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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피 지망생 May 07. 2020

감사도 습관이다

탈원전 프로젝트의 서막

 내 집(?)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질문이 있다.

“여기 살면 전기는 어떻게 써?”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한다.

“거의 안 쓴다고 보면 돼. 가끔 손님 올 때만 전기를 . 지금처럼 캠핑카의 메인 이 켜졌다는 건, 손님이 왔다는 뜻이야”     


전국의 캠핑카 사용자를 대상으로 밴 라이프의 어려움을 묻는 설문조사가 이뤄진다면, 캠핑카 전기 사용 문제는 최소 3위 안에 랭크되리라 확신한다. 그 외 화장실, 샤워, 주차, 빨래, 물 보충 등의 문제가 수위를 다투겠지만, 내게는 전기 사용 문제가 단연코 1위, 아니 거의 유일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화장실, 샤워실이 없어서 불편하지 않냐고? 이  질문에"아니요. 화장실, 샤워실이 있어서 생기는 불편(공간 축소, 습기 문제, 물을 자주 채우고 비워야 하는 문제, 화장실의 배설물을 비워야 하는 문제, 고장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보다는 없는 게 나아요"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다만 전기 없이 살면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사실 좀 불편하네요. 그런데 또 적응되니 살만하네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행복의 역치(생물체가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를 나타내는 값)가 매우 낮은 사람이다. 남들이 불편하다고 여기는 문제에서도 나는 불편함을 느끼기는커녕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좋은 말로 하면 사소한 것에도 감사함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고, 건조하게 말하면 감각이 무딘 사람이다. 그래서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너 이렇게 ~하면 불편하지 않아?”


일례로, 나는 평소 스쿠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캠핑카를 살 때까지 차가 없었다) 눈이나 비가 오는 날에도 스쿠터를 타고 출근하면 사람들이 묻는다.

“이런 날 오토바이 타면 춥지 않으세요?”

나는 보통 “이런 날은 그냥 여행하는 기분으로 와요”라고 말하거나, 실제 너무 추운 겨울에는 “시원하다고 생각하면 춥다고 느껴지지 않더라고요”라고 말하곤 하는데, 100% 진심이다. 그러고 보니 불편함도 내가 불편하다고 느낄 때에만 불편한 감정이 된다는 깨달음 어느 멋진 날, 모터바이크 위에서 처음 얻었다.    

 



비 오는 날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비옷을 입고 감정 모드를 ‘여행 모드’로 바꿔 기분 좋게 출발했다. 그런데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그날따라 신호등은 왜 이리 자주 걸리는지, 우중충한 날씨에 차가 막히기까지. 설상가상 빗방울이 거세져 바지가 조금씩 젖기 시작하자, 덩달아 기분이 꿀꿀해졌다.

'나도 차를 하나 사야 하나? 이런 날은 차가 하나 있으면 좋긴 하겠다...'


그때 갑자기 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내가 불편함을 느끼고 있지만 이런 날은 사실 1년 중 며칠 되지 않는다는 것, 그 며칠 불편함을 느끼는 대신 1년 중 대부분의 날엔 모터바이크로 기분 좋게 출퇴근을 하고 있다는 것, 지금의 불편함조차도 내가 불편함으로 느껴야만 불편한 '감정'이 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불편함을 이용해 내가 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


내가 지금 잠시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을 참아내 돈을 벌고 있구나, 하는 사고의 전환! 내가 차로 출퇴근했다면 내 통장에서 새어나갔을 돈이니까... 지금처럼 불편함을 통해 아낄 수 있는 돈을 모아 사회에 기부하면 꽤 많은 돈을 기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렇게 내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만들어내는 돈은 사회 돌리는 셈 치자!

신기하게도 그 순간 불편함이 전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내가 기부하던 돈들이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빚 갚기도 바쁜데 기부금으로 빠져나가던 돈들이 아깝게 느껴졌던 게 솔직한 심정다.



