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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i May 09. 2022

강아지가 삐지는 이유

내 눈에는 아기이지만 실은 11살 노견


“슈렉이가 늙어서 조절이 잘 안 되나 봐. 거실을 한강으로 만들어놨네.”


66세의 늙은 어머니께서 11살 노견이 참지 못하고 거실에 싸버린 오줌을 닦고 계신다. 슈렉이는 실외배변견이라 집안에서 실례를 하지 않는데, 별안간 벌어진 일이다. 바로 옆에 어릴 때 쓰던 배변패드가 있는데, 한 발자국을 더 뗄 힘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자기가 쓰던 배변패드를 잊은 것일까.


슈렉이와 함께 하면서 나의 미래, 우리 부모님이 겪게 될 일을 본다. 인간의 100년 삶이 강아지에게는 15~20년으로 축소되니, 그 짧은 기간에 진행되는 노화의 과정을 지켜보는게, 미리 경험해보는게 즐겁지만은 않다. 솔직히, 가혹하기만 하다.


이렇게 해맑해맑 어린데 어딜봐서 노견이라고 하는고야?

강아지의 시간은 인간의 것보다 7배가 빠르다던데, 그렇다면 내가 여행을 가느라 일주일 집을 비운다면, 슈렉이는 나를 1~2달간 동안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여행을 갔다가 일주일 만에 돌아온 내게 역시나, 슈렉이는 어색했다. 잘 안기지 않았고 불러도 멀찍이서 멀뚱멀뚱하기만 하다.


“슈렉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너무 오랜만에 와서 삐졌어?”


그러니 최선을 다해 시간이 허락하는 한 꼬박꼬박 슈렉이를 만나러 갈 수밖에 없다. 슈렉이를 핑계로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부모님 댁에 들러 엄마 아빠도 뵙고 오니 일석이조다. 이게 다 슈렉이 덕분이다.


요즘 산책하다 중간에 주저앉기는 기본

“왜? 집에 돌아가기 싫다고? 아니야? 걷기 싫다고? 엄마가 안아줄까?”


산책을 나와 반쯤 걸었을 때 슈렉이가 발걸음을 멈추고 엉덩이를 대고 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그 이후로는 한 발 한 발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다. 슈렉이의 발걸음이 확연히 느려진 것을 보니 체력이 방전된 것같다. 산책을 나갈 때만 해도 에너지를 주체 못 해 방방 뛰던 녀석이, 이렇게 금방 에너지가 고갈될지 스스로도 몰랐을 것이다. 알았다면 똑똑한 슈렉이는 페이스를 조절했을 테니까.


베이비 슈렉이  철퍼덕 “힘들어서 더는 못간다. 나를 안고 가라”

그래도 어릴 때처럼 힘들다고 바닥에 푹 퍼져서 엎드려버리는 일이 없다는 게 신기하다. 대신 천천히 걷고, 중간중간 멈춰서 앉았다 가는 것이, 확실히 철이 들었나 보다.


아기 슈렉이가 노견이 되는 동안 나도 11살을 더 먹었고, 그건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이다. 파워 워킹, 경보를 즐겨하던 나 역시 이제는 한걸음 한걸음 정확히 발바닥을 지면에 디디며 걷는다. 발목이 삐끗하지 않게,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게. 매일 슈렉이를 산책시키시는 부모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함께 늙어가는 우리 가족은 보조가 잘 맞는다. 슈렉이는 우리 가족의 건강관리를 담당하는 훌륭한 페이스메이커이다.


엄마랑 하이파이브 쯤이야!

그래서 중간에 벤치가 보이면 슈렉이와 함께 앉아서 쉬어간다. 사진도 남기면서 말이다. 요새 우리의 산책 루틴은 그렇다. 이것도 썩 괜찮다.



https://youtu.be/-4OWGny0SI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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