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스타그래머의 삶
슈렉이의 인스타그램을 만들고 알게 된 사실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세상에는 슈나우저가 정말 많다는 것이다. '슈나우저 슈렉'으로 인스타그램에 가입하자마자 팔로우를 하는 슈나우저 친구들이 하나, 둘 늘더니 열흘만에 100명을 넘어섰다. 물론 슈렉이가 팔로우하는 계정 역시 모두 슈나우저다. 하하하.
매일 슈글슈글 올라오는 똑같이 생긴 아이들의 피드를 구경하면서 하는 생각은
'어머, 얘는 슈렉이랑 완전히 똑같이 생겼어.' 혹은
'역시 우리 슈렉이가 제일 잘 생겼네.'와 같은 외모 평가이거나
'어머어머, 우리 슈렉이도 아기 때 이렇게 잘 뛰었는데.' 혹은
'얘는 우리 슈렉이보다 나이가 많은데 건강하구나.'와 같은 나이 비교이다. 그러니까, 아기 슈나우저 친구들의 피드를 보며 슈렉이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나이가 많은 슈나우저 형님들을 보며 슈렉이가 겪게 될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한다. 치매에 걸려서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고 있거나, 지방종 때문에 몇 번의 수술을 거치는 형님들을 본다고 해서 나중에 슈렉이가 겪게 될 병들에 대해 슬퍼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인스타그램에 '슈나우저슈렉' 검색그리고 '슈렉'이라는 이름을 가진 슈나우저가 세상에 세 마리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스타그래머' 슈나우저 슈렉이라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아무튼, 한 친구는 브라질에 살고 있고, 또 다른 친구는 파나마에 있다. 브라질 친구는 2006년 생으로 한국 슈렉이보다 5살이 더 많던데, 2016년 이후로 피드가 올라오지 않는 것으로 짐작해볼 때 먼저 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브라질 슈렉의 부모가 나처럼 인스타그램을 검색해보지 않을까 싶어서 슈렉이 소개란에는 '2011년 한국에서 태어남'이라고 적어 놨다.
그리고 이런 메세지를 받았다. 한국에 슈렉이보다 먼저 세상을 살았던 슈나우저 슈렉이가 있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슈렉이와 함께하는 순간순간이 더 소중해졌다는 거다. 모두 다 기록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공유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부모님 댁에 가면 슈렉이 밥 먹는 것도 찍고, 자는 것도 찍고, 노는 것도 찍고, 뭐든지 찍어댄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목욕하는 것을 찍기로 했다.
10년 넘게 격주로 목욕을 시켰으니 200번도 넘게 시킨 목욕이다. 아기 슈렉이는 너무 작아서 세면대에서 목욕을 시켰었고, 세면대보다 커졌을 때 욕조로 들어갔다. 어느 날엔가는 키가 훌쩍 커서 욕조를 짚고 일어나니 상반신이 다 나올 정도가 되었다. 원하면 언제든 폴짝 뛰어나와 도망갈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슈렉이는 그러지 않았다.
"근데 슈렉이 목욕하는 거 좋아하나 봐요. 도망가지도 않고 물려고 하지도 않고 얌전히 가만히 있네."
"좋아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 항상 착하게 기다려줬어."
"시원한가 보네."
"체념한 걸 수도 있고. 하하하"
딱 하나 변함이 없는 사실은 목욕하는 동안 슈렉이는 얌전히 있는다는 것이다. 워낙 마사지를 좋아하시는 반려견님이라 샴푸 할 때는 손가락에 힘을 야무지게 주고 지압까지 하며 등을 마사지해드린다. 우리도 미용실에서 샴푸 받을 때 마지막에 헤어디자이너 선생님이 두피 지압을 해주면 그렇게 시원하지 않나? 그 느낌을 살려 우리 슈렉이에게도 그렇게 해주려고 한다.
올케와 나는 슈렉이 사진 한장 건져보겠다고 강아지 앞에서 이렇게 재롱을 떨고 있다.요새 나와 팀을 이룬 슈렉이 인스타그램의 촬영 담당은 남동생의 아내, 나의 올케이다. 아무래도 우리 엄마가 찍어주는 사진은 인스타 감성이 아닌데, 올케는 그걸 기가 막히게 안다. 본인도 오랫동안 강아지를 키우고 있기에 강아지에 대해 잘 알기도 하고, 무엇보다 슈렉이를 예뻐해서 우리는 환상의 짝꿍이다.
나: "우리 슈렉이 이렇게 예쁜데, 인스타그램 말고 유튜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슈렉이: '아..... 멍스타그래머의 삶도 몹시 피곤한데, 멍튜버까지 되어야 한다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