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들고 고향인 대구로 전지훈련을 내려온 저는 대구 스타디움 인근의 '청계사'라는 절로 향하는 약 1.5km의 업힐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이후 대구의 자전거길을 찾아다니며 훈련을 계속했답니다.
#4. 아버지께서 자전거를 구매하셨다?
* 갑자기 집 앞에 택배가 도착했는데, 웬 자전거?
대구에 머무는 동안, 저는 자전거를 타고 여기저기를 엄청나게 다녔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이곳저곳을 다니게 되니, 제가 몰랐던 대구의 여러 모습들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너무나 좋습니다. 거의 매일 50km 이상은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100km 이상을 탄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매일 자전거를 타게 되니, 점점 자전거를 타는 실력이 좋아지는 게 몸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저의 강도 높은(?) 트레이닝도 실력 향상에 한몫했겠지만, 저의 부모님께서 해주시는 집밥과 맛있는 외식 찬스도 저의 실력 향상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체력 향상을 위해 잘 먹고, 잘 뛰고, 잘 쉬는 것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전거 실력과 함께 얻게 된 것이 있는데... 바로 뱃살입니다. 제 인생 29년 역사상 이보다 더 배가 나왔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번 기회에 엄청난 살크업(?)을 이뤄내는 중인데, 이럴 때 헬스장 문만 열렸더라도 뱃살을 모조리 근육으로 옮길 자신이 있는데 말이죠...
자전거를 타려 집을 나서던 찰나, 웬 자전거 택배가?
그렇게 여느 때처럼 열심히 자전거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서려던 어느 날, 집 앞에 웬 커다란 택배박스가 턱 놓여있군요? 택배 밖으로 튀어나온 페달과 핸들을 보아하니... 자전거인가 봅니다. 갑자기 웬 자전거냐고요? 저희 아버지께서 구매하셨거든요. 그렇습니다, 저희 집에 자전거가 한 대 더 생기게 된 것입니다.
사실, 며칠 전부터 아버지께서는 인터넷으로 열심히 자전거를 알아보고 계셨습니다. 제게 자전거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셨고요.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시다가, 결국은 제가 괜찮다고 이야기했던 것들 중에서 마음에 드시는 걸로 주문을 하셨습니다. 저 자전거는 그렇게 도착한 자전거입니다.
얼른 포장을 뜯어 간단하게 세팅을 마친 후 동생은 새로 온 자전거에, 저는 제 자전거에 올라타서 짧게 시승을 했습니다. 15만 원 정도의 저렴한 자전거지만, 요즘엔 워낙 기술이 상향평준화가 많이 이루어진 모양인지 승차감만큼은 훌륭했습니다!
그렇게 자전거가 무사히 도착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한 가지 제안을 하셨습니다. 바로 다음날, 첫 자전거 시승을 영천까지 하자는 것입니다...?
* 아버지와 함께 떠나는 영천 자전거 여행
하양에서 금호로 넘어가기 전, 아버지 자전거와 함께 한 컷
아침 8시, 부처님 오신 날이라 아버지께서는 회사에 나가지 않으십니다. 모처럼의 휴일을 맞은 아버지께서는 저와 함께 영천까지 자전거로 다녀오자는 제안을 하셨고, 저 역시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코로나 19 극복 합동 기도를 위해 절에 가시기로 한 관계로, 저와 아버지는 얼른 아침을 챙겨 먹고 9시 반에 집을 나섭니다.
저희 집에서 영천의 칼국수집까지는 약 37km입니다.
오늘 저와 아버지가 다녀올 코스는 영천에 맛있는 칼국수와 돼지껍데기 식당이 있으니, 거기서 점심을 먹고 다시 대구로 돌아오는 코스입니다. 집에서 약 37km의 평탄한 코스로, 금호강 줄기를 따라 계속 이어지는 길을 가면 되는 경로입니다.
물론, 최근 40km는 우습게 다녀오는 저에게는 무난한 코스입니다만...(사실 이미 다녀온 곳이기도 합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거의 몇 년 만에 자전거를 처음 타시는, 그것도 생활 자전거보다 훨씬 자세가 불편한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타고 약 70km의 장거리를 이동하셔야 합니다. 제 글을 꾸준히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안장통'을 기억하실 겁니다. 제 경험 상으론 적응에 약 한 달이 걸렸습니다. 이 안장통이 굉장히 무서운 녀석이라서,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자전거를 처음 탄 당일부터 찾아오기도 합니다.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고, 안장통이라는 변수를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로 저는 아버지와 함께 길을 나섭니다.
