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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라 Nov 08. 2020

#11. 에필로그

다시 일상으로

* 지난 줄거리


  움직이지 않는 몸을 이끌고 네 개의 험난한 업힐을 넘고, 바닷바람을 가르며 우여곡절 끝에 부산의 낙동강 하굿둑에 도착하게 됩니다. 예상보다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하게 되어 차편이 없었던 저는, 부산에서 공부하는 친구와 함께 오래간만에 회포를 풀고는 숙소에 돌아와 잠을 청합니다.




#11.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때


*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국토종주를 마쳤다는 긴장감이 사라진 탓일까요. 저는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간인 아침 10시가 다 되어서야 눈을 떴습니다. 사실 눈을 떴다는 것도 문자 그대로 눈을 '뜬' 것에 불과하고, 눈을 뜬 채로 침대 안에서 한참을 뒤척였습니다. 온몸, 특히 다리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아팠기 때문입니다.

  침대에 누워 차편을 알아보다가 '내가 정말 부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온 것이 맞는구나' 하는 놀라움과 감동이 이따금씩 몰려오곤 합니다. 어제의 감흥이 오늘에서야 뒤늦게 찾아온 셈이죠. 633km(정확히는 600km 좀 되지 않는)를, 그것도 3일이라는 시간에 내려온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무용담(?)일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쨌든, 여기 누워서 버스 시간만 보고 있는다고 집까지 저절로 가지는 건 아닙니다. 비록 숙소에서 버스터미널까지는 7km의 거리지만, 지금의 제 몸상태로는 체감으로 열 배에 육박하는 느낌입니다. 대구에서 내린 후에 집까지도 약 10km를 가야 하니, 오늘도 적지 않은 거리를 타야만 합니다. 마침 배도 고프겠다, 슬슬 움직여야겠습니다.


  동대구까지 가는 버스의 가장 가까운 시간이 11시 30분 언저리입니다. 침대에서 제법 시간을 많이 날렸기 때문에, 원래 계획했던 부산 돼지국밥 먹기는 물 건너간 셈입니다. 제가 버스를 탈 곳은 '사상시외버스터미널'입니다. 부산 서부의 버스터미널로, 7km의 짧은 거리지만 지금의 제 체력 여건으로는 그리 가깝지만은 않은 거리입니다. 힘겹게 자전거를 끌고 숙소 밖으로 나와 터미널을 향해 페달을 돌립니다. 몸의 긴장이 다 풀린 탓인지, 평소보다 더더욱 힘든 느낌입니다. 하지만 곧 집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버스는 코로나 때문에 차편이 아예 없어졌고, 기차에는 자전거를 가지고 탈 수 없다는 역무원의 대답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저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정말 어렵게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대구로 가는 버스가 없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버스 앱을 통해 차편을 보고 온 것인데, 역무원은 앵무새처럼 '없다'는 대답만 제게 되풀이할 뿐이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일부 구간의 차편 운행을 제한 중이라는 대답만 제게 되돌아왔습니다.

  앱 상에서는 '해당 차편은 역에 직접 문의해라'는 안내문구가 뜨고, 앱을 통해 표를 예약할 수 없게 되어있었습니다. 저 안내문구가 '해당 차편이 없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에, 저는 당연히 역에서 표를 끊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죠. 편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부푼 기대를 안고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정확한 설명도 없이 그냥 '없다'는 투로 건성의 대답만 하는 역무원을 보니 화가 잔뜩 치밀었습니다.

  결국 저는 '이유를 알려줘야 될 것 아니냐'며 다소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게 되었고, 당황하는 역무원 뒤에서 관리자로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제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서야 상황이 일단락되었습니다. 앱에서 안내문구가 부적절했고, 직원의 대응 역시 부적절했던 것 같아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여기 바로 근처의 기차역인 사상역으로 가거나, 동부산터미널로 가봐라'는 답을 들었습니다.

  동부산터미널은 여기서 20km를 가야 합니다. 마땅한 자전거길도 없죠. 현재로서는 사상역에 가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었습니다. 저는 좀 전의 고성에 대한 사과를 드리고, 사상역으로 다시 걸음을 옮깁니다. 어쨌든 기차를 타서라도 집에 가면 되니까요.


