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싱클레어 Oct 20. 2023

어떤 화요일

화요일에 이사 간 사람 나와봐

   가끔 답답한 일상을 버리고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아는 사람이 없는 전혀 새로운 낯선 공간에서의 OFF를 원하기 때문이다. 시각적, 물리적, 정서적으로 고립되길 원한다. 격식이나 안부를 물을 필요 없고, 상사의 숨은 뜻을 알아챌 필요도 없고, 내가 말을 비록 이렇게 하지만 그 뜻을 상대방은 찰떡같이 알아들었으면 하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 따위 없는 곳. Hi~, have a nice day! 정도만 대화를 나누어도 행복한 곳.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우며 그러면서도 묘한 두려움과 호기심이 생긴다. 비록 내 집은 쑤시방티 같아도 캐리어에 필요한 옷가지 넣어서 말끔하게 정돈된 호텔로 떠날 수 있으니 여행은 즐겁다. 그래서 우리는 이전의 여행들과는 조금 다른 여행을 가기로 했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 직장도 휴식, 혈연 지연 학연 없는 처음 보는 시골 마을, 온전히 내가 OFF 할 수 있는 곳. 어느 가을 화요일 오후에 경상남도 남해로...  

    

  집부터 덜컥 계약해 놓고 아이들이 다닐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면담을 하였다. 교장 선생님의 교육 방침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학원차 뺑뺑이를 돌지 않아도 되고, 학교 뒤에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고, 석방렴에 가서 은갈치를 잡아 오는 아이들이었다. 아이가 아이답게 살 수 있는 곳. 아이를 경쟁 사회의 소모품으로 키우지 않고 싶다고 선언했던 우리 부부의 마음에 쏙 드는 교육 방식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도 처음에 남해살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제일 좋아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학원을 안 다닌다고?”      


  11살. 사교육 10년 차 큰아이가 크게 놀랐다. 항상 학원 차량 시간에 쫓겨 모든 것이 통제되어 있었던 아이들이었다. 아이에게 자유를 주길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맞벌이 부부에게 아이의 일탈은 안전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것이었다. ‘길거리에 파는 음식 사 먹지 마라. 배탈 난다. 학원차 시간 늦으면 다른 친구들이 수업을 못 하고 기다리게 되니 안된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마라. 횡단보도 잘 보고 건너라. 가방에 돈 넣어 다니지 마라. 너 돈 가져 다니는 거 알면 나쁜 언니 오빠들 만날지도 몰라.’ 아이들의 하교 시간만 되면 신경이 곤두섰다. 행여 ‘학원 차량을 놓치지는 않을까. 차량을 놓쳐서 큰길을 건넌다고 나오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혼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물론 앞에서 열거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시에서 아이는 엄마의 불안감을 먹고 자라났다. 그곳에는 야단과 잔소리만 있을 뿐, 꿈과 모험 상상과 판타지는 들어올 자리가 없었다.    

 

  여행은 여행이고 일상은 일상이다. 여행과 일상이 혼재할 겨를이 없이 학교에 나가야만 했다. 전교생 26명. 심지어 1학년과 5학년은 합반으로 같이 수업 중이었다. 직장에는 아이들의 교육문제로 휴직을 신청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학교에 적응했다. 역시 이런 걱정은 나만 하고 있었나 보다. 아이들은 새 학교가 좋은 건지 집에 오니 있는 엄마가 좋은 건지 매일매일 콧노래를 불렀다. 아침 등굣길에 고성이 오갈 일도 없었다. 나의 마음이 여유로우니 아이들에게 짜증 내는 일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굣길 작은아이가 말했다.   

   

“엄마 소 보러 가자”

“소가 있어? 너 소 있는데 알아?”

