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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클레어 Oct 20. 2023

남기고 가는것

  경남 남해군 OO면 OO리. 박옥매 할머니댁. 우리가 남해에 살기로 마음을 먹고 처음 소개 받은 집이다. 마늘농사와 논농사로 8남매를 낳고 키워던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 가시고 혼자서 이 집을 지키다가 마지막엔 요양병원에서 돌아 가셨다고 전해 들었다. 미닫이 방문이 있는 방 포함 세개, 투도어 낡은 냉장고, 달달달 소리나는 가스레인지, 똑딱이 전등 스위치, 커다란 괘종시계와 멈추어 버린 달력. 1980년즈음에 멈춰 있는 듯한 집은 할머니를 떠나 보내고 6-7년을 홀로 온기 없이 있었다. 40년 전에 다시 지었다는 이 단층 짜리 양옥집이 어느 날 우리의 새로운 집이 되었다. 


   제일 먼저 할 일은 주인 없는 할머니의 유품을 정리 하는 일. 할머니의 유품은 엄청났다. 남해군 환경과에서 도와주러 오신 예닐곱명이 모여 1톤트럭에 꼬박 하루종일 5번을 넘게 싣고 날랐다. 그리고 다시 나의 삶으로 돌아와서, 나는 주인 없는 이 물건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분명히 주인이 있을 때에는 제 몫을 다 하여 소중한 밥그릇, 소중한 수저, 냄비였을 물건들이 2020년의 나에게는 전혀 필요없는 물건이 되었다.  (내가 빈티지를 좋아해서 굳이 챙겨놓은 물건들을 제외하고 나서도) 그래서 나는 36살 가을 나의 죽음과 내가 죽은 후 남겨질 유품에 대해 생각했다.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 할때 맥시멀리스트인 나는 콧방귀를 꼈다. 좋아하는 르쿠루제 냄비와 소품을 컬렉션 하는 일, 신간 도서를 사고 한번 읽고 다시 읽을 예정이 없더라도 잘 버리지 못하게 되었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만들어 오는 작품들, 더 이상 걸곳이 없는 유화 캔버스. 4인가족의 33평 아파트는 터져 나갈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자라면 부모의 품을 떠날 것이고 언젠가 사용하겠지 둔 물건들은 내가 없다면 남편에겐 아이들에겐 정녕 필요 없는 물건이 되고 말 것이니까. 

   박옥매 할머니 집을 경험하고 나서부터 이기도 했고, 죽음을 가까이서 마주하는 직업을 가진 나는 언제 어떻게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매일 정리 하는 삶을 선택했다. 버리고 버리고 또 버렸다. 베네치아에서 사온 유리 배도 버렸다. 그때는 그랬다. 삶에 희망도 없었고 곧 죽을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므로 다 버리고 가는 것이 응당 당연했다. 흠이 생길까 사용하다가 깨질까 아끼던 그릇을 꺼내었다. 어서 써야 버릴 수 있으니까. 아이들은 오래 된 새로운 그릇을 보고 좋아했다. 


  언제가 아이들과 경주의 박물관에 갔을때였다. 죽은 어떤 장수의 고분 안에 그릇과 옷이며 물건들이 가득 들어 있는 것을 보고 아이가 물었을 때, 


“죽은 사람이 평소 사용 하던것을 천국에 가서도 사용하라고 다 넣어 주는 거야” 

라고 대답했다.


  아이는 자기가 죽으면 터닝 메카드를 넣어 달라고 했다. 엄마무덤 안에는 프랑스그릇을 넣어 주겠다고 선심을 썼던 일이 떠올랐다. 결국 우리는 죽을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게 된다. 이 치열한 땅 덩어리에서 33평 아파트를 가지기 위해서 애썼지만 결국 돌아 가는 곳은 작은 상자이지 않나. 버리자 버리자 버리고 가자 태어날때 맨 몸으로 태어난것 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태어 난것 처럼. 수미상관 어차피 인생 다 똑같은것 아니겠는가.  

   참 많이도 버렸다. 오늘 죽어도 아쉽지 않을 만큼 버렸고 이제 내겐 남은 것이 얼마 없다. 지금 여기에서 남편과 아이들과 행복할 기억 정도만 중요한 것이 되어 버렸고 내게 남아 있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햇볕이 가득한 마당앞에 나와서 할머니의 오래된 그릇에 밥을 먹었다. 텃밭에서 딴 부추로 겉절이를 하고 버섯과 가지도 조금 구웠다. 할머니집 마당에서 하면 다 어울린다. 원래 그집에 있던 물건이니까. 할머니 물건중에 그릇은 몇 개 챙겼다. 아마도 나는 그릇에 관해선 맥시멀리스트라 그런가보다. 낡은 집에서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었다. 죽겠다 마음 먹었지만 살아날 마음이 드는 묘한 이 집. 앞으로 우리가족을 더 잘 부탁 할게. 마당 안에 길고양이가 어슬렁 거린다. 사람의 온기가 어색한가 보다. 이 집 마당 원래 제 것이 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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