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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거북 Aug 29. 2023

11. 첫 번째 퇴사

 2017년 11월에 나는 광고 대행사를 퇴사했다. 앞으로 다사다난하게 펼쳐질 퇴사 인생 중 첫 퇴사였다. 2년 10개월. 이 회사에는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 곳에서 3년 가까이 경력을 쌓아 인하우스 마케터가 될 수 있었고 "광고밥"을 먹고 살 수 있었다. "광고밥"으로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가정을 꾸렸다. 스타트가 좋지 않았다면 이루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여기서 오래오래 커리어를 쌓아 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1. 새로운 관리자

 기존 팀장님께서 부서장으로 승진하시고 실무에서 합을 맞춰 온 대리님께서 팀장으로 승진하셨다. 대리님께서 주임일때 내가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서 각자 대리/주임이 된 후에도 한 팀에서 계속 호흡을 맞췄다. 업무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호흡이 잘 맞아 친하게 지냈다. 집에 놀러가기도 했었다. 나는 키가 작은 편이었고 대리님은 키가 190cm가 넘어 같이 다니면 패트와 매트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우수한 실무자가 좋은 팀장이 되기는 힘들다고 했던가. 그 형이 팀장으로 승진한 이후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다. 나는 자타공인 유리멘탈이기 때문에 팀원들에 대한 세심한 케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규 팀장님은 그런 것에 에너지를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광고주가 직원에 대한 뒷담을 하면, 그걸 정리하고 요약해서 팀원에게 피드백하지 않고 녹취본 파일을 메신저로 전달하여 그대로 들려주었다.


 기존의 팀장님이 "그깟 광고주보다 내 팀원들이 훨씬 소중하다"라는 메시지를 형식적으로나마 우리에게 어필하였다면 새로운 팀장님은 그런 모습이 전혀 없어서 아쉬웠다.


2. 광고주에게 시달리다

 AE가 광고주에게 시달리는거야 뭐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만 그 시절에는 뭔가 유난히 나에게 가혹한 피드백들이 몰려왔었다. 팀의 기둥이 되는 광고주도 나를 마뜩찮아했고 신규 광고주들도 이상할 정도로 나를 싫어했다. 광고주가 회사 차원으로 클레임을 강하게 걸어 시말서를 쓰기도 했다. 누굴 탓하랴. 내가 못해서 그런거겠지. 하지만 광고주와의 소통이 일인데 광고주들이 나를 싫어하니 "이 일은 내 일이 아닌가?" 하는 괴로운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반항심과 적개심이 마음 속 한켠에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여행사 광고주와 미팅을 하는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해도 쏘아붙이는 본부장에게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그냥 물끄러미 쳐다만 본적도 있었다. 회의실에서 감돌던 1분간의 적막함을 잊을수가 없다. 실무자는 미팅이 끝나고 "일 잘하시는 건 알겠는데 태도를 좀 신경써주세요"라고 이야기했다.


3. 팀원에게 시달리다

 팀의 주임으로서 제안서 작업이나 PT준비를 해야하면 선뜻 나서서 야근/주말출근을 했다. 하지만 PT 결과와 별개로 일을 나이브하게 한다는 팀원들의 피드백이 있었다. 참기 힘들었다. 선배들에게는 일을 나이브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후배 사원들에게는 피드백이 가혹하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후배 한명이 보고 자료를 만드는데 데이터를 요약&표현하는 능력이 부족하여 관련 책을 추천해준 적이 있었다. 나도 도움을 많이 받은 책이었다. 그 친구는 그날 저녁 회식자리에서 울면서 내가 너무 괴롭혀서 회사를 못다니겠다고, 자존심이 상한다고 국장님에게 얘기했다. 다음날 끌려가서 호되게 혼났다.


 이런 일들이 쌓이니 퇴사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이야 덜하겠지만 당시에는 에이전시에서 3년 버티고 인하우스로 이직하는 케이스가 많았고, 그게 딱히 흠도 아니었다. 목표로 했던 3년이 다 채워져가는 상황에서 굳이 이 악물고 버틸 필요가 있나 싶었다.


 같은 회사 기획팀에서 근무하던 친한 형이 있었다. 회사 동료이기도 했지만 그 전에 대학교 선배이기도 했다. 그 형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한 상태였고, 혹시 이직 생각이 있으면 추천해줄테니 얘기하라고 했다. 나를 찾아주는 곳도 있겠다 해서 나는 과감히 이직을 결정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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