다. 하람은 대간이 자신과 그런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다.
‘대간, 하늘의 문이 닫혔어요. 가온누리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해요. 하늘의 문이 열리도록 도와주세요.’
하람이 대간을 향해 말했다.
‘하늘의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아. 그리고 너도 하늘로 올라갈 수 없어.’
하람은 눈을 번쩍 떴다.
‘당신은 누구죠? 대간 아닌가요?’
‘다이몬과 그 무리들이 활동을 시작했어.’
하람은 갑자기 심장이 멎는 듯했다. 다이몬에 대해 얘기는 들었지만 그것은 한낮 전설 속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영원히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있다고 들었다. 그런 다이몬이 활동을 시작했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지구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게 다이몬 때문이라고요? 뭔가 잘 못 알고 있는 거 아닌가요? 다이몬은 영원히 지하에 갇혀 있는 걸로 아는데······.’
하람은 교외 집에서 느꼈던 음산한 기운이 바로 다이몬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피부는 어느새 푸르다 못해 새파랗게 변해 있었다.
‘다이몬과 그 무리들이 활동을 시작했다면 더욱더 가온누리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하잖아요? 무슨 방법이 있죠? 어서 말해 봐요?’
대간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를 풀고 하람에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하람의 키가 작은 것도 있지만 대간의 키가 워낙 크다 보니 대간의 위세에 하람은 더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람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어깨가 움츠려 들었다. 대간은 걱정 말란 눈빛으로 하람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고 난 후 커튼에 가려진 창밖을 보았다.
“지금은 방법이 없어. 하늘의 문을 여는 유일한 방법은 다이몬을 무찌르는 거야.”
대간의 말에 하람은 말문이 막혔다.
“우리보다 백배, 천배는 더 힘이 센 다이몬을 가온누리님의 도움 없이 어떻게 무찌른다는 거죠?”
“지구방위기사단을 모아서 함께 다이몬을 물리치는 거야. 그리고 난 후 열두 궤를 맞춰야만 하늘의 문이 열리고 그때 너도 하늘로 올라갈 수 있어.”
대간은 창밖을 힐끗 살피더니 책상 위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상자를 주머니에 넣어 가슴속에 감췄다. 좋지 않은 기운이 하람에게도 느껴졌다.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고 있어.”
침착했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대간이 서두르자 하람의 눈빛도 흔들렸다.
“왜 그러는 거죠?”
“악의 기운이 느껴져. 다이몬의 부하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어. 자세한 얘기는 차차하고, 우선 여기서 나가자.”
대간이 원격으로 자동차를 불렀다. 자동차는 상가 건물 뒤편으로 왔다. 대간과 하람은 계단을 내려와 뒷문으로 이동했다.
“왜, 차로 이동을 하죠?”
“마법을 쓰게 되면 다이몬의 부하들이 마법의 기운을 느끼고 우리를 찾을 수 있어. 최대한 사람들과 같은 행동을 해야 해.”
“이미 쫓기고 있는데 무슨 의미가 있어요. 마법을 쓰면 더 멀리 달아날 수 있잖아요?”
“마법은 우리만 쓸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들도 쓴다는 걸 모르니?”
하람은 갑자기 얼음이 되었다.
‘이곳으로 올 때 마법을 썼는데······. 그렇다면 저들은 교외의 집에서부터 나를 추적한 것일까?’
하람은 자신으로 인해 대간의 위치가 노출됐다고 생각하니 너무 두렵고 죄책감이 들었다.
“뭐해? 서둘러야 한다니까!”
대간이 하람을 잡아끌어 차에 태웠다. 대간이 수동 모드로 전환 후 직접 차를 몰았다. 자동차는 골목을 빠져나와 큰 대로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