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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훈 Sep 25. 2022

그렇게 농사 져서는 망하기 딱 좋아

- 스마트팜이 만능은 아니다


 지금까지 글을 읽어온 당신에게 질문 하나 하겠다. 만약 귀농을 계획하고 있다면 또는 이미 귀농했다면, 생산하는 농산물을 이용해서 어떤 비즈니스를 준비하고 있는가? 만약 이 질문에 단 한 가지의 비즈니스 모델도 말하지 못했다면 당신의 귀농은 고통이 될 지 모른다.


이미 강조한 대로 혁신 기술은 하루가 멀다 하고 농업에 스며들고 있다. 스마트팜이라 통칭되는 이 거대한 변화는 마치 6m 높이의 쓰나미의 모습을 한채 기존 농업이라는 방파제를 넘으려 시도 중이다. 반면 월등한 혁신성과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팜이 한국 농업에 재빨리 적용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막대한 비용에 있다. 수억수십억에 달하는 스마트팜은 비약적인 생산량 증가를 이끌지만, 그에 걸맞은 판로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손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될 것이다.

 즉 당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이용해서 어떠한 비즈니스를 구현할 것인지, 다시 말해 직접 팔 건지, 누군가에게 판매를 위탁할 것인지, 체험이나 가공처럼 형태를 변경해서 팔 것인지 결정하지 못한 채 비용이 수반되는 어떠한 결정을 했다면 그 결말은 당신을 구렁텅이로 이끌 수 있다는 뜻이다. 단정할 수는 없지만 거의 대부분 귀농에 성공하거나 짧은 기간 동안 안정된 경우는, 자신의 생산물을 어떠한 비즈니스로 확장시킬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공 여부를 떠나서, 비즈니스 모델이 명확하다면 스마트팜은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만약 귀농을 준비하고 있다면, 부디 명확한 목표 또는 적어도 5년 정도의 로드맵을 그려보길 추천한다.


-  농사를 할수록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


 농업이 힘든 이유, 다시 말해 농민이 농사를 지어도 생활이 팍팍한 이유는 단 하나다. 소비자를 만나는 최종 판매 가격에 농민이 개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산물이 최종 소비자에게 가기까지는 많은 유통단계를 거친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는 농산물 도매시장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형태인데, 생각보다 이 구조가 복잡하다.


농민 – 도매시장 – 중도매인 – 소매인 – 소비자


 이 구조가 생소한 독자를 위해 풀어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농민이 농산물을 재배하면 도매 시장에 출고한다. 여기에는 수확을 위한 인건비 및 자재, 그리고 운송 수수료 등이 소요된다. 도매시장에 도착한 농산물은 도매 법인에 소속된 경매사에 의해 경매가가 책정된다. 경매가 책정 요인에는 품질여부가 주요하지만 당시의 출고량, 기상 상태, 경매사의 재량 등에 따라 예측이 불가능하다. 경매는 도매시장에 입점한 중도매인들에게 의해 진행되며, 중도매인은 다른 중도매인(중중 도매인) 또는 마트와 같은 소매인에게 판매한다. 그 후에야 소비자들에게 농산물이 전달된다. 현재 언급한 모든 단계에서 발생하는 용역, 경매사 인건비, 하역비, 운반비, 마진 등이 농산물에 반영된다.


 간혹 유통 구조를 혁신해서 농민이 직접 소비자를 만나야 한다고 한다. 혹자는 도매 시장 또는 농민과 소비자 사이에 있는 모든 이익 당사자들의 욕심으로 농산물이 비싸졌다고 비난한다. 하지만 조금만 분노를 누그러트리고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거의 대부분의 농민들은 해당 구조를 벗어나서는 소비자를 만날 수가 없다. 우리가 생산하는 쪽파로 예를 들면 기본 출하단위가 10kg이다, 500g짜리 쪽파 1단이 20개가 들어간다. 과연 500g의 쪽파를 구매할 소비자가 있을까? 우드 카톤 (Wood Carton)에 들어가는 200~300개의 과일(수박 등이 이런 식으로 출하된다)을 누가 소비할 수 있을까? 소량 포장을 말하겠지만 이는 인건비와 직결된다. 시골은 농번기에 사람구하는게 고역이다. 작업에 소모되는 포장재도 무시할 수 없다. 인터넷 직거래를 하는 일부 농가를 제외하고는 현실상 거의 대부분 농민은 위의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농산물 수수료는 합리적인 것일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사람들이 혼동하는 것이 최종 농산물 가격을 농민이 판매했던 시점의 농산물 가격과 비교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을 간과했다. 바로 인건비다. 농산물을 하역하고 분배하고 경매하고(이상 도매시장) 다시 소분하고 판매하고(이상 중도매인), 다시 소분하고 판매한다(소매인). 모든 단계에서 인건비가 발생하고 작업을 위한 공간비(임대료, 하역비, 이동비 등)가 발생한다. 게다가 농산물은 유통기한이 존재하기에 특정 단계를 누락할 경우 소비자로 향하는 농산물의 흐름이 더뎌진다. 그럴 경우 농산물의 품질은 급락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앞으로의 농산물 가격이 더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상이변으로 수확량은 줄어들 것이고, 인건비 상승으로 농부의 손을 떠나 소비자로 가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비싸질 것이다. 그렇다고 농부의 수익이 늘어난다는 것은 아니다. 비싸면 사지 않는 소비자의 요구에 부흥하기 위해 어떤 단계에서든 비용 절감의 칼날이 드리울 것이며, 가장 절박한 단계에 있는 사람들, 다시 말해 수확시기를 놓치면 값이 급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경매 가격에 응할 수밖에 없는 농부들의 수익이 가장 먼저 줄어들 것이 우려된다.


