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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Nov 14. 2018

행복의 전제 조건 2

* '행복의 전제 조건 1'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시야를 넓혀 우리가 사는 세상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여기는 세상이 100명으로 축소된 마을입니다. 

100명 중 20명은 영양실조이고, 1명은 굶어 죽기 직전입니다. 43명은 위생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으며, 18명은 깨끗하고 안전한 물조차 마실 수 없습니다. 만일 당신이 은행 예금 계좌를 갖고 있다면 당신은 가장 부유한 30명 안에 듭니다. 반면에 18명은 10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자가용을 소유한 자는 100명 중 7명이며, 오직 12명만이 컴퓨터를 갖고 있습니다. 그 중 3명만이 인터넷을 할 수 있습니다. 14명은 글조차 읽지 못합니다. 만일 당신이 냉장고에 음식을 보관하고, 옷장에 옷을 넣어둘 수 있으며, 잠을 잘 침대가 있고, 눈과 비를 막아줄 지붕이 있는 집에 살고 있다면 당신은 전 세계인 중 75%보다 부유합니다. 만일 당신이 공습이나 폭격, 지뢰로 인한 사망이나 무장단체의 폭력으로 인해 공포에 떨며 살지 않는다면 그렇지 않은 20명보다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 데이비드 스미스, 『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中


우리는 분명 주어진 것에 감사해도 될아니 감사해야 할’ 충분히 많은 이유를 갖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언제 어디서 폭탄이 날아들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전쟁 난민, 통통배에 물건마냥 빽빽이 실린 채 바다를 떠다니고 있을 보트 피플, 지금 이 순간에도 팔 굵기로 생사가 결정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전쟁 난민 캠프에서는 구호 식량과 물품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존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을 먼저 살린다. 팔 굵기가 일정 기준에 못 미쳐 생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구호단체에서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멀리 눈 돌릴 것 없이 우리 주위에 최저 생계비에도 한참 못 미치는 돈으로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는 사람들... 


그들에게 우리의 투정은 그저 사치일 뿐이다. 우리가 운이 좋아서 먹고 사는 걱정은 안 해도 되는 나라에 태어났지만, 시기를 잘못 타고 났다면 우리의 운명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지난 한 세기만 보더라도 일제 강점기, 한국 전쟁과 분단, 보릿고개와 독재로 이어지는 현대사의 거대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최소한 보릿고개는 넘긴 다음 태어난 것만으로도 그러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서는 분명 운 좋은 일이다. 나만 하더라도 지금은 제주도에 사는 것을 축복이라 여기지만, 70여년 전에 태어났다면 4.3 사건의 피바람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인생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감사하며 살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맨몸으로 태어나 우리가 갖게 된 것들 중 애초에 내 것이었던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우리가 걸치고 있는 옷, 우리가 먹는 음식, 우리가 쓰는 생활필수품, 우리가 소유한 것 모두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에게 전해진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지만, 생존 능력만 따지면 여타 동물들에 비해 뛰어날 게 없다. 망아지나 송아지만 보더라도 태어나자마자 비틀거리며 자력으로 걸어 다닌다. 그에 비해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할 수 있는 게 우는 것밖에 없다. 스스로 생존할 능력이 전혀 없는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다. 그때 날 안아주고 먹여주고 사랑으로 키워준 부모님이 누구에게나 있었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음을, 잊고 지낼 뿐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다못해 우리가 먹고 입을 거 걱정 없이 최소한 생존을 위협받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도 우리보다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희생 덕분 아닌가!     




하루는 오늘 아침까지 있었던 일 중 감사할 만한 일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침에 아프지 않고 일어날 수 있어서, 오늘따라 날씨가 화창해서, 아침밥이 맛있어서, 일터에 오는 길에 거리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좋아서, 큰길에 도착할 때마다 신호등이 제때 터져줘서... 단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 중에도 감사할 일이 참 많았다. 다음은 어느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찾아낸 ‘내가 삶에 감사하는 이유’이다.     


살아있어서, 건강해서, 놀 수 있어서, 집과 가족이 있어서, 오늘 체육이 들어서, 사랑받아서, 숙제가 없어서, 안경이 있어서, 글을 읽을 수 있어서, 꿈이 있어서, 친구가 있어서, 나만의 장점이 있어서,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여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야구할 수 있어서, PC방에 갈 수 있어서, 웃을 수 있어서, 느낄 수 있어서, 우리나라에 4계절이 있어서, 배불리 먹을 수 있어서, 걸을 수 있어서, 움직일 수 있어서,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어서, 숨을 쉴 수 있어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한글을 쓸 수 있어서, 건강한 두 다리가 있어서, 내가 행복해서, 내가 나여서, 감정이 있어서, 우주가 있어서, 전기를 쓸 수 있어서, 기적이 있어서, 남을 도와줄 수 있어서, 점심이 맛있어서, 집과 학교가 가까워서, 잠을 잘 수 있어서, 감사한 일을 쓸 수 있어서, 세상 모든 것이, 

감사합니다.     


