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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Jun 14. 2022

어떤 개가 가장 행복할까?

산책 나와서 행복해요

“슈렉이가 강아지 별로 떠나고 나면, 다른 강아지를 또 키울 거야?”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이상 못하지. 매일 출근해야 하는 사람은 강아지 키우면 안 돼.”

“직장 다니는 사람도 다 키우는데?”

“빈 집에 강아지만 놔두고 나갈 수는 없어. 지금이야 우리 엄마가 나 대신 슈렉이를 키워주시니까 가능한 거고.”


내가 출근하느라 집을 비우는 10시간, 11시간 동안 강아지를 혼자 놔둘 수는 없다. 강아지는 자기가 버림받았다 생각해서 목 놓아 울고 있을 것이고, 난 그게 마음이 쓰여 제대로 일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강아지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보다 7배가 빠르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집을 비우는 10시간은 결국 강아지에게는 70시간의 길이로 느껴질 테고, 마치 3일을 꼬박 빈집에서 주인만 기다리고 있는 느낌일 것이다.  


https://instagram.com/lainey.molnar. 양육, 육아의 의미를 재정의해야 하는 시대.

슈렉이와 함께한 이후로 우리는 네 가족이 함께 여행을 간 적이 없다. 나는 엄마와 단둘이 모녀 여행으로 일주일씩, 열흘씩 해외여행을 다니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단 하루의 국내여행도 못 간다. 우리 집은 슈렉이를 장시간 차에 태울 자신이 없어서 여행을 포기한 케이스이지만 다른 방법도 있긴 하다. 애견 동반 리조트, 애견 동반 호텔, 애견 펜션으로 강아지를 데리고 여행을 가는 것이다. 전용 공간에서 강아지들이 목줄 없이 뛰어노는 사진만 봐도 행복하다.    


나는 운이 좋게도 슈렉이 할머니가 슈렉이를 키워주셔서 여전히 자유롭게 여행 다니고, 요트 타러 다니고 고작 일주일에 두세 번만 슈렉이를 보러 가지만, 슈렉이 할머니는 어쩌다 보니 일하는 딸 대신 주양육자가 되시어 그 책임감 때문에 여행도 다니시지 못한다. 그래서 슈렉이 할머니께 중요한 스케줄이 생기면, 난 회사에 휴가를 내고서라도 슈렉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또한 내가 휴가인 날은 미리 말씀드려서 다른 일정을 잡으실 수 있도록 한다.


이거 내 도시락 가방. 내 얼굴 그려져있음.

이번 주는 슈렉이 할머니의 스케줄로, 주말 동안 내가 슈렉이를 맡게 됐다. 슈렉이는 생전 여행을 가본 적이 없는 강아지라 집 밖에서 자는 것에 예민할 것이 분명했다. 슈렉이가 쓰는 침대, 담요, 배변패드, 밥그릇, 물그릇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내 집으로 데려왔다. 슈렉이가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으로 봐서는 아직 편안한 자기만의 아지트를 찾지 못한 것 같았지만, 생각보다 잠은 잘 잤다. 새벽에 두 번 깨서 거실에 나갔다가, 현관에 나갔다가, 건넛방에 들어갔다가, 자는 나를 깨웠다가 다시 잠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잠자리가 낯설어서 밤새 설쳤더니 피곤하구만. 엄마 허리베고 자기


사실, 푹 자지 않을 수 없는 스케줄이었다. 점심을 차려 먹이고, 공원에 데려가서 한참을 뛰어놀고, 집에 들어와서 씻기고, 간식을 먹이고, 마사지해주고, 장난감 갖고 놀다가 또 저녁을 챙겨주고, 저녁 산책을 나갔다 와서 씻기고 나니 하루가 다 갔다. 슈렉이는 중간중간 자는 낮잠을 한 번도 못 잔 바쁜 스케줄이었고, 나는 나대로 쉬지를 못해서 눈꺼풀이 저절로 감겼다.


다른 일은 아무것도 못하고 슈렉이 케어만 한 건 처음이었다. 그나마도 슈렉이를 예뻐하는 친구가 운전을 해서 공원에 데려다주고, 나와 번갈아 리드 줄을 잡으며 달려가는 슈렉이를 따라다녀 주고, 슈렉이 사진도 찍어주고 많이 놀아줬기 망정이지, 혼자서는 소화해내지 못했을 슈렉이 케어 스케줄이었다.


야간 런닝까지 소화한 스케줄. 나 11살인데 이렇게 잘 뛴다.

미국에 갔을  신기했던 장면  하나는, 길거리에 노숙자가 정말 많았던 것과, 몸집은 크지만 세상 순한 개들이 주인과 몸을 기대어 평화롭게 자고 있던 것이다. 가장 행복한 강아지는 노숙자들이 키우는 강아지라는 말이 있다. 개가 항상 주인과 함께 있을  있고, 24시간 내내 주인의 관심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반면, 노숙자들은 반려동물을 돌보는 것이 자신이 책임감 있는 사람이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가 먹을  없어도 반려동물 먹을 것을 먼저 찾아주고, 자기 몸이 아픈  신경 쓰지 않아도 개의 몸이 아프면 병원에 데려간다고 들었다.


슈렉이는 24시간 엄마랑 붙어서, 온전히 엄마의 관심을 받은 오늘 하루가 행복했을까?


​동물들은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우리는 반려동물을 위해 일과 휴가 일정을 조정하고, 힘들게 번 돈을 의료비에 쓰며, 동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한다. 반려동물들은 우리의 한계를 시험하는 영원한 10대 청소년 같다.... 가장 나쁜 점은 동물들은 우리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리라 기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옳다.

아이샤 아크타르, <동물과 함께하는 삶> 중에서



https://youtu.be/JJk4tDt80xY

엄마랑 공원가서 요가도 하고 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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