- 그렇게 농사 져서는 망하기 딱 좋다


 그렇다면 농업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기존의 유통구조를 벗어날 수 있는 농부만이 살아남을 거라 생각한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현재의 농업구조가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이지 농업 자체가 생존 불가하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잠재 가치만 따지면 농업도 타 산업에 뒤처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원물을 생산한다는 것은 굉장한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원물을 생산하게 되면 가공의 자유로움과 최종 생산물의 가격 통제권을 갖게 된다. 가령 당신이 가구점을 운영하는 대표라 예를 들어보자. 많은 양의 나무는 아니지만 작은 가구점 정도는 운영할 정도의 원물 생산이 가능하다 가정할 때, 어떤 장점이 있을까?


 우선 원재료 비용에서 자유롭다. 직접 생산하기 때문에 수수료 및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통제 못하는 상황들에-가령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밀가루, 버터, 계란 등의 가격 폭등-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만약 매출이 줄어들어 경영이 어려운 상황이 온다면, 인건비나 유통 마진을 줄여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다. 또한 마진 폭이 크다. 원물을 생산하기 위해 분명 투입해야 할 비용이 있지만, 해당 시점에 원물 가격이 폭락하지 않는 이상 시중의 어떤 제품보다 저렴하게 원물을 수급할 수 있다. 반면 판매가는 주변 가격보다 조금 저렴하게 설정한다면 매출도 늘고 마진폭도 늘게 된다.


 원물 생산의 가장 큰 장점은 추가 비즈니스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바로 유통이다. 원물만 생산할 경우 어려운 점은 고정적으로 판매할 고객이 없다는 것과 판가가 낮다는 점이다. 하지만 직접 가공을 한다면,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해 둔 채 원물 또는 반 가공된 원목을 원하는 업체에 납품할 수 있다.


 이를 농산물에 적용한다면, 사과를 재배하는 농가에서 건강기능식품(건기식)을 가공하는 것과 같다. 직접 사과를 생산해서 착즙을 하기에, 원가 측면에서 상당히 마진폭이 클 수밖에 없다. 또한 가공을 계속하기 위해 주변 농가의 사과를 수매하게 되는데, 유통 업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구매 또는 계약 재배해서 원물을 수급한다면 직접 생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정된 마진을 유지할 수 있다. 사과 원물을 많이 확보해서 다른 가공장에 판매할 수도 있다. 이런 노하우를 교육 프로그램으로 사업화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공품은 원물 판매와 비교해서 수배 수십 배의 마진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코로나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일로 농산물 가격이 폭락해도 경영 규모를 줄여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견딜 수 있다.


 물론 가공이나 체험장을 운영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고가의 장비는 차치하더라도 각종 허가와 제품 개발, 고객 관리, 마케팅 등 엄청난 고충이 뒤따르게 된다. 하지만 모든 사업은 늘어나는 매출만큼 고통과 고난을 감수해야 한다. 비단 농업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 당장 부가가치를 높이면 농업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부르짖고 있지만, 막상 어떻게 흘러갈지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 때론 줄어드는 마진 앞에서 그저 살아남기 위해 직원을 해고하는 등 어쩔 수 없는 선택해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농업에 종사하고 있거나 또는 농업에 투신할 예정이라면, 농업 너머 할 수 있는 것들 것 대해 반드시 생각해보고 구체화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원물 생산’이라는 농업이 갖고 있는 유일무이한 장점을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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