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레논의 사생활 때문에 그의 프로필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겠지만, 적어도 한 사람에게만은 큰 감동으로 가닿았을 것이다. 오노 요코.
존 레논 & 오노 요코
이 한 줄의 문장에는 “저는 지구상 최고의 락밴드 비틀스의 존 레논입니다. '비틀스가 예수보다 유명하다'는 말을 인터뷰에서 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비틀스가 세계 최고의 밴드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요. 그러나 그 사실은 제게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제겐 오노 요코, 당신이 제 인생의 전부입니다.”라는 메시지가 숨어있다.
지구상 단 한 사람을 위한 프로필, 내 인생을 정리하는 단 한 줄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 줄 수 있는 마음! 이건 분명 사랑이다.
세상을 먼저 다녀간 선인들이 자기 인생을 한 줄의 문장에 담아 묘비명으로 써 왔다. 마라톤 마니아로도 널리 알려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를 묘비명으로 쓰겠다고 했고, 아일랜드의 위대한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묘비명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선사했다.
조병화 시인은 ‘나는 어머님 심부름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가 이제 어머님 심부름 다 마치고 어머님께 돌아갑니다’라는 묘비명으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남긴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마지막 문장으로 작품 속 주인공 조르바가 되었다. 작가 특유의 유머가 빛나는 도로시 파커의 '먼지를 일으켜 죄송합니다'는 또 어떤가?
그 외에도 우리에게 긴 여운을 주는 묘비명이 많다. 다른 선인들의 묘비명이 궁금하다면 이하 작가의 책 『인생의 마지막 한 줄』을 추천한다. 도서관에서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읽었다가 나 또한 내 인생의 마지막 한 줄을 뭘로 할까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이하 작가의 『인생의 마지막 한 줄』
그렇다고 실제 묘비를 만들 생각은 없다. 무(無)에서 나와 한 줌 재로 돌아가는 게,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가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하기에 내 마음속 묘비에 새겨 넣을 한 문장을 건질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그렇게 ‘내 인생을 한 줄로 표현한다면? 그 한 줄에 걸맞은 인생을 살려면?’이라는 질문을 던진 끝에 겨우 건져낸 묘비명이 있긴 하다. 허나 지금 꺼내놓기엔 내 삶이 그 문장에 걸맞은가 하는 의구심이 지워지지 않아서, 오늘은 내 인생의 마지막 한 줄, 첫째 딸 생일 축하 버전을 준비했다.
단, 한 줄로는 도저히 안 되겠고 나에겐 두 줄이 더 필요하다.
“1982년 출생. 2002년 아내를 만남.
2014년, 단비를 만남.
2017년, 다온이를 만남. "
한빛의 세 줄 정리. 끝.
(단비가 이 글을 읽을 날을 상상하며...)
2014년 7월 9일을 기억한다.
태풍 ‘너구리’가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메가톤급 소용돌이를 몰고 북상하던 날,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독일에게 1대 7로 처참히 깨지던 날,
그 역사적인 현장을 두 눈으로 봐야 한다며 새벽을 뜬 눈으로 지새운 날,
그 여파로 생애 최초로 직장에 지각한 그 날.
단비는 초속 18미터짜리 태풍보다 빠르게 나에게 왔다.
큰 피해를 입힐 거라던 예상과 다르게 세상에 단비를 뿌리면서...
단비와 엄마를 연결했던 탯줄을 자르며 단비와 마음의 탯줄을 연결했던 그 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됐고, 지금도 그러하다.
내가 가진 모든 바람은 사치가 됐고, 난 더 바랄 게 없는 사람이 됐다.
단비 아빠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전까지는 후회되는 것도 많고 아쉬운 일들도 참 많은 사람이었으나,
한때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며 울기도 참 많이 울었던 사람이었으나,
단비를 만나면서 내 모든 지난 날을 사랑하게 됐다.
빛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터널을 걷던 그때,
그 끝에 낭떠러지가 있을 걸 알면서도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던 그때,
그 시절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면 지금 단비를 만날 일도 없었겠지.
그래서 늘 고맙다. 단비도, 그 시기를 버텨준 나도.
그런 이유로, 단비를 사랑한다는 건 내 지난날의 상처와 결핍마저 사랑한다는 의미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나 자신도 사랑하게 된다' 라니 이런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이 기적과 같은 일을 가능케 해준 한 사람에게 편지를 쓴다.
단비야, 아빠는 지금 Jarryd james의 '1000x'라는 노래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어.
단비도 지금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이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읽어보렴.
TV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인데, 가사가 어찌나 내 마음과 똑같은지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세상의 절반이 수면 아래로 잠기더구나. 눈물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또르르 떨어지자, 마음 속 불순물들이 씻겨내려가고 세상이 전보다 더 환해진 듯한 기분이 사뭇 황홀했다.
다만 노래에서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가사가 있었는데...
‘다음 세상에서도 내 마음은 변치 않을거예요.
다음 세상에서도 다시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천 번이라도 더’
아빠는 다음 세상을 믿지 않으니 이번 생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야. 가능한 내 모든 사랑을 남김없이 주고 가려해. 그리고 천 번이 뭐야, 아빠는 수억 번이라도 더 단비를 사랑할 거야.
실제로 이 말을 실행에 옮기는지는 살면서 세어 보길...
지금 혹시 밤이라면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봐. 아빠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글을 쓰고 있거든.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밤하늘의 별빛은 아주 오랜 전에 별에서 보낸 빛이 긴 시간을 우주 공간을 여행한 끝에 우리에게 닿는 거란다. 그중엔 이미 세상에 없는 별이 보낸 별빛도 있다고 해.
별이 폭발하는 순간, 별빛만 남기고 사라진 거지.
아빠는 단비한테 그런 별빛이고 싶어. 살아있는 동안 가능한 온 힘을 다해 단비를 비추는 별.
언젠가 아빠도 세상을 떠나야 하는 날이 오겠지? 그 때도 내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단비를 향한 별빛을 보내고 떠날거야. 그러니 가끔 밤하늘의 바라보며 유난히 반짝이는 별이 있다면 아빠가 보낸 별빛이라고 생각하길 바라.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 산다는 건 불안과 고통 끝에 오는 허무함 같은 건 아닐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늘 불안하고, 좋은 일에는 금세 적응하지만 나쁜 일에는 쉬이 적응하지 못하는 게 사람인지라 쉽게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그 끝에는 죽음이라는 허무가 기다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아름답다’고 느끼게 해주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야. 단비는 아빠에게 그런 존재란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앞으로도 할 얘기가 많으니까 오늘은 이만 줄일게.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저 수많은 별들 중 어쩌다 지구라는 별에 사람으로 태어나게 된 걸까 싶었는데 방금 답을 찾았다. 아빠는 단비를 사랑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