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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May 16. 2020

행복하게 사는 데 어느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프롤로그

친동생처럼 지내는 대학교 후배 있다. 이젠 사는 곳의 거리가 멀어자주 못만나지만, 지금술만 마시면 연락이 온다.

"형, 잘 지내죠?", "당근 아니냐?"로 시작되는 우리 대화는 늘 같은 대로 끝난다.

"형, 행복해요."

"난 거지가 돼도 행복하게 살 사람 아니냐? 내 걱정 말고 니 행복부터 챙겨."




나는 "행복하세요"라는 마지막 인사를 가장 좋아한다. 상대방을 좋아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마지막 인사여서 그렇다.

가령, "다음에 봐" 같은 인사는 누구에게나 할 수 있다. 길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별로 친하지 않았던 중학교 동창에게도 무심코 건넬 수 있다. "다음에 봐"


"다음에 봐"라는 마지막 인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이건 결국 한 번은 어길 수밖에 없는 약속이다. 우린 모두, 언젠가는 죽으니까...

실제 겪은 일이다. 우연히 길에서 마주친 대학교 동창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나보다 군대를 늦게 갔다. 시력이 안 좋았는데 시력을 교정해서 일부러 군대에 갔다고 전해 들었다. 전역 후,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다음 약속 때문에 마지막에 "다음에 보자"라고 인사했다. 그 친구는 내게 "너 내 번호 모르잖아? 나 번호 바뀌었는데?"라고 했고, 나는 멋쩍어하며 바뀐 번호를 물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번호를 교환했고, 다음에 만날 날을 기약했다. "다음에 보자."

그 친구는 한 달 후,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다음에 봐"와는 달리 "행복하세요"는 상대방과 나 사이에 친밀감이 없다면, 상대방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 않는다면, 건넬 수 없는 인사다. 그래서 좋다. 내가 누군가에게 "행복해라"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면, 그건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좋다.


최소한 "부자 되세요"라는 마지막 인사보다는 2백  배 낫다. 한 때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유행했던 때가 있었다. 그때가 2000년대 초였나? IMF 거센 폭풍이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간 뒤,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최고'라는 인식이 세상을 지배했.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는 카피를 내건 카드회사 CF욕망의 틈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가 대한민국의 사막화가 시작된 시점이 아니었나 싶다. 

아이, 텁텁해라. 물 한잔 마시고 다시 써야겠다.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나라가 사막이 되기 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웠던' 우리나라의 나날들을...

21세기 초, 그러니까 내가 대학교에 갓 입학했던 그 시절, 옆 학교 대학 축제에서 술을 진탕 마시다가 버스 막차를 놓쳐도 우린 걱정이 없었다.  큰 도로로 걸어 나가 히치하이킹을 하면 늦은 밤 그곳을 지나던 누군가가 의심 없이 태워줬다.

그땐 그랬다.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갑자기 생일 축하송이 울려 퍼지면 다른 테이블의 누군가가 생일을 맞았다는 뜻이었고, 그 술집에 있던 모두신나게 박수를 쳐줬다. 잠시 후, 옆 테이블의 생일 주인공이 와서 케이크를 나눠줬다.

그땐 그랬다.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억이 맞다면, 2002년 월드컵 16강전에서 안정환이 연장전 골든골로 이탈리아를 침몰시켰던 그 날 이후, 처음 보는 옆사람과 부둥켜 껴안고 환호하는 일은, 다시는 재현되지 않았다. 당시 대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제주시 탑동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지켜봤는데, 경기가 끝난 후 시청까지 걸어갔던 1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길거리의 모든 차들이 "빠빠빠- 빠빠"경적을 울렸고, 길을 걷던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짝짝짝, 짝짝! 대~한민국!"을 외쳤다. 난 세상이 원래 그런 건 줄 알았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그런 세상.





회상이 너무 길었다. 좋은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유행하더니,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같은 개떡 같은 CF가 버젓이 전파를 탔다. 지금이라도 이따위 카피를 만든 기획자의 멱살을 잡고 묻고 싶다. "후진 에 살면 내 가치도 후져지는 겁니까? 인생을 개떡같이 살아도, 남한테 피해 주면서 온갖 갑질 하고 살아도 비싼 집에 살면, 단지 비싼 에 산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가치는 올라가는 겁니까?"


나는 그런 일방적 기준이 싫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하고, 돈이 없으면 불행해져. 인정하기 싫겠지만 세상이 그런 거야. 그러니 일단 달려." 라며 사람들을 한 줄로 세워 경쟁시키는 그런 기준. 경쟁이 나쁜 게 아니다. '돈'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 국민이 달려들 게 만드는 사회구조가 나쁜 거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달렸다. 옆에서 달리니까 덩달아 불안해져서, 다들 달렸다. 그때 이미 세상과 삐딱선을 타기 시작 나는, 주류의 흐름과는 다 길을 걷고 싶었던 나는, 느긋하게 걸으며 열심히 달리는 사람들의 결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 다음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즈음 하여 자기 계발서가 유행했다. 자기 계발서는 말했다.

"생생하게 꿈꾸세요. 그러면 결국 이뤄집니다."

가뜩이나 불안했던 사람들은 굳게 믿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믿음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생생하게 믿고 최선을 다해 꿈꿨는데, 왜 이루어지지 않죠?"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어느 순간, 자기 계발서의 담론이 바뀌었다.

"당신이 8시간 자서 성공하지 못하는 건, 8시간 잤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8시간 잘 때, 6시간만 자세요. 그러면 반드시 성공합니다."

가뜩이나 불안했던 사람들은 굳게 믿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믿음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전 6시간밖에 안 자면서 꿈을 비비드(!)하게 는데, 왜 이루어지지 않죠?"

자기 계발서는 대답했다.

"그러면 4시간만 자세요. 당신의 노력과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급기야는 이런 제목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하아... 할말하않...


사회 구조의 모순으로 생기는 사회 현상을 개인의 능력 부족 탓으로 치환하는 건 이해하기 쉽고 그럴듯해 보였지만, 수많은 패배자만 양산했다. 가뜩이나 패자부활전 없는 이 사회에, 패배주의의 먹구름이 온 세상을 뒤덮었고,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돈만 좇는 현상도, 패배주의도 싫었던 나는 다짐했다.

"난 돈이 많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이 되겠다. 누군가 나를 보며 돈이 별로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이맘때쯤 아버지께도 말씀드렸다.

"저한테 재산 물려줄 생각 마시고 그동안 모으신 돈 다 쓰고 가세요. 대신 빚만 물려주지 마세요." 

아버지께서 '물려줄 재산도 없었는데 갑자기 웬 뜬금포냐?' 하는 표정을 지었었나? 하하.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었다. 후배와의 전화 통화 마지막에 늘 등장하는 대사처럼, 거지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데, 돈은 필수다. 없으면 죽는다.

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많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우리 사회가 살만한 세상이 된다고 믿었다.


언젠가는 실험해보고 싶었다.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데 어느만큼의 돈이 필요할까?"


캠핑카에 사는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집 값은 안들 테니까... 

일단, 한 달 동안 최소한의 비용으로 살아봤다.


이제 그 실험 결과를 공개한다. 두둥-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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