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하면 반쯤 정신을 놓는다. 신경 쓸건 많고 해야 할 건 산더미인데 나 혼자 하기에는 벅찬 일 투성이다. 그렇게 할 것 많은 하루를 정신없이 쳐내다 보면 일주일이 등 뒤 먼 곳에 있다. 이렇게 생활에 묻혀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 농민의 삶이다. 바쁜 삶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챙기고 있지만, 여유가 없다 보니 간혹 야근을 밥 먹듯 하던 직장인 시절과 다름없게 느낄 때가 있다. 그렇다 해도 그때는 여가라도 즐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특히 아쉬운 게 있다면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핑계에 불가하겠지만, 내 경우 틈내서 읽는 독서보다는 1~2시간 정도 시간을 할애해서 읽는 걸 선호한다. 읽는 시간이 짧으면 활자를 머리에 넣는 것에 집중할 수는 있겠지만, 내용을 체화시킬 수는 없다. 가령 ‘화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라는 글귀를 책에서 봤다면, ‘왜 화를 내는지’ ‘화를 내는 순간이 언제인지’ ‘무엇이 참을 수 없는지’ ‘어떻게 화를 내지 않을지’ ‘화를 내지 않는 내 미래는 어떠한지’에 대한 상상을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한두 가지쯤은 은연중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귀농 후 몇 시간씩 짬나는 순간이 없다 보니 자연스레 책과도 멀어졌고, 사색은 더욱 그러했다.
책 '그리스인 조르바' - yes24
책은 정보의 역할이 크지만, 그 값어치를 생각했을 때는 개인적으로 간접 경험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 아니 확신한 책이 있었는데 바로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그리스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에게 명성을 안겨준 이 책은 화자인 사업가와 그리스 출신 남성 조르바와의 여정을 다룬다. 사실상 조르바의 회상과 행동 묘사에 더 가까운 이 책은, 다소 괴팍하고 무책임해 보여도 한 번쯤 본인의 인생에서 자유와 해방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주문한다.
이 책을 세 번 읽은 나는, 읽기 전의 나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특히 그것을 이루기 위해 큰 노력을 들였지만 현실상 어려운 선택 앞에서- 거의 대부분 하고 싶은 것을 택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중국어와 일본어를 배울 때 스페인어와 인도네시아어를 택했고, 과장 진급을 앞둔 서른 네살에 세계여행을 택했다. 귀국 후 안정된 직장 대신 스페인어를 가르치고 세계여행을 컨설팅했고, 코로나로 인한 강제성이 있었지만 강연업을 접고 선택한 것이 귀농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책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분노로 가득 찬 직장생활이 이어지는 어느 날, 약속 시간이 애매하여 시간을 때울 겸 들어갔던 서점에서 조르바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는 나에게 원하는 삶에 주저 없이 투신하게 한 귀인이었을까, 아니면 안전한 삶을 발로 집어 차게 만든 원수였을까?
때론 삶이 우스울 때가 있다. 삶의 귀인이 악인으로 변할 때다. 삶이 순조로이 흘러갈 때 조르바는 내게 귀인이었지만, 현재가 고단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그는 철저히 악인이었다. 조르바가 내게 악인이었던 적이 종종 있었지만, 귀농 후에는 한동안 쭉 완벽한 악인이었다.
- 억대 매출, 귀농 우수사례의 민낯
귀농 1년 차의 성적은 우수하다 못해 환상적이었다. 마치 모든 게 도와주는듯했다. 임대하기 어렵다는 하우스도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얻었고, 힘을 못쓰던 쪽파 경매값도 내가 출하를 하면 기다렸다는 듯 잠시나마 반등했다. 여러 농림부 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계획한 대부분의 것들이 순조로이 진행되고 있었다. 결국 1년 차에 억대 매출을 달성했다. 덕분에 청년 창업농 우수 사례에도 선정되었고, 메이저 신문에도 귀농 우수사례로 소개되었다. 농부를 조명하는 각종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이어졌지만, 천만다행으로 거기에는 응하지 않았다.
2년 차에는 완전히 달라졌다. 장사꾼(중간 매매인)에게 넘긴 농작물은 의견 불일치로 수확하지 못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사기이기에 소를 진행했고, 1년이 넘은 지금도 법적 소송이 진행 중이다. 당시 손해만 2천만 원이 넘는다. 뒤이은 작기에도 손해가 이어졌다. 출하 일주일전에 갑자기 가을 장마가 시작되었고, 병해충을 우려한 농가에서 조기 출하를 강행했다. 특히 남부 쪽 쪽파가 대량 출고되었는데, 똥값이 된 쪽파를 계속 출고해봤자 인건비와 자재값을 감안하면 마이너스이기에 출고를 포기했다. 또 몇천만 원이 적자로 누적되었다. 이때부터 대출로 생활을 이어갔다. 얼굴에는 생기를 잃었고 행동에는 자신감이 사라졌다. 생활고에 못 이겨 삶을 포기하는 농부들의 소식이 마치 ‘다음은 너야’라는 것 같았다.