아버지께서 구매하신 알톤(Alton) 사의 생활용 하이브리드 자전거로, 14만 원의 가격에 편안한 승차감을 확보한 모델입니다.
저희 아버지의 자전거는 알톤(Alton) 사의 생활형 하이브리드 자전거입니다. 사진에서도 보이듯이, 두꺼운 안장과 앞바퀴의 서스펜션 역할을 하는 샥 펌프(Shock pump)가 장착된 자전거라서 승차감이 매우 좋은 편입니다. 물론 무게가 상당히 무거운 15kg으로, 속도를 내는 것에는 적합하지 않지만 가격 대비 괜찮은 구성입니다. 사실 저는 '이왕이면 좀 더 비싼 값을 주고 더 좋은 모델을 구매해라'라고 권했지만, 원체 절약정신이 투철하신 아버지 성격 상 가성비가 좋은 자전거를 원하셨습니다. 결국 가격과 구성에서 나름의 타협을 보고 해당 모델을 찾았고, 저의 추천에 따라 아버지께서 최종 선택을 하신 것이죠.
값이 값인지라, 구매한 날에 온 새 자전거임에도 불구하고 군데군데 문제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창고에 오래 방치된 모양인지 일부는 녹이 슬었고, 부품의 정밀도가 떨어져서 기어 변경이 부드럽게 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도 집 근처에 실력 좋은 정비사가 운영하는 가게가 있어 간단한 정비를 받았습니다. 정비비와 배송비 등등을 포함하면, 정상적인 상태가 되기까지 약 17만 원을 쓴 셈이군요?
마침 집을 나서서 처음으로 쉬게 된 '경산 자전거 오아시스'라는 곳에서 77세의 노년 라이더 한 분과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분의 말씀이 저와 아버지에게는 꽤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생활형 자전거 보통 200만 원에서... (중략)... "
... 노신사 분께서 상당히 재력가이신 모양이군요... 인근에 주차된 그분의 자전거를 보니, 척 보기에도 굉장히 비싼 메이커의 고가형 라인업 MTB였습니다. 저와 아버지 기준에서는 제 자전거도 40만 원 대의 고가형 자전거인데 말이죠...
노년 라이더 분께서 쓰시는 자전거는 못해도 500만 원은 넘어가는 자전거인가 봅니다. 아무래도 자전거 자랑이 길어질 것 같아, 양해의 말씀을 드리고 다시 길을 나서기로 했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찍어봤습니다.
금호강 자전거길은 포장상태가 이따금 불량하다는 점만 제외하면, 매우 훌륭한 자전거 여행길이었습니다. 특히, 서울의 한강 자전거길에서 볼 수 있는 마천루의 도시 풍경과는 정 반대의 풍경인 시골의 자연경관이 연이어 펼쳐지는 멋진 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런 자연의 풍경을 굉장히 좋아하시는데, 영천까지 이동하는 내내 풍경을 즐기시는 것 같아 제 기분도 덩달아 좋아지더군요. 저 역시 금호강의 아름다운 경관을 충분히 즐기며 산뜻한 라이딩을 즐겼답니다.
하지만, 오늘 여행길의 두 가지 복병이 있었으니... 바로 아버지의 '안장통'과 뜨거운 햇볕, 즉 '자외선'이었습니다. 출발한 지 10km가 채 되지 않아, 아버지께서 엉덩이의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상황이 되어서야 저는 아차 싶더군요... 저 역시 안장통의 수렁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는데, 변수를 생각하지 못한 것이 컸습니다. 당연히 속도는 더디고, 저의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라이딩 중에 괴로운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자외선'입니다. 하필 이 날은 제가 반바지를 입었던 날입니다. 평소의 제 페이스대로라면 다녀오는 데에 3시간에서 4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아버지와 함께 하는 라이딩이라 속도를 내면 안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햇볕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고, 다른 곳처럼 꽁꽁 싸매지 않은 두 다리는 꼼짝없이 햇볕에 노릇노릇하게 익어버렸습니다. 피부가 타는 것이야 크게 신경 쓰지 않지만, 문제는 햇볕으로 인한 1도 화상을 입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의 이야기지만, 집에 돌아온 뒤에 허벅지 아래가 몹시 쓰리더군요...
멋진 경관과 최고의 날씨가 합해지니 찍는 사진마다 그림이었습니다!
라이딩의 고통과는 별개로, 경치는 참 기가 막히도록 좋았습니다. 하양에서 금호를 지나 영천으로 가는 길에는 수려한 경관의 자연이 끊임없이 펼쳐져 있어서, 휴식을 이유삼아 중간중간에 아버지와 함께 경치를 마음껏 감상했습니다.