“응. 물론이지 따라와”


  아이손에 이끌리어 나온 이웃집에는 정말 소가 있었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답게 이웃집 외양간에 묶인 소 한 마리가 소풀을 뜯으며 식사 중이었다. ‘이 목가적인 풍경 뭐지?’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엄마, 나 남해에 와서 태어나서 소 처음 봤어”     

  짧은 머리 사이로 송골송골 땀이 맺힌 아이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에게 동물을 보여주겠다고 놀이공원도 가고 동물원도 갔지만 생활 가축은 볼 기회가 없었다. 유튜브에서만 봤단다. oh my god! 계란과 쌀은 쿠팡에서 오는 것인 줄 알았다는 아이에게 조금 더 걸어 논까지 가보기로 했다. 낱알이 열린 벼를 보여줬다. 그리고 조금 뜯어 이삭을 까보라고 했다. 쌀이 나오는데? 이 모든 것은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마을 어르신들에게도 적잖이 충격이었다. 정말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못한 채 우리의 시간은 지나가고 있었다. 그 시간을 잠시 멈춰 돌아보기로 한 지금 여기 남해는 더욱 소중하기만 하였다. 쌀과 계란이 쿠팡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천만다행이다.      


  하루하루가 괜찮았다. 그 괜찮은 마음은 근심을 버리고 환자의 바이탈 따위는 생각지 않아도 되는 내 마음에서 오는 것 같기도 하였다. 이곳 남해에서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의 신세도 그러하였으니 더욱 애틋했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나면 아침 먹은 정리를 대충 해 놓고 세탁기를 돌린다. 음악은 신나는 음악으로 크게 틀어도 상관없다. 다음 마당에 나와 빗자루질을 하고 텃밭에 잡초도 뽑는다. 마당 안에 던져 놓은 줄넘기, 자전거, 킥보드 아이들의 물건을 정리하고, 엉망으로 벗어놓은 신발을 짝을 맞춰 넣었다. 햇볕이 좋은 날에 이불도 널어둔다. 세탁기 빨래까지 다 널고 나면 집안 정리를 시작한다. 돌아서면 점심시간 식사는 박옥매 할머니 스타일로 하기로 했다. 할머니의 오래된 유리 볼에 무채무침, 계란 프라이, 참기름 조금. 맛있게 비벼 먹는다. 그리고 스타벅스에서 사 온 원두커피를 드립으로 내려 먹는다. 커피숍까지 가려면 차로 10분은 나가야 해서 내 집에서 먹을 수 있도록 특화된 아이템이다. 그리곤 책을 좀 읽다가 누웠다가 뒹굴다가 핸드폰도 한번 들었다가 sns를 켰다가 메신저에 친구 이름을 쭉 훑어본다. 나를 아무도 모르는 데서 살고 싶다는 호기로운 마음에 잊히고 싶지 않다는 아이러니가 더해지는 순간이다.


어느새 아이들이 하교할 시간. 오늘은 마을 앞까지 마중 가야지. 돌아오는 길에 소를 만나는 산책은 우리의 루틴이 되었다. 돌아와 허겁지겁 저녁 식사를 챙기고 오늘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이들의 브리핑을 듣는다. 호들갑스러운 오버액션은 필수다. 그리고 멀리 있는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건다.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며 오늘도 잠이 드는 일상적이지만 나에겐 매우 특별한 남해의 하루. 이런 하루하루들이 더해져 우리가 언젠가 이곳을 기억할 때쯤 행복한 기억으로 꺼내어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한없이 따뜻했던 엄마와 이웃집에 누렁소 그리고 ‘훅’ 하고 불면 한숨에 날아가던 민들레 홀씨, 흙장난하고 손 씻은 땅에서 퐁퐁 솟아나는 샘물의 온도는 아주 차가웠던 것, 살랑살랑 춤추는 배추흰나비, 찌르릉 풀벌레 소리, 붉게 지는 저녁놀, 밤하늘에 쏟아지는 셀 수 없이 많은 별. 이 모든 것들이 다 우리 동네 OO리에서 본 것이라고. 그때 즈음 내가 읽은 책에서는 이런 구절이 적혀 있었다. 「아스팔트를 밟고 자란 아이는 절대 시인이 될 수 없다」라고.     

이전 01화 남기고 가는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