불과 몇 분 만에 나온 답이다.  

그래도 감사할 일을 찾는 게 힘들다면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해보자. 동물로 태어났다면 내가 더 센 동물(특히 인간)에게 잡아먹히기 위해 태어났음을 죽는 순간에야 깨닫게 됐을 터이니 이보다는 낫지 않은가. 



이마저도 어렵다면 살아있음에 감사해보자. 호스피스 병동에 잠시 머물 일이 있었다. 이제 살날이 얼마 안 남으신 분들 앞에서 아직 살아갈 날이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책감이 느껴지던 그곳은 공기마저 무거웠다. 그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고,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어느 날, 맞은편 침실에 누워 계시던 아저씨 한분이 짐을 챙기셨다. 병원으로부터 잠시 집에 다녀와도 좋다는 허락을 얻은 듯했다. 뭐라고 인사해야할지 몰라 머뭇거리고 있는데, 그 분께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수고들 하세요” 

죽음을 앞두고 계신 분이라고는 전혀 믿어지지 않는 생기 가득한 말투였다. 그것도 살짝 미소를 머금은 표정과 함께. 살날이 며칠 안 남으신 분이 살아갈 날이 한창인 우리에게 건넨 인사 한마디에 일순간 멍-해졌다. 내가 저 상황에 처해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넬 여유나 있었을까 싶어서, 살아있다는 게 이렇게 감사한 일이었는데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 건 아닌가 싶어서. 


삶이 간절해도 질병으로 인해 더 이상의 삶을 기약할 수 없는 사람들, 기아, 전쟁 등의 이유로 살아도 죽느니만 못한 사람들에 비해 우리는 분명 ‘살만하다’. 

그러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불평하지 말고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일단 감사해보자그다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이 되면 된다.     


눈꺼풀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늘 움직이고 있었다     


인간이란 게 참 간사해서, 감사하며 살자고 늘 되뇌어도 쉽게 그 마음을 잊어버린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감사한 마음을 잊고 살다가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게 아님을 깨달을 때야 비로소 고마움을 느낀다. 몸이 아파봐야 건강할 때의 고마움을, 군대에 가서야 일상과 자유의 고마움을, 늘 필요할 때 곁에 있던 물건이 없어지고 나서야 그 물건의 고마움을 알게 되는 것처럼. 


내 경우만 봐도 그렇다. 지금껏 크게 아파본 적이 없었는데, 몇 년 전 통풍 진단을 받았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고통이 찾아온다. 통증으로 걷기 힘든 상황이 오면 나는 되뇔 수밖에 없다. 평소 아프지 않고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던가. 그런 의미에서 통풍은 쉽게 감사함을 잊고 사는 나에게 평소 고마움을 잊지 말고 살라고 하늘이 내린 축복의 형벌이다.     

사람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잊어버릴 때 공기의 예를 자주 든다. 공기가 없으면 숨을 쉴 수 없는데도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 듯 감사한 마음을 너무 쉽게 잊는다고. 


그런데 나는 어렸을 때부터 눈꺼풀이란 녀석이 참 신기했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이 녀석은 하루에도 수만 번을 깜빡이는데도 이 녀석의 존재를 잊고 산다는 게 가끔 너무 신기했다. 눈꺼풀이 움직이고 있음을 인지할 때는 오직 내가 의식할 때뿐이다. 눈꺼풀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상상해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하여 평소 감사한 마음을 잊고 사는 건 아닌가 싶을 때마다 나는 눈꺼풀그 사소하지만 없어서는 안 될 움직임에 감사함을 느낀다.  


내가 아는 한,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지금 당장 행복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한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삶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삶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은 삶에 감사한다. 다시, 삶에 감사하는 사람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배고플 때 먹는 음식이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는 목마를 때 먹는 맥주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사랑하는 사람과 바라보는 풍경이다. 일상의 소소한 기쁨과 이따금 일상의 지루함을 깨는 가벼운 파격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당신이 지금 당장 행복해지고 싶다면 내게 주어진 것들을 헤아려보고, 그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라. 분명, 우리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것들보다 주어진 것들이 훨씬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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