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행복할 수는 없지만 행복한 일은 늘 있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하긴 늘 행복한 사람은 세상에 없을 거다. 늘 행복하다면 그것이 행복인지도 모를 테니까. 행복하게 살고 싶다면 나는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 알아야 한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를 알면 다음 단계는 아주 쉽다. 그것을 ‘하면 된다’
내가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고 그렇지 않았던 순간들과 비교해보며 행복에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함을 깨닫게 됐다. 물론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각자가 가진 행복의 열쇠는 모양이 저마다 달라서 결국 자신이 찾아야만 한다. 당신이 행복의 열쇠를 찾아가는 데 내가 가진 열쇠가 도움이 되기를.
이해를 돕기 위해 나의 예를 들자면, 나는 갖고 싶은 건 별로 없는데 하고 싶은 건 참 많다. 여기서 하고 싶은 것이란 ‘그것을 했을 때 행복해지는 것’들을 말한다. 내 경우에는 재미가 삶의 동력이었다.
재미있으면 했고, 재미없으면 안 했다.
다행히 세상에는 재미있는 것들이 참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재미있는 것들도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빨리 지루해졌고, 그럴 때마다 새로운 재미를 쫓아다녔다.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다니다 보니 늘 새로운 것에 도전했고, 도전의 끝에는 성취감이 뒤따랐다.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과정이 반복됐다. 이는 하나의 놀이에 가까웠고, 나의 정체성이 호모 사피엔스(생각하는 인간) 보다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에 가깝다는 잠정적 결론의 근거가 됐다.
다음은 한 호모 루덴스의 재미 추구 연대기이자 내가 ‘하고 싶어서 했던 것, 그래서 날 행복하게 해준 것’들의 기록이다.
학창시절, 공부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학생으로서 공부 외의 것을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음악만은 원 없이 들었다. 주로 펑크, 헤비메탈 등 록 음악에 빠져 지냈는데, 이때 들었던 음악은 훗날 음악 감상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밑거름이 됐다.
스물 하나-넷, 스물 한 살에 처음 마술에 재미를 느껴 군대 가기 전까지 푹 빠져 살았다. 하면 할수록 너무 재미있어서 없는 돈 다 털어가며 열심히 했지만, 마술이 가진 태생적 한계(사람들이 궁금해 해도 비밀을 말해줄 수 없는 답답함이 있다)를 느꼈다. 결국 군에 입대하면서 손을 뗐다. 지금껏 가장 오래, 가장 열심히 했던 취미가 아닐까 싶다.
마술의 세계는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별천지다. 마술에 한창 빠져있을 때 이제 나올 건 다 나와서 이 세계에 더 이상의 혁신적 진보는 없겠다 싶었는데, 지금도 새로운 마술들이 쏟아져 나온다. 인간의 상상력, 그 끝은 어디일까? 마술, 음악, 영화, 책처럼 인간의 상상력에 기반을 둔 세계를 좋아한다. 끝이 없기 때문이다.
스물다섯여섯, 군에 입대하면서 군대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을 찾던 중, 우연히 전제덕의 연주를 듣고 크로매틱 하모니카를 배우고 싶어졌다. 전제덕이 부는 하모니카와 같은 모델을 구해서 연습을 시작했다.
스물 일곱, 힙합을 좋아하는 군대 후임의 영향으로 힙합 입문. 덕분에 결혼식 때 직접 쓴 랩 가사로 축가를 부를 수 있었다. 지금도 즐겨듣는 장르 중 하나이다. / 록 페스티벌 첫 참가. / 제대하자마자 스쿠터 구입. 평소 꿈이었던 모터바이크의 세계 입문.
스물여덟, 당구에 우연히 빠져 1년 동안 당구장에서 살았다. 실력이 늘지 않는 정체기가 찾아오자 이내 지루함을 느끼고 당구계(?)를 떠났지만,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집중적으로 빠졌던 취미이다. 창의력에 기반한 스포츠이기에 음악, 마술처럼 끝이 없는 세계이다.
스물아홉, 올레길, 오름 등 걷기에의 탐닉.
서른, 스쿠버 다이빙 시작.
