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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Apr 25. 2022

강아지를 위한 교육

나는 행복한 강아지


슈렉이는 아파트에서 형제 없이 혼자 자란 강아지라 사회성이 뛰어난 편은 아니다. 강아지 유치원을 다니거나 주말마다 애견카페에 가서 다른 강아지들과 뒤엉켜 노는 친구들과 비교하면 확실히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매일 4번씩 산책을 나가면서 만나는 동네 강아지들이 있고, 우리 가족은 강아지들끼리 적극적으로 인사 나눌 수 있도록 격려하는 편이기 때문에 다른 강아지를 경계하거나 도망가지는 않는다. 길 건너편에 강아지 친구가 보이면 낑낑거리며 건너가자고 보채는 친구 바라기가 바로 슈렉이다.


다만, 슈렉이는 자기한테 예쁘다고 말을 거는 사람을 보면 짖는데, 항상 그래 왔던 터라 그저 관심이 부끄러워서 짖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사람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래요. 블로킹을 하면 많이 좋아질 거예요.”

“블로킹이요? 그게 뭐예요?”

“짖는 강아지 앞을 견주가 몸으로 막아서시면 돼요.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말이에요.”


강아지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것이 예쁘다며 옆에서 지켜보시던 아주머니를 발견한 슈렉이는 그분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그분의 설명을 듣고 슈렉이를 막아섰더니 짖는 것을 딱 멈추는 것이 아닌가?


동네친구들 안뇽?


“어? 진짜 멈추네요?”

“쯧쯧, 안쓰러워라. 강아지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자기도 무서우니까 짖었던 것인데, 이제 견주가 막아주니 이 아이도 앞으로 편해지겠죠.”


슈렉이는 그동안 나를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슈렉이가 항상 짖는 대상은 경비아저씨, 관리사무소 아저씨같이 짙은색 작업복을 입고 계신 분들이었는데, 그 짙은 색이 위협적으로 느껴졌었나 보다. 그다음부터는 슈렉이가 누군가를 향해 짖으면 그 앞을 막아섰고, 슈렉이는 감쪽같이 짖지 않았다. 그동안 슈렉이의 어깨가 굉장히 무거웠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히 미안해졌다.


돌아!

분명 나는 슈렉이를 키우면서 많은 반려동물 관련 책을 읽었고 충분히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모르는 것, 부족한 것투성이이다. 물론 슈렉이가 어릴 때는 “앉아” “돌아” “기다려” 같은 교육이란 게 사람을 위한 것일 뿐 강아지들에게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가렴.’이라는 생각을 했기에 교육을 안 했었다. 그런데 오늘 같은 일을 겪으면, 슈렉이를 편하게 하기 위한 교육 시기마저 놓쳤다는 생각에 가슴이 쓰리다.


슈렉이가 아기였을 때 침대 위로 훌쩍 뛰어오른 적이 있다. 극심한 결벽증이 있던 나는 강아지가 내 침대에 올라오고, 개털이 한 올이라도 침대에 묻기라도 하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슈렉이를 침대에 못 올라오게 했고, 잠은 꼭 자기의 강아지 침대에 가서 자도록 교육시켰다. 그런데 지금은 독립적으로 자란 슈렉이가 나한테 잘 안기지 않고 혼자 자기 침대에 가서 자는 것이 서운하다.


누워있으면 엄마가 마사지 해준당~

영화 <킬 빌>의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어릴 때 자신이 글을 쓰는 것을 무시했던 엄마에게 재산을 한 푼도 나누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러겠다고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저 정도로 성공한 사람이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말할 정도로 상처는 큰 것인가 보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사랑을 주는 것도 다 시기가 있다는 것을, 내가 준만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자식이 아닌 강아지를 키우며 배우는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새 슈렉이를 만날 때마다 정성스럽게 마사지를 해주었더니 나를 전담 마사지사로 인식(?) 했다는 것, 그래서 나만 보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마사지를 하라고 시킨다는 사실이다. 엄마를 마사지사로라도 인식해줘서 다행이야. 만질 수 있게 몸을 내어줘서 고마워.


슈렉이를 키우며 성장하는 것은 강아지가 아니라 나이다.


https://youtu.be/oLawT0nv3zM

슈렉이는 엄마랑 모닝요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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