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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Apr 11. 2019

무결점 완성형 락스타

보다 - '몽타주 오브 헥'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필요 이상의 불안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우리 중 누구도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분은 유독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많으셨다. 불안이 그를 덮칠 때면 세상의 모든 걱정과 불안을 혼자 짊어진 듯한 얼굴이 되곤 했다.

그 분과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나는  불안의 근원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그분께서 자신이 쓴 자기소개서를 한번 봐달라고 하셔서 그분의 삶을 짧게나마 훑게 되었는데, 그 몇 장 짜리 종이를 읽고 나자 그동안 이해되지 않던 그분의 선택들이 하나둘 이해되기 시작하는 거다. 아, 그래서 그랬던 거구나...

그 날 나는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의 이해 안 되는 행동을 마주할 때면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자. 어차피 이해할 수 없을 테니까. 대신 그 사람의 배경을 보자.



그 때문일까. 언젠가부터 인물의 삶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를 즐겨보게 됐다.

'몽타주 오브 헥'은 커트 코베인(그룹 너바나의 리더)의 삶과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나는 불멸의 락스타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이유가 궁금했고, 세간의 의심처럼 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은 아닌지, 타살이라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지, 불확실하나마 답을 얻고 싶었다.



다큐멘터리는 커트의 어린 시절 홈 비디오와 부모(둘은 커트 어렸을  이혼했고, 커트는 마음 붙일  없이 이곳저곳을 떠돌아야 했다. 그런 환경 커트 결핍을 만들었을 거라고 많은 사람들은 추측한다)의 인터뷰, 코트니 러브(커트 코베인의 아내)의 인터뷰를 교차시키며 그의 흔적을 되밟아 간다. 누구나 선망하는 락스타의 삶의 살면서도 그 영광을 즐기지 못하고, 늘 커다란 눈동자에 우울과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이유를 다큐멘터리를 보면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락스타가 되기엔 너무도 섬세하고 결이 고운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


커트는 상업화된 대중음악 시장과 그 시장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버린 대중들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던 자신이 하루아침에 시류에 편입되어버린 현실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유명세 비례하여 커지는 대중의 기대와 관심, 사생활에 대한 언론의 집요한 집착은 그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가끔 인터뷰에서 기자들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고, 생방송 MTV 공연에서 예정된 세트 리스트를 뒤엎 무대 후반부에 무대를 부셔버리는  그만의 방식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의 오래된 결핍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마음 붙일 곳 조차 찾을 수 없었던 커트의 결핍은 애초에 채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커트 코베인의 아내 코트리 러브


우리 모두가 그렇듯 커트에겐 마음을 모두 내어놓고 의지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필요했지만, 안타깝게도 코트니 러브는 커트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커트의 자살 한 달 전, 코트니 러브가 바람피운 사실을 알게 된 커트가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사실은 이 다큐멘터리를 통해 처음 알았다) 심지어 그녀는 커트 코베인 타살 의혹의 피의자로 의심을 받는 상황이니 두 말하면 입만 아프다.


다큐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가 결핍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락이라는 음악 자체가 응축된 저항 에너지를 한 순간에 폭발시키는 음악이다 보니 그 당시 잘 나가던 그룹들을 보면 악동 이미지를 가진 밴드가 많았는데, (대표적인 예로 건즈 앤 로지스를 들 수 있다. 실제 너바나와 건즈 앤 로지스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한다. 물론 나는 두 그룹 모두 좋아한다.) 너바나는 그들과 달랐다.

건즈 앤 로지스

커트는 결핍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연대를 택했다. 그는 늘 약자와 소수자의 편에 섰다.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알아본다고 커트는 타인의 아픔에 자기 마음을 포갤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

"성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동성애 혐오자들은 너바나 공연장에 오지 마라"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락스타의 마지막 퍼즐이 그렇게 맞춰졌다. 누군가의 메시지가 그가 살아온 삶과 일치할 때 그가 가진 메시지의 힘은 배가되기 마련이고, 그의 사상과 배경을 알게 된 지금 그의 메시지가 주는 울림은 예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커트 코베인은 '무결점 완성형 락스타' 그 자체다.




이번 주말에는 너바나의 MTV UNPLUGGED 공연을 다시 봐야겠다. 그의 마음에 조금은 더 깊이 가닿게 된 지금, 공연 마지막 곡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의 한 맺힌 절규와 후반부 감정 폭발 직전의 가녀린 한숨 소리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오리라.

MTV  UNPLUGGED에서 공연하는 커트 코베인. 공연 몇 달 후, 커트 코베인은 유서와 함께 시신으로 발견된다. 그가 자살했는지, 타살당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덧붙임]

* 너바나의 리더로서의 커트가 아닌 커트 코베인라는 '사람'에 대해 궁금하다면 커트의 인터뷰로 채워진 다큐멘터리 '어바웃 어 손(About a son)'을 추천한다.


** 최근 분에 넘치는 직책을 맡는 바람에 다른 사람과 부딪힐 일이 생긴다. 그때마다 나는 가면 속에 숨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쪽을 선택한다. 커트의 명언 덕분이다.


다른 누군가가 되어 사랑받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미움받는 게 낫다.

- 커트 코베인(1967-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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