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도 9
연락 없는 용수를 기다리며, 이모는 이런저런 생각에 더 조급해졌다.
그렇게 참다못한 어느 날, 이모는 다짜고짜 은행부터 찾았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직원이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지만, 안쪽 VIP 창구에 혼자 앉은 직원을 보고 조심스레 물었다고 했다.
“계좌 번호는 모르는데, 누구한테 돈 좀 보낼 수 있을까요?”
이상한 낌새를 느낀 직원은 보이스피싱을 의심했던가 보다. 갑자기 주변의 직원 여럿이 이모를 둘러싸고, 자초지종을 묻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전화를 받은 건 아닌지, 왜 돈을 보내려고 하는지'
이런 갑작스러운 질문 공세에 이모는 작아졌다. 그들에게 가족사를 일일이 말하는 게 구차해서 그냥 떨치고 나오려 했지만, 범죄의 냄새를 맡은 직원들은 이모를 놔주지 않았다.
결국 이모는 은행에서 나에게 전화했다.
겁에 잔뜩 질린 채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나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라고 부탁했다. 이모는 용수한테 돈을 보낼 방법을 물었던 것뿐인데, 이게 웬 난리인지 모르겠다고 울먹거리고 있었다.
전화를 건네받은 은행 직원은 친절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의절한 아들’이란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고, 이모가 그 아들 계좌번호를 모르니 일단 은행부터 찾아가 보셨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래도 상황이 좀 꺼림칙했던지 직원은 계속해서 이런저런 질문을 이어갔고, 이모는 한참이 지나서야 도망치듯 은행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이모는 아직도 억울해한다.
이참에 모든 돈을 빼서 다른 은행으로 옮기겠다고 큰소리치더니, 생각보다 번거로운 절차에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고 억울해했다.
“그냥 못 하면 못 한다. 그 말만 하면 되지. 지들이 뭔데 왜 보내냐 꼬치꼬치 따지고 물어.”
어쩐지 ‘내가 괜한 짓을 한 건가’ 뜨끔했다. 울먹이는 이모를 거기 앉혀두고 내가 너무 평탄하게 이모의 가족사를 나열한 건 아니었는지 후회도 됐다.
이모에게는 단란하지 못한 가족관계가 드러나는 게 그 무엇보다 더 심란한 일이었던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