  하지만, 제 마지막 희망이었던 사상역에서도 문제가 터졌습니다. 자전거를 분해하여 가방에 넣지 않으면, 기차를 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차에 들고 탈 수 있는 짐의 부피에는 크기 제한이 있는데, 자전거를 분해해서 가방에 넣어야 짐으로 인정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방법이 없겠냐고 역무원에게 통사정을 해봤지만, 역무원은 단호했습니다. 지하철 이용을 권유받았지만, 당시는 평일이었습니다. 평일에는 자전거를 지하철에 실을 수 없죠. 결국, 거의 20km나 떨어진 동부산터미널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일단 밥부터 먹고 생각해보기로 합니다. 또 밀면...


  국토종주를 했던 그 어느 순간보다도 절망적이었습니다. 지금의 컨디션으로는 단 10km를 더 가는 것도 힘들어 죽을 맛인데 20km를 더 가야 하다니... 그냥 20km도 아니고, 10km 정도는 약 오르막과 차가 빠르게 지나는 터널도 거치는 무지막지하게 힘든 코스였습니다. 자전거를 실어서 이동할 수 있는 콜벤을 불러볼까 싶어 전화를 했는데, 최소 5만 원은 달라고 합니다. 이래저래 진퇴양난의 상황, 망연자실한 저는 갑자기 몰려오는 공복을 해결하고자 우선 밥부터 먹습니다.

  혹여나 걱정하실 어머님께 전화로 상황을 설명한 후, 어떻게든 알아서 집으로 돌아가겠다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게 허망한 상태로 밀면을 먹은 후, 다시 길을 나서기 위해 지도 앱을 켜서 경로를 확인합니다. 부산의 중심과 북단을 번갈아 가로지르는 험난한 코스입니다. 지도로 길을 직접 보니, 더더욱 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군요.


제대로 된 자전거길이 없었기에, 그 어떤 때보다도 힘든 라이딩이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벌어진 일, 저는 무조건 집으로는 가야만 합니다. 그 어느 누구도 저를 대신 데려다줄 수 없습니다.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 물고 터미널을 향해 이동합니다. 북적이는 인파와 험하게 운전하는 차들 사이로, 정말 거지꼴로 어찌어찌 터미널까지 도착하고야 말았습니다. 부산은 생각보다 오르막이 참 많은 동네더군요. 중간중간 다리에 힘이 빠져 몇 번을 끌고 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자전거를 버스에 실은 뒤 대구에 도착하기까지 기절하다시피 쓰러져있었습니다.


이날 달렸던 약 40km의 거리는 다시는 못할 고행으로 제 기억에 남았습니다.


  버스에 내려 집까지 다시 10여 km를 달린 후, 저는 그립고 그리운 저희 고향집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해냈다는 성취감, 만족감, 뿌듯함, 가족들을 곧 볼 수 있다는 기대 등등... 여러 감정들이 떠오를 법도 하지만 피로가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한 저는, 가족들과의 반가운 재회와 함께 맛있는 밥도 먹고 깨끗이 목욕도 했습니다.


  그렇게, 길고도 길었던 2박 3일에 하루 더 추가된 저의 자전거 국토종주는 대장정의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 그래서, 뭘 얻었지?


  글쎄요... 자전거로 국토종주를 결심한 이유는 순전히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습니다. 남들처럼 흔하게 버스나 기차, 비행기를 타고 정해진 관광지와 코스만 도는 여행은 재미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것보다 훨씬 앞선 이유, 즉 느닷없이 여행을 떠나려 했던 이유는 대체 뭐였을까요? 돈도 얼마 없는 백수가 말이죠.

  곰곰이 생각해봐도 여행을 떠나려 했던 이유가 특별히 떠오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굳이 정하자면 길어지는 코로나 블루 속에서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던, 어떤 의미에서는 '일탈'을 원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재미를 위한 일탈에서 출발한 자전거 국토종주는 제게 크고 작은 부분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다줬습니다.


  우선, 예전에는 없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힘'이 생겼다는 겁니다. 저는 남들이 보기엔 어떨지 몰라도 뭔가를 하기 위해 준비와 계획을 많이 하는 스타일입니다. 제가 뭔가 시작했다는 것은, 스스로 그 일을 시작하기에 제법 충분한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저의 [자전거 여행] 시리즈를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아실 겁니다. 국토종주를 하기 위해 자전거 타는 연습은 기본이고, 자전거 상식과 간단한 정비부터 국토종주 코스 공부까지 포함해 준비를 열심히 했습니다.