내 삶에 번쩍하는 섬광이 비치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 느꼈던 감정에 ‘기분 좋은 불편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앞으로 살면서 돈이 부족해 불편함을 느낄 때면,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리리라...      


물론, 내 행복의 역치가 낮은 데는 타고난 성격한몫한다.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이 맛없다는 음식을 같이 먹고도 나는 항상 맛있다고 느꼈고(나는 지금껏 식당에서 밥 먹으면서 맛없다고 느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내도 ‘어떤 음식을 해줘도 맛있게 잘 먹는다’는 점을 나의 최대 장점 중 하나로 꼽는다), 여행 가서 어떤 집에서 자게 되든, 집이 크든 작든, 뜨거운 물이 나오든 안 나오든, 시설이 화려하든 누추하든, 그러려니 하며 넘다. 심지어 바누아투라는 나라에 갔을 때는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자게 되었는데도 색다른 경험이라며 웃어넘다. 텐트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서도 든든하다.


작년에는 미니멀리스트 실험을 한답시고 냉장고, 세탁기 없이 살아보기도 했는데 크게 불편함 없이 잘 살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전기 없이 여러 날 살아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캠핑카에 살면 전기 문제는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골칫거리 텐데, 이 기회에 전기 없이 한 번 살아봐?

내 집이 탈원전 실험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머릿속에서 '전기 없이 살아보기'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레가 울렸다.



이제 전기 없이 사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전기는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가끔 정전이 됐을 때 절실히 느끼게 된다. 우리 생활에 전기를 쓰는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를...

핸드폰, TV, 컴퓨터, 전등, 세탁기, 냉장고, 전기장판, 청소기, 헤어드라이기... 전기가 멈추면 내 삶도 그대로 멈춰버릴 것 같은 불안감.


그러나 과연 그럴까? 이나가키 에미코의 책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는 나보다 먼저 탈원전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평범한 아주머니의 탈원전 체험기다. (나의 탈원전 프로젝트도 그녀의 체험이 모티브가 됐다) 이나가키 에미코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있었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지켜보며 전기를 사용하는 물건들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우리의 삶은 전기 제품의 사용으로 정말 풍요로워졌을까? 더 편리해지기 위해 더 많은 물건을 만들고 더 많이 소유해야 하는 것일까? 더 많이 소유하면 더 행복해는 것일까?


저자는 말한다.

“정신없이 사 모았던 가전제품을 모두 처분한 내가 이렇게 편안해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것은 가전제품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다. 가전제품과 함께 부풀려온 ‘욕망’을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의 욕망이다. 폭주하는, 더 이상 스스로 제어할 수 없게 된 ‘막연한’ 욕망.”

솔직히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나조차도, 그래서 그녀의 책 구절구절에 격하게 공감을 표하던 나조차도, 너무도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의 삶을 살아가는 그녀를 보며 '전기 없이 사는 삶이 가능하기는 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다른 건 그렇다 치고 집에 불을 켤 수 있는데 굳이 전기를 끊어서 어둡게 사는 건, 굳이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었던 거다...


그러나 캠핑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전기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 꺼리가 산적한 캠핑카에서는 해볼 만한 도전이다.

캠핑카는 해봐야 1.5평이다. 2만 원짜리 태양광 랜턴 하나면 밤에도 얼마든지 환하게 불을 밝힐 수 있다. 이젠 나와 한 몸이 되어버린 핸드폰. 핸드폰 충전할 곳은 동네 카페, 도서관부터 친구 집, 가끔 들리는 부모님 집 등 도처에 널렸다. 차 운전을 할 때에는 차에서 충전하면 된다.

가끔 글 쓸 때 필요한 컴퓨터. 이건 종이에 펜으로 글을 쓰면 된다. 이거야말로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아날로그적 삶 아니던가.

