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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거북 Sep 06. 2023

12. 첫 이직 : 유통업계의 매운 맛

 나는 2년 10개월간 몸 담았던 광고 대행사에서 퇴사했다. 그리고 연간 매출 5천억이 넘는 거대 패션그룹으로 이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패션그룹 내 유통기업이었고, 기존의 유통기업을 인수하여 걸음마부터 시작하는 회사였다. 매출 5천억의 패션그룹은 그저 허울 좋은 껍데기였다.


 광고 대행사는 영업 실적에 따른 호봉제였기 때문에, 급여가 매달 달랐으나 사회 초년생들 치고는 매우 높은 급여를 받아갔다. 이직을 하며 연봉을 깎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살인적인 야근과, 광고주의 압박, 그리고 31개의 지하철역을 지나야 하는 출퇴근에서 해방된 것만 해도 좋았다.


 기대는 입사 후 바로 무너졌다. 온라인 광고 대행사 AE가 오프라인 기반의 유통업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입점한 점주들이 스마트스토어로 온라인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하긴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나의 경력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영업에 가까웠다.


 사내 문화도 어마어마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서류를 찢어 집어 던지는" 일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났다. 직원을 벽에 몰아놓고 다 보는 앞에서 "개새X야, 씨X놈아"와 같은 쌍욕도 퍼부어댔다.


 밥을 먹으라고 말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었다. 퇴근하라고 말하지 않으면 퇴근할 수 없었다. "밥 먹어도 되겠습니까? 퇴근해도 되겠습니까?" 묻는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밥 먹고 이를 닦는 것으로도 뭐라고 했다. 점심 시간 60분 휴식은 없었고, 밥만 먹고 올라와 바로 일을 했다.


 여긴 뭐 일을 하자는 곳인지 사람을 못살게 구는게 목적인 곳인지 알수가 없었다. 부하 직원의 옷을 뺏어입기도 했고 주말에 본인 가족이 내려온다고 부하 직원이 사는 원룸과 차량을 강탈하기도 했다.


 그곳은 설립된지 이제 3개월 된 신생 회사였고, 팀장 파트장 과장 대리 급들은 메이저 유통회사에서 소위 방구좀 뀌다가 밀려난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롯데, 현대, 신세계 등등 그 유통회사들 말이다. 그러면서 그들은 유통회사의 관행이라면서 온갖 쓰레기짓들을 해댔다.


 짧게 다녀 임팩트가 부족해서 그렇지 단연 최악의 회사였다. 퍼포먼스 마케터로서 딱히 할 일이 없으니 정장을 입고서는 박스를 나르고, 분리 수거를 하고, 오락실 돈통을 터는 업무를 주로 했다. 그런 나에게 "너는 경력직이라는 놈이 오락실 돈통 털러 오냐?"라는 비아냥이 돌아왔다.


 누굴 탓하랴. 성급하게 이직한 내가 죄인이지.


 퇴사해야지. 3개월을 채우고 빠르게 퇴사했다. 이 회사는 짧게 다녔고 배운 것도 없었으며  모든 순간이 최악이었기 때문에 딱히 쓸 말도 없다. 그래도 천운으로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브랜드가 퍼포먼스 마케터 아르바이트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머지않아 그 회사에 입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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