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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Sep 28. 2020

요가를 하고 키가 컸습니다



“나 엄청 뻣뻣한데 요가할 수 있을까?”
“뻣뻣하니까 해야지. 유연하다면 오히려 힘을 키워야 하는 거고. 그런데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되었어?”
“건강검진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더라.”

30대의 나이에 들은 ‘노화’라는 단어는 그녀를 충격에 빠뜨렸다. 그동안 새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라거나, 업무 스트레스가 많아서 생긴 거라고 위안이라도 했었는데, 2년 전 검진 때보다 1cm 줄어든 키가 수치로 증명하는 노화는 더 이상 부정할 수도 없었다. 의학적으로는 만 30세부터 노화가 시작되고, 성장을 멈추는 것에서 더 나아가 원래의 키가 5cm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나타날 줄이야.

그런데 나는 30세가 넘어서, 더 정확히는 요가를 시작한 이후에 키가 2cm 넘게 컸다. 키는 성장판이 닫히면 그만 자라는 것이고, 이는 사춘기 후 2년 정도면 닫히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그래서 요즘 엄마들은 미리미리 성장 호르몬 검사나 성조숙증 검사를 시키고 키 성장 클리닉에 자녀들을 데리고 다닌다고 들었는데?


2cm는 실제로 키가 컸다기보다는 굽은 척추가 펴졌고, 뼈가 성장했다기보다는 배열을 바로잡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요가는 몸을, 그러니까 근육을 계속 늘려낸다. 심지어 근육을 잘 늘려내기 위해 근육을 둘러싸고 있는 근막을 폼롤러, 마사지볼, 요가링 등의 도구를 이용해 이완하기까지 한다. 자가 근막이완, 스스로 하는 근막 마사지라 부르는 것들이다. 갈거나 깎아내지 않고서야 딱딱한 뼈의 모양을 바꿀 방법은 없다. 뼈에 촘촘히 붙어있는 근육을 이용해서 이렇게 조금씩 뼈가 자리 잡은 위치를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요가 수업을 듣다 보면 선생님은

“척추를 위로 뽑아내서 척추 길이가 짧아지지 않게 그대로 상체를 숙이세요.”

“정수리를 천장으로 끌어올려 목 길이를 길게 늘여 바르게 섭니다.”

“갈비뼈 사이사이에 공간을 만들어서 늘려주세요.”

와 같은 이치에 맞지 않는 디렉션을 하시곤 하는데, (척추를 어떻게 뽑을 것이며 목을 무슨 수로 늘린단 말인가. 갈비뼈 사이에 공간은 또 무슨 말이고?) 그 동작들이 내 굽은 척추를 펴고, 짓눌려있는 관절들에 공간을 줬나 보다.


척추를 늘리는 동작들은 뇌하수체에 영향을 줘서 성장 호르몬 분비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관절을 유연하게, 또 근육의 긴장감을 풀어내면 자연히 신진대사가 원활해질테니 내가 자세히 모르는 또 다른 의학적 이점이 나오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다.


요가를 한 후 눈으로 보이는 효과는 키카 컸거나 척추 측만이 개선되었거나 굽은 어깨가 펴졌거나 뒤틀린 골반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겠으나, 요가를 하며 진짜 커진 것은 키가 아니다. 그건, 나의 마음이다. 센티미터로는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커졌다.


부드러운 마음, 단단한 마음, 버티는 마음, 놓아버릴 줄 아는 마음, 굳건한 마음, 유연한 마음, 거절하고 싶은 마음,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 성긴 마음, 촘촘한 마음, 무덤덤한 마음, 예민한 마음, 흘러가는 마음, 머무는 마음 , 고요한 마음, 시끄러운 마음, 다정한 마음, 싸늘한 마음, 끓어오르는 마음, 식어버린 마음......


이 마음들을 판단하거나 재단하지 않고 ‘이게 다 내 마음이다. 이것도 나이다.’라고 포옹하고 포용하니 어느새 이렇게나 커져버렸다.


몸을 움직이는 요가가 마음이랑 무슨 상관이냐는 질문은 역사가 깊어 보인다. 요가 선생님들의 선생님들의 선생님인 파탄잘리의 <요가수트라> 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제부터 요가가 시작된다
요가는 마음의 제어이다

 

허리를 과도하게 꺾고, 기이하고 극단적인 자세들은 도대체 왜 하는 것인지 이해를 못하던 때가 있었다. 수련을 하면서 이것들은 나의 마음 저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기 위한 과정이자, 내 마음을 컨트롤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매트 위에서 몸을 움직이는 동안, 호흡을 하는 동안 생각하는 것은 나 하나뿐이다. 가만히 내 몸을 느끼고, 마음의 소리를 듣고, 몸의 통증을 알아주고, 마음속 슬픔을 인정해주는 것, 그 시간과 과정이 마음을 키웠다.


커리어나 재테크에 할애해서 공부하고 투자하는 시간의 반이라도 내 몸이나 마음을 들여다보고 챙긴 적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그렇게 20년, 30년을 산 후에 망가진 몸과 고장 난 마음에 후회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지 않았나. 요가를 하는 동안 몸과 마음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이를 보듬어줄 따뜻한 치유력을 배운 것, 그건 2cm의 키와는 비교할 수 없다.






매주 월요일에 만나요


글: 에디 (https://instagram.com/edihealer)

그림: 제시 (https://instagram.com/jessiejihye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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