그 외 캠핑카에서 전기 쓸만한 게 뭐가 있지? 의외로 별로 없다. 아, 냉장고! 손님 올 때만 특별 가동 하기 때문에 지금은 사실상 수납장으로 쓰고 있다. 또 뭐가 있더라... 집이 작으니 청소기는 당연히 필요 없고, 헤어드라이어, 건조기도 여기서는 사치다.


전기를 잃은 대신 얻게 된 것이 있다. 감사하는 습관!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감사하게 된다. 전기를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 더 이상 당연한 게 아니게 된다. 손님 오는 특별한 날 전기를 쓸 수 있게 해주는 태양광 충전과 주행 충전 시스템은 '당연한 게 아님'을 넘어 신비로움의 결정체다. (여기서 신비로움은 신기함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다. '신기하다'에 신성한(?) 뭔가가 더해져야 '신비롭다'가 된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마술은 신기한 거지만 대자연 순환의 원리, 생태계의 균형, 우주, 인체 등은 신비의 영역이다.)


먼저 태양광 충전.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태양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게 당연한 거라고 느끼고 감사함을 못 느끼지만 태양이 없었다면 우린 지금 지구 상에 있을 수 없다.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건, 아니 우주에 지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행성이 존재하는 기적이 일어난 건, 태양이 지구와 적당한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태양이 지구와 너무 가까웠다면 지구의 생명체는 모두 타 죽었을 것이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면 지구의 생명체는 모두 얼어 죽었을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지구에 조명을 내려주는 것도 모자라 전기를 제공해주다니!

지금 우리가 느끼는 햇살은 천만년 전에 태양 내부에서 생긴 빛이 태양 안에서 돌고 돌다가 우리에게 닿은 것이라는 사실을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에서 보고 황홀했던 기억이 있다. 천만년의 여정을 통해 나에게 닿은 빛! 우린 창밖의 햇살에도 감사해야 마땅하다.

잠깐, 태양광을 전기로 만드는 시스템을 개발한 인류의 성취에도 감사를 해야겠다. 덕분에 손님 올 때 냉장고를 켤 수 있게 되었네요.


다음으로 주행 충전 시스템을 보자. 자동차가 움직이며 전기를 만드는 시스템도 더 신기한 건, 아니 더 '신비'한 건 석유라는 물질의 존재이다. 아득히 먼 옛날 바다에 살던 동식물이 바다 밑에 쌓여서 오래 묻혀 있는 동안 큰 압력과 높은 열을 받으면 석유가 된다. 이게 상상이 되나?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먼 옛날, 지구를 살다 간 동식물의 유해가 먼 훗날 우리가 쓰는 석유라는 에너지원이 되다니! 이런 시스템은 도대체 누가 만든걸까? 신을 믿지 않지만 이런 땐 신과 같은 절대적 존재를 믿고 싶어진다. 먼 옛날 지구를 살다 간 생물에게도 감사를...


글이 자꾸 산으로 간다.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다.

결론은 전기 없이 살아봤더니 나름 살만하다는 것. 모험은 늘 그전에 느껴보지 못한 통찰을 가져준다는 것. 그래서 가끔 우리는 모험을 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

그러고 보니 지금 난 전기가 무한 공급되는 부모님 집에서 컴퓨터로 글을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전기에 감사를, 지금처럼 전기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전기 시스템을 만들어온 인류의 성취에는 찬사를!




난 어려서부터 내가 감사한 마음을 잊을 때마다 눈꺼풀의 존재를 느꼈다. 이 녀석은 하루 종일 수천, 수만 번 눈을 깜빡이는 노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데도 전혀 평가를 못 받는다. 오로지 내가 눈꺼풀이 움직이고 있다고 느낄 때만 그 존재를 느낄 뿐. 눈꺼풀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상상해보라.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이자리를 빌어 눈꺼풀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바이다.

눈꺼풀아,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다. 살아있을 동안만 고생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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