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황도 08화

엄마와 이모

by 고미젤리

이모는 우리 엄마의 장례식 이야기를 했다. 당연히 가야지 생각은 했단다.

하지만 이모부가 바람을 들키고 그로인해 큰 싸움이 벌어졌던 날, 이모는 그 무자비한 폭력을 피해 우리집으로 도망왔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우리 엄마가 한 말은 오래오래 이모의 가슴에 맺혀 딱딱한 돌덩이가 되어 버렸다.



맏이였던 엄마는 늘 그렇듯이 동생들에게 권위적이었을 것이다. 그날도 "남자들이 다 그런거지, 참고 살아야지"라고 동생에게 매몰차게 이야기했다고 한다. 뭐라 끼어들 말을 찾지 못한 우리 아빠도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고 했다. 자기편을 찾지 못한 이모는 ‘겨우 이런 소리 듣자고 여길 왔나’ 싶어 막다른 골목에 몰린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너네 엄마가 좀 못됐니? 나 어렸을 때도 덩치 작다고 얼마나 때렸는데. 그것도 언니라고 겨우 찾아갔더니 너네 아빠 앞에서 애 데리고 여기까지 왔다고 얼마나 뭐라 하는지......”


이모는 말끝을 흐리며 그날의 설움을 토로했다.


나는 이미 돌아가신 우리 엄마의 말들을 감싸줄 수는 없었지만, 이모의 그 서운함을 마냥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이모가 그렇게 한밤중에 우리집에 왔던 일이 몇 번이었는지. 한 밤중 잠에서 깼을 때 이모의 우는 목소리를 듣고 잠이 확 달아났던 적이 몇 번인지. 그 모든 것이 이모부의 잘못때문이었지만, 어린 나의 눈에는 이모의 '하소연'만 보일 뿐이었다.




이모부가 말썽을 부린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어떻게 참냐고, 자꾸 참아줬더니 이제 당당하기까지 했다고 말하는 이모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모부의 바람 상대가 누군지 알아보려고 쫒아다닌 적도 있지만, 매번 여자들은 바뀌고 이모는 지쳐갔다.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눈 꼭 감고 살자고 생각했을 때, 그 아들마저 아빠의 새 여자가 준 장난감을 들고 오는 걸 보니 눈이 뒤집혔다고 했다. 결국 이모는 울며 매달리는 용수를 떨치고 그 집을 나왔다. 경제권 없는 엄마가 양육권을 달라는 말은 하기 힘든 시절이라, 이혼은 아들과의 이별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았지만 더이상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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