서른하나, 호주에서의 워킹홀리데이 1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다양한 일을 하면서 폭넓은 시야를 갖게 됐다. 선진국과 우리나라의 차이를 비교해보면서 사회를 보는 눈이 트였고, 자연스럽게 정치에 관심을 두게 됐다. 우리나라는 왜 선진국이 될 수 없는가를 공부하면서 현대사에 그 답이 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묻어버린 진실을 찾아 현대사 공부를 시작했다. / 호주의 주요 도시들과 주변 국가를 여행하면서 여행의 매력을 느끼고 세계 일주의 꿈을 현실화/ 여행 작가의 꿈을 처음 품다 / 버킷리스트 작성 시작 /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서른둘, TV를 버리고 평생 읽지 않던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서 나에게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책이다. 이때 책의 매력에 빠지지 않았다면 내 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 배드민턴 동호회에 가입하여 배드민턴을 배우기 시작. 재미를 느끼고 6개월 정도 열심히 하다가 올챙이 시절 기억 못하는 개구리(자신의 초보자 시절을 잊고 자기보다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무시하는 일부 동호회 사람들)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그만뒀다. 역시 나는 뭐든 혼자 하는 게 체질에 맞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 언젠가부터 록 페스티벌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UMF(Ultra Music Festival)에 사람들이 몰리길래 호기심에 UMF 첫 참가. 또 하나의 신세계가 열림. 이때부터 EDM도 즐겨 듣기 시작 / 걸어서 제주 올레 한 바퀴 완주 / 서핑 입문
서른셋, 후배와 함께 떠난 발리 여행에서 자전거 투어에 참가했다가 자전거에 처음 매력을 느낌. 평생 해도 지겹지 않을 것 같은 취미 중 하나. / 키나발루산 정상 등정. 등정 과정에서 고산병을 경험하고 언젠가 도전해보고 싶었던 에베레스트 등반의 꿈을 고이 접음. 에베레스트는 K2나 로체 등 다른 고봉들과는 달리 특출한 등반 기술이 없어도 상업 등반의 도움을 받아 등반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막연하게 꿈을 품어왔으나 현실을 직시하기로 함. 1996년 있었던 에베레스트 상업 등반 참사에서 살아남은 체험담을 쓴 존 크라카우어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2015년, 영화 『에베레스트』로 영화화됨)를 읽고 내가 얼마나 허황된 꿈을 꿨었는지를 뒤늦게 깨달았다. 때로 꿈은 꿈으로만 간직하는 게 나을 때가 있다.
서른 넷, 풀코스 마라톤 완주.
서른 다섯, 친구와 함께 카약 구입. 비양도, 차귀도 왕복 탐사 등 출발은 좋았으나 조천의 이름 모를 바다에서 전복 사고를 당함. 몇 년 안에 카약 업그레이드 후 제주도 한 바퀴 일주 계획 중 / 백패킹 입문
서른 여섯, 『날마다 소풍』 집필 시작
쓰고 보니 성공한 삶은 아닐지라도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며 행복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세상에 왜 태어났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내린 결론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각자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세상에 태어났다.’
세계적인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가 말했다.
“사람은 늙었다고 해서 놀기를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놀기를 멈추면 늙어버린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노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면서 놀다 가자.
하고 싶은 것을 찾아 그것을 즐기다 가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
* 단, 아무리 재미있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것들은 하지 말자. 도박, 마약 등 자극적인 재미만 추구하는 사람은 도파민 러쉬에 걸린 쥐와 다름없다.
스트레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내 앞에 아무리 멋진 풍경이 펼쳐져 있다 한들 안개가 잔뜩 껴 있다면 무슨 소용인가.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소들은 다양하지만, 그중 대부분은 타인과의 비교,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오는 것이 대부분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네잎클로버(꽃말 ‘행운’)의 행운을 좇으면서 수많은 세잎 클로버를 짓밟는다. 그런데 우리가 네잎 클로버의 행운을 찾기 위해 짓밟은 세잎 클로버의 꽃말을 아는가? ‘행복’이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의 삶을 신경 쓰는 만큼 타인의 시선도 늘 신경 쓴다. 쉬운 말로 남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 내가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쳐다보진 않을까? 싫어하진 않을까?
사회적 가면을 쓰고 남들에게 보여주고픈 모습만 보여주려고 타인의 시선 속에 스스로 갇히는 삶은 극심한 피로감을 동반한다. 물론 타인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는 연습을 의도적으로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온다.
타인의 시선과 관련된 흥미로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안경 가게 하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새로운 안경 가게를 열었다고 연락이 왔다. 개업식 날 가서 돈을 주고 올까 하다가 안경 가게니까 안경 많이 팔라는 의미에서 안경을 하나 샀다. 정작 안경을 끼지도 않으면서. 친구가 도수 없는 렌즈를 끼워주겠다고 했는데 눈앞에 다른 매개체가 가로막고 있으면 불편할 것 같아서 안경테만 달라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야 고민에 빠졌다. 안경이 렌즈를 통해 세상을 깨끗이 보라고 만들어진 물건인데, 알 없는 안경을 끼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까?
집에 모셔만 두기도 그렇고 해서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알 없는 안경의 쓰임새에 대해 검색해봤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한건 아니어서 ‘알 없는 안경을 쓰고 다니면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다음날 용기를 내서 알 없는 안경을 끼고 갔다.
