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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Dec 15. 2020

혼자 사는데, 아프다는 것은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파져요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3개월짜리 인턴직을 구했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졸업 전에 직장을 미리 구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엄청나게 뒤쳐지는 삶을 사는 거라는 압박감에 시달렸었다. 물론 표면적으로 압박을 강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내가 나를 압박했던 거다. 꼭 타인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압박, 그렇지 못하면 난 실패자가 될 거라는 공허한 자괴감. 그것이 나를 무작정 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엄청나게 하고 싶은 일도 아니었음에도, 졸업 전에 직장을 다닌다는 이유로 묘한 만족감을 느꼈다. 


집에서 가만히 누워서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던 어제보다는,
하루 몇 푼이라도 벌러 지하철을 타러 가는 지금이 더 나은 삶이라고 자위했다. 


그렇게 난 매일 12시간 동안 일을 했다. 매일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을 반복하며 '돈을 벌고 있으니까 어제보단 더 쓸모 있는 인간이다'라는 값싼 위로로 한 달을 버텼다. 하지만 결국 몸과 마음이 탈이 나버리고 말았다. 매일 밤 악몽을 꿨으며 잠을 자도 피로가 풀리지 않았다. 식욕은 사라져 몸무게가 줄어갔고 눈을 충혈돼 항상 빨갰고 다크서클은 더욱 진해졌다. 보는 사람마다 내게 피곤해 보인다는 말만 했다. 


그런 내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술뿐이었다. 퇴근하면 술만 마셨다. 누구와 마시든 상관없었다. 난 그냥 단지 이 밤을 술로 같이 버텨줄 지성체,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만 내 앞에 있으면 만족했다. 그렇게 난 그저 알코올이 나의 기억을 도려내 주기를 원했다. 정말로 수치스러웠던 건, 술자리에서 직장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난 모종의 위안감을 느꼈단 거다. 직장에 관한 이야기도 할 수 없는 신분이 아니라 그래도 난 직장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것 아닌가-하는 아주 값싼 자기 위안을 느꼈단 거다.


밥도 골고루 먹지 않고 술만 그렇게 마셔대니 안 좋던 몸이 급격하게 더 악화됐다. 하지만 업무의 양과 강도는 달라지지 않았고 나를 소모품 취급하는 회사 사람들의 태도 또한 변함없었다. 어느 날은 집에 도착해 알 수 없는 이유로 토를 해버렸다. 변기를 붙잡고 입과 코를 녹여버리는 듯한 신물에 눈물을 흘렸다. 어딘가 망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하루에 절반 이상의 시간을 형체 없는 압박감에 의한 일을 하고 그것을 또 형체 없는 음주로 풀어버리는 생활은 나 자신을 망쳐가고 있었다.


난 그렇게 인턴 자리를 관뒀다. 


퇴사하고 나서는 침대에서 밀린 잠을 잤다. 술의 힘을 빌리지도 않았고 그저 내리 잠만 잤다. 


나를 잠들게 하는 것은 패배감, 당시에 나를 괴롭히다 못해 내 온몸을 짓누르는 자기 열등감이었다. 퇴사하고 나서, 하는 것도 없이 잠만 자는 나를 떠받들어주는 침대는 심판대였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를 나약한 인간이라고 심판했다. 하루에 열 시간이 넘게 잠을 자는 이틀 째, 슬슬 온몸의 근육이 조여오듯 아파왔다. 머리는 깨질 거 같았고 열이 났다. 호흡은 거칠어졌고 눈을 뜨면 앞에 있는 것들이 빙빙 돌듯이 어지러워졌다. 몸살인 듯싶었다. 평소에 건강과 체력만큼은 자신 있었던 난데, 갑자기 몸살에 걸려 꼼짝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 게 묘하게 억울했다. 초반엔 이러다 알아서 나아지려니 싶었다. 살면서 큰 병치레를 한 적이 없었고 가끔 몸이 안 좋을 때는 있었어도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지금 겪는 이 고통도 적당한 선에서 멈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달랐다. 몸은 더 무거워져 화장실을 가러 일어나기도 힘겨운 지경까지 악화됐다. 이렇게까지 아파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무슨 약을 먹어야 할지, 늦은 밤에 병원에 가면 뭐라고 해야 할지도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까지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컨디션이 아니기도 했고. 당장 부셔 저 버릴 거 같은 내 몸을 어떻게든 살려내고 싶었다. 급한 대로 보일러를 켜 가장 높은 온도를 맞추고 이불을 덮어 몸을 웅크렸다. 아파서 잠이 오지 않아도 어떻게든 잠을 자려고 했다. 하지만 난 아파서 잠을 청하는 순간까지도 나를 심판했다.

 왜 아픈 거지. 이 시간에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제작해야 될 텐데.
아니면 글이라도 한 줄 더 써서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는데.


아픈 나 자신이 용서되지 않았다. 하지만 몸은 정말 내 말을 듣지 않았고 잠에서 다시 깨버리면 고통은 그대로였다. 이럴 때 응급차를 부르는 건가- 싶을 정도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전화가 오거나 메시지가 와도 도저히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고통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걸어지지 않는 몸을 움직여서 편의점에 갔고, 타이레놀을 사서 여섯 알을 한 번에 먹었다. 타이레놀이 당시의 몸살을 낫게 해 줄 효능이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얼만큼이 복용하기에 적정량인지도 몰랐다. 그저 여섯 알을 한 번에 털어 넣는 것이 내가 스스로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관용이었다. 혹시 몰라 다른 감기약들도 허겁지겁 복용했고 나는 집에 돌아와 다시 따뜻한 물을 마셨다. 약 기운 때문인지 아니면 잠자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인지 나는 다시 죽은 듯이 잠들었다. 


일어나니 다음 날 저녁이었다. 또 열 시간이 넘도록 잠만 잤던 거다. 그런데 정말 거짓말처럼 몸이 가벼웠다. 한 번에 고용량의 약을 복용한 영향인지는 몰라도, 정말로 기어서라도 병원에 가고 싶던 어제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지도, 세상이 빙빙 돌지도 않았고 찢어질 듯 조여오던 근육들도 괜찮아졌다. 하지만 몸의 상태는 돌아왔어도, 뭔가 마음이 공허했다. 이 아픔을 말할 데도 말할 사람도 없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것이 조금 슬펐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삶을 택한 것은 나이기에 깊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왜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그렇게 모질게 구세요.
좀 칭찬도 해주고 그러지.
자기를 사랑해주는 건 자기가 제일 잘해야 해요."


이 일을 상담 선생님께 말하자 상담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상담을 마치고 나서 생각했다. 그래, 아픈 몸을 혼자 치유하려 애쓴 나 자신에게 오늘만큼은 칭찬을 하자. 오늘만큼은 스스로를 심판하지 말자. 나는 나를 다독였다. 일하지 않는 지금의 내가 가치 없는 것이 아니라고, 애썼으니 잠시만 여유를 가지고 길을 찾아보자고 나를 사랑해주기로 했다. 




혼자 살면서 아프다는 건, 내가 나를 더 사랑해줘야 한다는 알림 같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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