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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Apr 18. 2022

부양강아지가 있습니다.

음… 이 딸기는 당도가 떨어지니 먹지 않겠어요


“참치김밥이 4500원이 말이 돼? 우리 때 김밥천국 1000원이었다는 걸 요즘 애들은 믿지를 못한다니까.”

“칼국수가 10000원이면 말 다했지 뭐.”


물가상승, 고물가시대 얘기로 뜨겁다. 이제 도시락을 싸서 출근한다, 외면 받던 회사 식당에 줄이 길게 늘어서기 시작했다, 이참에 다이어트를 해야 겠다 등등. 집밥을 차려먹지도 않고, 점심식사도 구내식당에서 하는 나는 이런 대화에 적극적으로 공감하지 못했었다.


내가 장을 보는 유일한 이유는 강아지 밥을 만들기 위해서인데, 대략 1~2주에 한 번씩 닭고기, 오리고기, 소고기, 대구살, 북어 같은 육류와 애호박, 양배추, 당근, 브로콜리, 고구마, 단호박 등의 야채류를 산다. 정확하게 계량해서 슈렉이 밥을 만들고 남은 재료들은 잘 손질해 냉동실에 얼려놓았다가 가끔 내가 집에서 밥을 먹을 때 볶음밥을 만들어 먹는다. 이름하여, 개가 먹을 것 준비하고 남은 것 인간이 먹기. 그러니까 나를 위한 장을 따로 보는 일은 없다.   


저 우족 먹고 있는 중인데요?

오늘도 슈렉이 식사준비를 위해 장을 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소고기를 두 팩 담았나? 닭 가슴살을 두 번 담았나?’

아무리 봐도 평소와 똑같이 샀는데 가격이 달랐다. 그렇다고 특정 제품의 가격이 눈에 띄게 오른 것은 아니라 아무리 봐도 뭐가 문제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야채 가격을 외우고 있는 것은 아니니까.


‘슈렉이 밥 만들고 남은 닭가슴살 먹으면 되지 뭐.’

슬그머니 내가 먹고 싶어서 담았던 연어횟감을 뺐다. 마트에서 행사를 하길래 주말에 집에서 연어샐러드를 만들어 먹으려고 했었다. 엄마들이 빠듯한 아빠 월급으로 장 볼 때마다 몇 번씩 고민하고, 집었다 내려 놓았다를 했다던데 엄마들 마음이 이랬겠구나...... 자식을 낳아 키우다보면 부모님의 노고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자식을 낳지 않은 나는 그것을 강아지를 키우면서 배우고 있다. 부모님은 당신들 먹고 싶은 거 참아가며 자식들을 먹이셨겠구나.


오늘의 식재료. 내꺼 아님 강아지꺼임


집에서 요리해 먹을 일이 없는 대구살, 오리가슴살, 닭가슴살, 북어채 등을 손질하다보면,

‘내 친구들은 자기 자식 이유식도 배달시켜 먹이던데.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란 생각이 든다. 그러다가도 밥 차리는 소리를 들으면 꼬리콥터를 쉬지 않고 돌리고, 쏜살같이 달려가 자기 식탁 앞에 앉아 기다리며, 또 허겁지겁 맛있게 먹는 슈렉이를 보면 이 고된 부엌노동을 멈출 수가 없다.


멍스타그램 친구들 중에 편식을 하는 통에 10개가 넘는 사료로 기호성 테스트를 하고, 밥을 안 먹어서 강제급여하는 장면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러니까 나는 슈렉이가 숨도 쉬지 않고 밥을 흡입하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식사를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내가 힘든 것 따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집에 밥 먹는 사람이 없어서 쌀이 안 줄었는데, 슈렉이가 매일 잘 먹어서 쌀도 많이 줄고 얼마나 다행이니.”

남동생이 결혼해 나가면서 부모님 두 분만 남게 된 집의 쌀 소비가 예전만 못했는데, 그걸 손주인 슈렉이가 꼬박꼬박 먹으며 채워주고 있었다. 우리 엄마가 그걸 기쁘게 생각한다는 사실이 더 재미있었다. 슈렉이는 이미 가족이다.


슈렉이도 생크림 케익 좋아해. 나도 달라구.

슈렉이의 인스타그램 친구들 중에는 15살도 넘은 노견들이 있다. 개들도 인간과 똑같아서 노환이 오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잦고, 그러다보면 하루 이틀의 입원과 검사만으로도 100만원을 훌쩍 넘는 병원비가 나오기도 한다.

“언니가 돈 많이 벌어올게. 아프지만 마.”

영수증을 찍어 올리며 견주들은 이렇게 말한다.


반면 아기와 어린 강아지들을 함께 키우는 가정도 있다. 유모차를 큰 걸로 바꿔서 강아지와 아기가 나란히 탈 수 있도록 하고, 거실에는 강아지 텐트와 아기 텐트가 나란히 놓여있는 집은 보기만 해도 미소 지어진다. 뻥튀기를 아기와 강아지가 나눠먹고, 둘이 놀이터에서 함께 뛰어논다.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보내는 아기의 가장 친한 친구는 강아지이다.


늙었건 어리건 반려동물 가정에게 있어서 강아지는 인간과 다를 바 없는 가족이다. 그러니까 나도 부양가족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엄마가 열심히 돈 벌어 올게.    



https://youtu.be/S1C3YkHWvhI

슈렉이는 엄마랑 같이 운동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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