걱정했던 것처럼 ‘알 없는 안경 끼고 왔네?’ 하면서 웃는 사람은 없었다. 하루가 다 지날 때쯤에야 ‘알 없는 안경이었구나’ 하시는 분이 나왔다. 그제야 다른 분들께 알 없는 안경임을 언제 눈치 채셨는지 물어봤다. 처음 볼 때부터 눈치 챘는데, 패션용 안경이구나 하고 지나치셨단다. 사람들은 타인의 겉모습 변화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데 나 혼자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고 있었구나. 알 없는 안경이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남 눈치 보지마. 사람들은 너한테 크게 관심 없어. 그냥 살고 싶은 대로 살아’
조금 전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 일에 너무 관심이 많다고 해놓고 이젠 사람들이 생각보다 남 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쓸데없는 일 -나보다 잘난(?) 사람들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 자존감 깎기,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다는 연예인 걱정 등- 에는 곧잘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지만, 내가 걱정하는 것만큼 남들이 나를 신경 쓰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타인의 시선은 감옥’이라고 말했다. 그는 1964년 『말』이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노벨문학상을 받으면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르트르가 진짜 사르트르를 방해한다고 생각하여 수상을 거절했다. 스스로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이처럼 감옥을 탈출하는 방법은 스스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뿐이다. 남 눈치 보지 말고 살자.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도 스트레스의 주요 요인이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기에 미래를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긴 하다. 미래에 불행해질까 봐 불안해하고 그래서 지금 뭐라도 준비해놔야 하지 않을까 늘 불안해한다. 나는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지금 행복해지면 된다. (그렇다고 미래를 준비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필요 이상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말고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현대인들은 어떻게 다가올지도 모를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너무 쉽게 유보해버린다. 오늘을 사는 게 아니라 내일을 산다. 당장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나중에 해도 된다고, 나중을 위해 지금의 행복은 잠시 접어두자고 미룬다. 그런 사람들은 하고 싶은 게 생겨도 십중팔구 못한다. 그사이 내가 안 해도 되는 이유를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혼자 하는 경우도 많지만, 다른 사람도 같이 하면 더 재미있겠다 싶을 때는 주위 사람들에게 함께 하자고 권유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록 페스티벌이나 공연은 혼자 가는 것보다는 여럿이 가야 더 즐겁기에 가기 전에 함께 갈만한 사람들에게 연락한다.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와- 재미있겠는데요? 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어요. 생각해보고 연락드릴게요.” 이런 대답이 돌아오면 일단 재낀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못 갈 확률이 99%다. 그사이 다른 일이 생겨버리거나 나중에는 귀찮아져서 자기합리화를 하게 된다.
록 페스티벌, 공연, 서핑, 백패킹, 스노클링, 카약 등 신나는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항상 함께 하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의 대답은 늘 이렇다.
“오케이, 언제? 지금 당장 예약하자.”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고 일단 지르고 본다. 일단 지르고 나면 다른 스케줄이 생겨도 이 일이 우선이 되기 때문에 결국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성격은 아닌데, 김어준의 위기돌파 방식과 자유분방한 애티튜드는 부러울 때가 있다.
김어준이 이런 말을 했다.
“행복은 적금 들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예치했다가 나중에 인출할 수가 없어요. 24살에 행복하지 않으면 34살에는 24살의 행복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어요. 지나갔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내일 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일 할 수 있는 일은 내일 하세요. 오늘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집중해서 하세요. 그러니까 당장 해라, 뭐든지, 이 얘기입니다.”
청춘의 길목 어디선가 행복의 조건에 대해 처음 생각했을 때 나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이 편해야 한다)면 행복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었다. 최근에 행복의 조건 하나를 추가했다. 사람.
학창 시절에는 내가 ‘무엇을’ 하게 될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무엇을 할지 명확해진 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했다. 이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하는가가 아님을 깨달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하는가이다.
히말라야의 멋진 설산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도 곁에 있는 사람이 마음에 안 들면 그저 그런 풍경이 되지만, 동네 뒷산 풍경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그곳이 지상낙원이다. 아무리 맛있는 술도 마음에 안 드는 사람과 있으면 술맛이 안 나지만, 동네 편의점에서 소주 한잔을 해도 좋은 사람과 함께 하면 술이 달다.
돌이켜보면 지금의 행복도 늘 곁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를 낳아주시고 보살펴주신 부모님과 이제는 내가 보살펴야 할 또 다른 가족, 생의 굽이마다 삶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친구, 선후배, 동료 등 행복의 순간에는 좋은 사람들이 늘 곁에 있었다. 그들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나와 그들, 범위를 더 넓혀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행하는 것, 그것이 나의 존재 이유이자 생의 의미가 아닌가 한다.
이제 더는 내가 그리는 행복이라는 그림에 나만 그려진 그림은 없다. 내가 그린 것은 어디까지나 밑그림일 뿐이었고, 그림에 행복을 덧칠해주고 멋진 배경이 되어주는 것은 언제나 사람이었다.
남은 삶은 그들과 함께 자주 소풍을 떠나는 삶이었으면 한다.
난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