무심하게도 하늘은 다시 나를 저버렸다. 빚을 내어 종구를 구매한 탓에 유독 초조한 작기였다. 정성 들인 쪽파는 누가 봐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였지만 출하 4일을 남겨두고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해충이 들끓었다. 주변 농가에서 뿌린 퇴비가 원인일 수도 있고, 옆 농가에서 날아온 걸 수도 있다. 그동안 토양에 묻힌 파리 알이 부화한 걸 수도 있다. 문제는 출하 3~4일을 남겨두고 뿌릴 수 있는 해충약은 없다는 것이다. 있기야 있지만 식물에 잔류할 가능성이 있었다. 임시방편으로 출하를 앞당기려 했지만 농번기의 농촌에서는 이미 한 달치 일이 잡혀있기 때문에 인력이 없었다. 자연 앞에 무기력한 농부에게 날라든 것은 초라할만치의 비참한 경매가였다. 힘들었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지만, 힘들었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날들이 계속됐다.
- 3년 귀농의 종합 성적표
농산물 판매로만 봤을 때 나는 이미 실패했고, 농업을 접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귀농 당시 스스로 다짐했던 원칙은 고집스레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농사를 지으면서 귀농을 준비했지만, 실제 경험한 농업의 미래는 그리 가능성이 밝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농사를 지어 경매장에 넘기는 기존의 형태로는 생존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나의 귀농은 철저히 가공품을 만드는 것이었고, 나아가 생산-유통-가공-판매 전부가 가능한 농업을 하겠다는 것이 포부이자 귀농의 이유였다. 때문에 쪽파를 키우는 것만큼이나 가공품 개발에 힘을 쏟았다. 어쩌면 농산물 생산에 100% 집중하지 않았기에 3번 연속 적자를 본 것은 아닌가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내 선택이 옳았다.
사실 3번 연속 적자를 본 농가는 살아남을 수 없다. 왜냐하면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투입 비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나는 제값을 받지 못해 누적된 금액에, 해당 농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투입한 비용까지가 손해액이 되는 것이다. 손실액이 억에 수렴하고 있을때도 나는 여전히 앞을 보고 있었는데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은행 지분이 절대적이지만 하우스 6동이 있고, 쪽파를 가공할 자동화 장비가 있다. 몇몇의 농기구가 있으며 곧 입고될 1억 상당의 가공 장비가 있다. 이미 출원한 쪽파 가공품 관련 특허가 1개(금년 추가 1개), 상표 1개, 고도화 과정을 거친 캐릭터도 있다. 귀농 강연 경험도 있고, 아직 사용하지 않은 1억 상당의 국가 사업화 자금도 있다. 그리고 수억의 대출금이 존재한다.
- 이 길이 과연 옳은 방향인가?
나 스스로 판단하기에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지원사업을 따내고 농업 정책을 수립하는 자리에 초빙되고, 빚의 껍데기를 뒤집어썼지만 생산에 필요한 자산을 갖춰가고 있다. 물론 지금의 현실이 풍족이란 단어보다는 고단함에 가깝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억이 넘는 설비를 구매하기 위해 기업 대표와 미팅하고 있지만 종구 구입에 부족한 3백만 원이 없어 대출 창구를 기웃거리고, 언론사와 인터뷰하고 여러 바이어를 만나는 그럴듯한 이면 너머에는 파종에 투입된 11명의 인건비를 보며 ‘이번에도 잘 안되면 곤란한데’라며 한숨 쉬는 것이 내 본모습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단순한 고집의 영역이 아니라, 귀농 전부터 지금까지 확실한 목표를 갖고 최선을 다했기에 가능한 믿음이다.
이처럼 발전해가고 있음에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의 곤궁함에 빠져버리면,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귀농을 선택한 자신을 책망하기 마련이다. 마치 밤 11시 물고인 비닐하우스에 헤드랜턴 하나 켜고 걷는 느낌과 같다. 저 앞으로 가야 하는 게 맞는데, 질퍽거리는 땅이 발을 붙잡는다. 그러다 보면 미끄러지기도 한다. 그렇다해도 하우스 밖으로는 나가야 한다. 결국 눈 앞의 손해를 뒤로하고 앞으로 걸음을 옮길 수 있는 의지가 필요하다. 이 의지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으로 강해질 수 있다.
반복하지만 귀농은 이직이나 부업과는 차원이 다르다. 수억수십억을 투자해서 귀농을 할 때에는, 어지간한 의지와 다짐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원인이 내 실수이던 또는 통제 불가능한 자연재해이던, 단 한 번의 손실은 수천만에 달할 것이다. 게다가 그 손실이 다음에 연달아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렇게 손해가 누적되고, 궁핍해지고, 몸은 병이 들던 중 대출금 상환일자가 도래한다. 이런 비루한 현실에 천천히 잡아 먹히는 것이 진짜 귀농의 본모습이다.
하지만 자신의 원칙으로 꾸준히 앞으로 나아간다면 분명 빛을 보게 될 것이다. 다만 그런 고통의 시간이 대략 3~5년 정도는 이어지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니 그 고통의 뻘밭에서 갇혀있는 동안 어렵고 무기력한 현실을 헤치고 나올, 자신만의 귀농 방향을 설정하길 부탁드린다. 그 방향은 15시간의 고된 노동도, 갑작스러운 태풍으로 인한 수천만 원의 손해도, 뒤쳐지고 있다는 불안감도, 왜 하필 귀농을 했나라는 자괴감도 잠시나마 누그러트릴 천연 진정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