  유비무환이란 말도 있듯, 준비를 많이 하면 그만큼 도움이 됩니다. 다만, 지나치게 준비만 하면 준비하는 과정에서 진을 다 빼버리기도 하죠. 저 역시 준비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런저런 핑계로 출발을 차일피일 미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눈 딱 감고 출발하여 부산까지 도착한 후에는, 준비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보다는 '행동으로 옮겨야 비로소 가치가 생긴다'는 깨달음이 오히려 생겼습니다. 이후로는 (여전히 사전 준비를 많이 하긴 하지만)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으로 조금은 변한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자신감'이 충만해졌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국토종주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인터넷에 가볍게 검색만 해봐도, 부산까지 국토종주를 마친 수많은 사람들의 후기가 돌아다니니까요. 다만 그건 지금의 저이기에 가능한 생각이고, 당시로서는 인력으로 부산까지 간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하고 대단하게도 느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죠.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성공하지는 못하는 일입니다. 그걸 해낸 후의 저는 과거에는 없었던, 때로는 근거도 없는(?) 자신감을 발휘하곤 합니다. 물론 이것이 절대 자만 또는 오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감정과 감각을 잘 활용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연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좋은 것만 얻은 건 아닙니다. 왼쪽 무릎의 만성적인 통증이 가시질 않습니다. 일상생활에 크게 불편함이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분명히 무릎에 문제가 생긴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병원에서도 '무리해서 쓰지 말라'는 답 외에는 해줄 말이 없다는 걸 보면, 다소 강행군이었던 국토종주의 상처라고 보는 게 맞겠군요. 지금도 이따금씩 무릎이 뜨끈하게 부어있는 느낌을 받곤 합니다.


  아, 가장 큰 변화라면 당연히 '자전거 타는 실력'이 월등히 좋아졌다는 겁니다. 간단합니다. 더 먼 곳까지 더 빠르게, 더 오래 탈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정말 자전거를 잘 타시는 분들에 비하면야 아직 한참 모자란 실력이겠지만, 몇 달 전의 제 자신을 돌아본다면 정말 눈에 띄는 성장이 분명하다고 자부합니다.



* 다시, 일상으로


  국토종주도 재미있게 했겠다,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즐겼으니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길다면 길었고 짧다면 짧았을 약 2달의 [자전거 여행] 이야기를 잠시 접어두고, 다시 생업에 종사해야 합니다. 저는 돈이 썩어 나는 부자가 아니니, 살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거든요.


  국토종주 중 친구에게서 우연히 접한 채용공고에 지원한 저는 운이 좋게도 합격하여 회사에 다니는 중입니다. 공공기관의 위탁을 받아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은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중인데, 업무량이나 난이도에 비해 월급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서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중입니다.


  주변의 지인들에게 이 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곤 합니다. 다들 '해피엔딩'이라고 축하해줍니다. 제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 좀 부끄럽지만, '긴 모험의 끝에 마왕을 물리친 용사의 행복한 은퇴 생활'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려운 일을 해낸 후에 다시 일할 수 있는 터전을 찾았다는 건 정말이지 큰 행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앞으로 언제 또 이번과 같은 기나긴 자전거 여행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니는 회사에서 돈도 벌어야 하고, 연애와 결혼도 하고 싶고, 집과 자동차도 마련하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바쁘게 살아야 하기에, 이번처럼 여유롭게 몇 달씩 여행을 준비하거나 여행을 다니는 짓은 어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앞으로 많은 곳을 자전거와 함께 돌아다닐 예정입니다. 간간이 주말에라도 자전거에 올라타 훌쩍 어디론가 바쁘게 다녀오는 정도로 즐기는 건 가능할 테니까요. 업그레이드된 자전거 실력의 도움을 받아 다녀오는 당일치기 여행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에 자전거 국토종주를 할까 망설여지는 분들이 계신다면, 주저 없이 '도전하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힘들지만, 분명히 그 여정의 끝에 뭔가를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두고두고 곁에 두고 써먹 좋은 훌륭한 안주거리 하나 만든다는 생각으로 훌쩍 다녀와보세요. 틀림없이 재미있고, 가슴 벅찬 도전일 겁니다.


  저의 [자전거 여행] 시리즈는 이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동안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수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자전거 여행] 시리즈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자전거 여행] 시리즈는 새로운 자전거와 새로운 길로 다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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