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매일 지나다니는 산책길이 있다. 바로 옆이 구릉 같은 산자락이라 지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조용한 길이다. 가벼운 빗방울은 우산도 없이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나무가 우거져 있고, 계절마다 그에 맞는 꽃들이 한가롭게 피는 예쁜 길이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주변 회사원들이 하나 둘 그곳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종이컵, 또 다른 손에는 담배를 들고서 말이다. 몇 백 미터 긴 길이지만 폭이 좁아 담배 연기와 냄새를 절대 피해 갈 수 없어, 일부러 들으라고 콜록콜록 소리를 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버젓이 학교 통학길이라는 표시가 있고, 담배로 인한 민원이 많다는 작은 표지판까지 있지만 말이다. 길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은 왜 하나같이 꽁초를 아무 데나 버리고 침을 뱉는지, 그들이 애용하는 지점은 풀들이 자라지도 못하고 더러운 종이컵들이 나뒹굴고 있다.
그렇게 부글부글 불만을 쌓고 있던 어느 날, 남자 두 명이 웃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게 보였다. 보통은 길가로 뒤돌아서 피는 양심이라도 보이는데, 이 불한당들은 당당하게 가운데서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미 멀리서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어디 피할 데도 없고 어떻게 지나야 하나 짜증이 밀려왔다. 그때 갑자기 나도 모르는 ‘제2의 자아’가 그들 앞에 나섰다.
‘이곳은 통학로고 산책길인데, 여기를 가로막고 담배를 피우시면 어떡해요?’
다짜고짜 소리부터 지르니 그들도 당황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들보다 더 당황한 것은 나였다. 세상에나. 소심하기로 치면 첫째로 꼽힐 인간인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나 보다. 그때 그중 한 명이 약간의 비웃음과 함께 되받아 쳤다.
‘그렇다고 이게 불법이에요?’
그렇다. 요즘은 모든 게 법으로 통하는 시대이다. ‘몇 만 원 이하의 과태료’라는 명백한 법 조항이 없으면 이들은 멈추지 않는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얼른 길가에 꽂혀 있는 구청의 금연 팻말을 가리키며 목에 걸고 있는그들의 사원증을 흩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대기업 직원들이었다.
‘저기 구청에서도 금연 구역이라고 표시하고 있잖아요. 00 회사로 바로 민원 넣어볼까요?’
얼굴에 제대로 된 진상을 만났다는 낭패의 표정이 스쳤다. 결국 서로를 다독이며 그들은 자리를 떴다. 나는 그렇게 짧은 순간 세기의 결투를 끝낸 것이다. 하지만 승리의 기분도 잠시, 집에 오는 길 내내 뒤통수가 따가웠다. 혹시라도 그들이 다시 돌아와 내 머리라도 잡아챌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해졌다. 종종걸음으로 집에 들어서 보니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이 가관이다. 내가 어쩌자고 덩치도 큰 남자들 앞에서 그렇게 소리를 쳤는지, 생각할수록 아차 싶었다. 그나마 큰 분쟁 없이 넘어갔으니 망정이지, 정말 나쁜 사람들 같았으면 같이 싸우자고 덤볐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오자마자 딸에게 나의 무용담을 늘어놨다. 아빠에게는 말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안 그래도 남편이 요즘 나의 감정 기복에 주의를 줄 때가 많아서 더 이상의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딸도 잔소리를 한 바가지 늘어놓으며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긴 했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 나는 담배 피우는 사람이 보일 때마다 멀리서부터 자기 최면을 건다. ‘아무 말도 하지 말자. 모른 척 지나가자.’라고 말이다. 아무래도 정의의 사도가 될 그릇이 아닌가 보다. 그리고 몇 주 후 문제의 장소에 아주 크고 기다란 플래카드가 걸렸다.
'00 주식회사, xx 회사 여러분, 여기서 담배 피우지 마세요. 항의에 시달리는 건 저희 □□입니다.’
산책길 바로 끝에 있는 □□ 는 불교단체이다. 나는 한 번도 스님이나 참배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는 건 본 적이 없는데, 아마도 가장 가까운 쪽에 있다 보니 항의가 그쪽으로 들어갔나 보다. 어쨌든 그 플래카드를 보니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담배에 괴로워하고 항의했던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굉장한 응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어쨌든 이번 일로 사회적 분쟁은 차분한 대화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물리적으로 치고 받기 전에, 법적으로 따지기 전에, 먼저 서로를 배려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헤아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놈의 갱년기 폭발은 50년 넘게 쌓아 온 나의 인성을 하루아침에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게 만든다. 그동안 어렴풋이 들어왔던 질풍노도 갱년기가 바로 이것이구나 깨달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한 밤중 등이 뜨거워 잠이 깨고, 별 것 아닌 일에 불 같은 분노가 일어나며, 뜬금없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땀이 나기도 하는 등 신체적, 감정적으로 다가오는 변화는 아직도 낯설고 갑작스럽다.
바로 며칠 전, 딸과 함께 동네 편의점에 가는 길에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이 아저씨는 한 술 더 떠 남은 꽁초를 길가 배수구에 쑤셔 넣고 있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아저씨에게 여지없이 한 소리 중이었다.
‘꽁초를 거기에 버리시면 어떡해요.’
지난번과 다른 점이라면, 내가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줌마가 뭔 데 잔소리야.’
반말을 무시하며 나는 함박웃음과 함께 한 소리 더 한다.
‘제가 틀린 소리 한 건 아니잖아요? 반말은 너무하시네.’
여유만만 돌아섰다. 둘러보니 손을 잡고 걷던 딸은 이미 저 멀리 도망가 있다.
‘그래. 나도 내가 예측이 안 되는데, 너라도 살아야지.’
갱년기는 외롭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