9시 반에 집을 나서서 약 3시간의 라이딩 끝에, 힘든 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칼국수집에 도착했습니다.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2005년 무렵 영천시청 인근의 허름한 집에서 팔던 돼지껍데기의 맛을 재현한 맛집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 자전거를 타고 먹으면 뭘 먹든 대부분 맛있겠지만, 아버지의 맛집 레이더는 매우 높은 정확도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시장이라는 반찬과 관계없이 맛있을 예정입니다.
돼지껍데기와 칼국수, 후식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먹었습니다.
이 집은 특이하게도 돼지껍데기와 칼국수를 같이 먹습니다. 돼지껍데기를 칼국수에 섞어 먹는 건 아니고, 칼국수와 곁들여 먹는 반찬 같은 느낌으로 먹으면 됩니다. 불향을 제대로 입은 돼지껍데기는 특유의 비린내가 완벽하게 해결되어 있고, 식감도 돼지껍데기의 장점인 쫄깃함을 한껏 살려서 매우 맛있었습니다. 평소에 불판에 구워 먹던 돼지껍데기를 이렇게 제육볶음 스타일로 먹으니 상당히 색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칼국수는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장점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제 취향의 칼국수였습니다. 시장이나 시골에서 먹을 수 있는 수타면을 이용한 심심한 칼국수인데, 이런 칼국수는 간 조절이 절묘해야 맛있는 법입니다. 들어가는 재료들이 특별할 게 없기 때문에, 완벽한 간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죠. 역시 오랜 전통의 맛집답게, 간 조절이 완벽했습니다. 곁들여 먹는 돼지껍데기나 반찬들과 조합해도 과하지 않으면서 모자라지 않은 간이었습니다. 면발의 탱탱함은 말할 것도 없고요. 완벽한 점심 한 끼였습니다.
점심을 먹고, 근처의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 뒤 다시 대구로 출발합니다. 식사와 커피의 힘으로 다시 출발해야 하는데, 아버지께서 다시 안장에 앉으면 극심한 고통이 몰려오시는 모양입니다. 도저히 견디기 힘드신 건지, 돌아오는 시간의 절반을 자전거를 끌고 걸으셨습니다. 당시에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결코 적지 않은 연세이신데도 자전거 1일 차에 너무 힘든 코스를 소화하시는 것 같아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젊으셨던 시절부터 축구를 비롯해 각종 스포츠들을 어마어마한 강도로 소화하신 아버지께서도 안장통의 마수에서는 자유롭기 힘드신 것 같습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멋진 경치를 보며 걷는 것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희 아버지께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근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아버지 사전에 어설픈 도전과 포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록 중간에 자전거에서 내려 끌게 되는 과정이 있더라도, 끝까지 목적을 달성하고야 마는 끈기가 있으신 것입니다. 나중에는 아버지의 의지에 존경심마저 느껴졌습니다. 몸 컨디션이 좋은 편이 아니심에도 불구하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껴진달까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저도 지인들 사이에서는 한 근성(?) 하지만, 50년 이상의 내공이 쌓인 저희 아버지의 의지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할 겁니다. 아버지 정도의 재력과 나이라면 이왕이면 제법 값나가는 좋은 자전거로 폼 나게 자전거를 타고도 싶으실 텐데, 장비에 전혀 연연하지 않으시고 저보다 훨씬 저렴한 자전거를 타고서 이 먼 거리를 오실 생각을 하시니까요. 그것도 자전거를 탄 첫날에 말이죠.
줄곧 아버지 앞에서 자전거를 탔지만, 돌아가는 길만큼은 아버지 뒤를 따르기로 합니다. 몇몇 구간에서는 제가 앞서기도 했지만, 아버지께서 자전거를 내리면 저도 내리기로 합니다. 사실 아버지와 단 둘이 여행을 간 적이 별로 없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밤낚시를 따라간 이후로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하는 것도 자주 있을 일이 아닙니다. 갑작스럽게 떠난 여행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멋진 추억일 겁니다.
돌아오는 여정이 참 힘들었지만, 결국 저와 아버지는 집까지 자전거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목욕탕으로 직행, 햇볕에 다 그을린 피부와 고통에 몸부림 치는 근육을 달래 봅니다. 그렇게 저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자전거 여행은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됩니다.
- 다음에 계속
p.s.
아버지께서는 참 검소한 분이시지만, 자전거 여행 중에 만난 비싼 자전거들이 아버지를 제치고 지나갈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드셨나 봅니다. 아무래도 비싼 자전거일수록, 가벼우면서도 안정적이고 빠른 법이니까요. 최근 며칠 사이 자전거를 많이 찾아보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