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 언급했지만 나는 지원사업에 나름의 노하우를 갖고 있다. 자부담이 높은 농림부 지원사업부터 중기부에서 진행하는 큼지막한 지원사업들-가령 청년창업사관학교, 로컬크리에이터, 초기창업패키지(예비 사업자의 경우 예비창업패키지, 타 사업과의 중복으로 포기)-, 특허청에서 나오는 IP 관련 사업 그리고 각종 바우처 사업의 수혜를 받아왔다. 그밖에 선정되지 못한 지원사업을 포함하면, 사업계획서를 쓰는데 상당한 시간을 들여왔음을 알 수 있다.
내가 집요하게 지원사업에 응한 이유가 있다. 앞으로 내가 할 사업의 성공 유무는 장비에 달려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계속 강조해서 미안하지만- 인구 부족으로 일할 사람이 없을 미래가 가장 컸다. 이미 귀농을 했고 부가가치를 높일 방법을 계속 찾고 있는데 거기서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들인 노력, 나아가 앞으로 들일 노력 모두가 무의미해질 것이 분명했다. 그 명확한 난관을 헤쳐나갈 방법은 최소 2~3명 이상의 몫을 하는 장비를 확보하는 방법뿐이었다. 문제는 비용이었다. 소규모인 2~30평에 구축할 장비를 추려보니 2억이 훌쩍 넘었다. 농사를 지어서는 절대 확보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방법은 있었다. 매년 한 번씩 나오는 몇몇의 지원사업에 선정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공고를 확인했다. 그래서인지 귀농 초반에는 어떻게 하면 사업계획서가 심사위원의 눈에 들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하지만 작정하고 써 내려간 사업계획서조차 외면받으면서 내 계획서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깨달았다. 무엇하나 갖춘 노력 없이 그저 돈만 주면 열심히 하겠다는, 구걸에 가까운 판타지 소설에 가까웠던 것이다. 조금씩 본질에 집중하고 지원사업이 요구하는 내용에 부합하면서 한두 번씩 선정의 기쁨을 느꼈고, 현재는 수 억에 달하는 지원 비용을 적절히 이용해서 5년 로드맵에 조금씩 근접하고 있다.
- 청년 농부가 저마다 성공하는 방법
한 청년 농부는 나와는 정반대 방식으로 성공에 다가가고 있다. 공주에서 엽채류를 기르는 그는 처음부터 대농을 염두하고 농업에 접근했다. 그가 생산하는 수십 개의 하우스와 친척 어른 두 명이 운영하는 하우스를 합해 백 동이 넘는다. 그는 가공이나 체험장을 운영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의 합이 농산물 생산에 필요한 리소스보다 크다고 판단했다. 때문에 부가가치를 높이기보다는 생산량을 극대화시켜 가격 주도권을 갖는 방법을 택했다. 백 동이 넘는 하우스에서 생산되는 물량에 더해 주변 농가의 위탁 물량이 확보되면서, 안정된 납품을 원하는 대형마트의 제안이 줄을 이었다. 21년도 그의 매출만 4억이라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경험을 통해 충분한 생산량이 확보되면 대형 마트라 할지라도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지속적으로 생산 시설을 늘리고 있고, 최근에는 천평 규모의 스마트팜도 건설했다. 여러 큼직한 건설을 진행하면서 농업 쪽에는 모르는 게 없을 정도가 되었고, 현재는 300명이 넘는 청년 창업농 커뮤니티의 대장격을 맡고 있는 공주 상추연구소 배동주 대표 이야기다.
다른 한 농부는 언론에 많이 노출되어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바로 포천딸기힐링팜의 안혜성 대표다. 그의 성공사례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특히 인구 절벽이 확실시된 농업에 진입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다. 그의 딸기 농장은 최신식 장비로 무장한 스마트팜에서 생산된다. 철저히 이론과 시스템에 기반한 생산으로 빠른 안정화가 가능했다. 게다가 체험장을 운영하는 내가 아는 모든 청년 농부 중-정작 안 대표와는 일면식도 없다- 가장 빨리 안착한 케이스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다.
특히 귀농 초기부터 귀농에 관련한 콘텐츠를 유튜브에 공유하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나는 이 부분이 상당히 의아했다. 유튜브를 운영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진대 농업을 하면서, 거기다 귀농 초기에는 더더욱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귀농 교육이다.
그는 유튜브와 같은 SNS로 꾸준히 소통했고 존재를 알렸다. 많은 사람들이 귀농에 관심 있음을 알게 되었고, 관련 교육을 만들어 귀농을 준비하는 또는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많은 예비 귀농인이 그곳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 그가 처음부터 농업을 활용한 6차 산업을 염두에 뒀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는 농산물 가공하면 빠질 수 없는 이가 있다. 바로 감자빵의 창시자 이미소 대표다. 그 역시 다른 귀농인과 마찬가지로 농업과는 관련 없는 일을 했다. 어느 날 아버지의 처치 곤란한 감자를 팔기 위해 춘천으로 돌아온 그는 수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감자빵을 개발했다. 빵은 춘천의 명물이 되었고 매출이 100억이 넘었다는 말은 무색하게, 어느덧 200억의 매출을 기록했다.
출처: 시사N라이프
물론 그의 성공을 두고 ‘누구나 열심히 하면 다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농산물 가공을 하는 입장에서, 그가 지나온 실패의 횟수들이 그리고 수 백억의 매출이 얼마나 고된 길을 걸어왔는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방법, 정확하게 말해 가공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 잘 될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이미소 대표의 이야기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제 쪽파의 상태만 봐도 뭐가 부족한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숫한 실패 속에서 적어 내려온 일지는, 파종 일과 예상 수확일만 기입하면 언제 비료를 주고 소독을 해야 할지 날자까지 산출할 정도로 고도화됐다. 시설 하우스를 구매했고, 쪽파를 탈피할 컨베이어 자동 탈피 장비를 구축했다. 게다가 한 달 뒤면 지금까지 개발하고 특허까지 출원한 가공품을 생산할 가공장 구축이 완료된다. 곧 추가 특허가 출원되고, 그를 기반으로 한 제품의 출시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매출로 증명할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위에 언급한 세명의 대표에 비하면 나는 한참을 전력으로 달려도 모자라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잘해왔다고 말해주고 싶다. 친구도 다 떠나버리고 아버지는 농업과 관련 없는 이름뿐인 고향에 돌아와, 쪽파만을 바라보며 3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왔다. 힘든 날을 세면 머리털을 모두 뽑아 세어도 모자랄 것이고, 비닐하우스에서 주저앉아 한숨 쉰 날을 세면 한가득 푼 밥그릇의 밥알 갯수와 같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농업의 미래를 두고, ‘왜 더 숙고하지 못했나’하는 자책을 하며 쇠파이프에 머리를 박은 적도 셀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생존했다. 이제나의 고생기와 희망가 중, 무엇을 바라볼지는 당신의 몫이다.
농업은 어렵다. 귀농의 장밋빛 기대를 꺾어 미안하지만 당신이 어떤 기대와 계획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을 잘 보낸다면 당신은 분명 원하는 곳에 다다를 수 있다. 지금까지 농업에 대해 당신을 겁주고 어두운 현실을 강조한 것은 그만큼 농업을 통해 윤택한 삶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귀농 전으로 돌아간다 해도, 농업을 택할 것이다. 위에 언급한 3명의 청년 농부들, 그리고 자신의 철학을 농업에 관철시킨 전국의 수많은 성공사례들이 내가 농업을 택할 이유가 된다. 그렇기에 다시 귀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