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이유가 아닌 뭔가 거대한 사회적 이슈로 인해 나의 존재를 돌아보는 날들이 생긴다.
어릴 적 가족들과 TV로 야구를 보다가 북한 비행기가 쳐들어왔다고, 전쟁이 터졌다고 난리가 났던 날의 기억은 지금도 또렷하다.
내야, 외야를 지키던 선수들이 하나 둘 운동장을 빠져나가던 모습에 놀라던 엄마 아빠의 걱정스러운 대화도 기억난다. 결국 온 가족이 손 잡고 오직 ‘라면’ 사수를 목표로 동네 가게를 뒤졌다. 너무 심각한 표정의 아빠가 왠지 무서워 ‘옆에 내가 있어요…’ 알려주려고 아빠 손을 만지작 거렸던 나.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던 날, 회사 휴게실에서 뉴스를 보던 누군가 ‘삼풍이 무너졌다!’ 외쳤다. 차마 건물이 무너졌다는 상상은 못 하고 삼풍이 망했나 보다 생각했던 나.
세월호가 잠기던 그 시간, 한 회사 동료가 ‘배가 뒤집어졌다’ 전했다. ‘설마, 분명 아까 다 구했다는 속보가 있었는데’ 생각하며 떨리는 손으로 인터넷 뉴스를 뒤지던 나.
그리고 어제의 나는 사소한 말다툼 후 화해를 기념해 남편과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TV는 틀어놓은 채였지만 집중하지 않았다. 무슨 담화를 발표 중인 것 같았지만 그마저도 예전의 자료화면인 줄 알았다.
귀를 의심케 하는 발표
‘비상계엄’
난데없이 헬기 소리도 시끄럽게 들렸다.
실시간 상황이 궁금해 들어가 봤던 동네 맘 카페도 열리지 않았다.
‘이건 말이 안 돼!‘ 공허하게 외치며 온 가족이 흥분했다. 다 같이 TV 앞에 앉아, 핸드폰 뉴스를 뒤적이며, ’우리라도 뭉쳐야지.‘ 서로를 안기도 했다.
2024년 12월 3일 밤.
나는 집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무얼 하고 있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