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가언니 May 16. 2022

강아지가 낮잠을 잘 때에는

엄마가 나를 하늘높이 번쩍 들었어요

한 달 전 한창 꽃개놀이를 하던 때, 처음으로 슈렉이를 내 키보다 높이 번쩍 들어 올렸다. 벚꽃 나무 사이에 슈렉이 얼굴을 끼워 넣어서 예쁜 꽃개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팔을 위로 쭉 뻗으니 슈렉이의 배가 내 얼굴에 정면으로 닿았는데, 세상에, 생식기 끝에 고름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놀란 나는 바로 슈렉이 할머니에게 큰일이 났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슈렉이 원래 포피염 있었잖아. 재발한 건가. 또 약 넣어야겠네.”


나는 말만 슈렉이 엄마이지, 슈렉이 건강관리, 식단관리는 다 할머니가 해주시는 터라 이전에 슈렉이가 포피염 치료를 받았는지조차 까먹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슈렉이는 할아버지 품에 안겨, 실은 결박당해 움직이지 못하는 채로, 할머니의 치료를 받았다. 병원에서 받아온 물약을, 바늘을 뺀 주사기를 통해 생식기에 넣는 것이었다. 슈렉이가 무서워하는 유일한 존재인 할아버지가 계셔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도망 다니는 강아지를 어떻게 잡아서 약을 넣을 것인가.  


“너희 아빠 오늘 늦게 들어오신다는데 어떻게 하지? 네가 슈렉이 좀 안아볼래?”

“응, 그러자. 슈렉아, 엄마가 안아줄게. 이리 와~”


재빠른 받아들임의 예. 양지바른 곳에서 낮잠자며 기다리기

하루는 내가 슈렉이 할아버지 대신 슈렉이를 안고 약을 넣어야 했다. 누구에게도 잘 안기지 않는 슈렉이는 역시나 발버둥을 쳤지만 뽀뽀세례와 함께 꼭 끌어안고 쓰다듬어주자 금세 안정을 취했다. 그리고 얌전히 포피 약을 넣을 수 있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그르니에는 <어느 개의 죽음>에서 동물들의 참을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물들은 달리 방도가 없음을 깨닫고 나면 곧 순응한다


달리 방도가 없음. 기다리는 수 밖에.

이를테면 온종일 혼자 집에 남겨진 개는 곧바로 가장 좋은 해결책을 찾아내는데, 제일 편안해 보이는 안락의자를 골라 자리를 잡고 곧 잠든다는 것이다. 슈렉이는 어차피 할머니가 약을 넣을 것이란 것, 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끝나고 나면 개껌 선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포기하고 운명에 순응했다.


그런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일에 저항하느라 기력을 소진하고 있었다.


또 다른 낮잠 포즈

“슈렉이도 피부병 있다고 했지? 그걸로 슈렉이가 자책하고 우울해하고 그러지 않잖아? 우리는 개들에게 배워야 해.”


그렇다. 슈렉이는 나보다 더 오래전에 피부병을 갖고 있었지만 그걸로 슬퍼하지 않았다. 물론 불편하니까 자꾸만 핥으려고 하긴 했지만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는커녕 약 넣는 것에도 그다지 저항하지 않았다. 투약 후에 받게 될 개껌 보상만 생각할 뿐.  


적극적일 때도 있지요~ 간!식! 사람처럼 설 수도 있다구요!

그러고 보니 슈렉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피부질환이 있었다. 비듬 같은 각질이 많아 새까만 등 털이 하얗게 변할 정도였다. 그걸 발견한 후로는 피부에 통풍도 잘 되고 일광 소독도 할 수 있게 만들어보고자 털을 바짝 밀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그게 슈렉이의 미용 스타일이 되었다.


인지하지 못했지만 언젠가부터 슈렉이의 비듬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술, 담배, 과로를 하지 않는 강아지의 피부병은 결국 식단에서 온 게 아닐까 싶다. 모든 간식을 끊고 직접 만들어주는 자연식 화식으로 바꾼 후에 피부질환이 줄어든 것이 아닐지 추측해본다. 췌장염 식단으로 짠 것이라 피부병을 염두에 두고 개선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나의 피부병도 그렇게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스낵, 쿠키, 사탕, 초콜릿 등 간식을 끊고 가공식품으로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몸에 좋지 않은 가공식품을 내가 번 돈으로 사서 스스로 내 입 안에 욱여넣고, 내 몸을 오염시켜왔던가.  


웃음을 잃지 않는 태도 조차 인간이 개에게 배워야 할 점

식단뿐 아니라 마음도 새로 먹어야 한다. 왜 스트레스가 없는데 스트레스성 질환이 발생한 것인지 고민하고, 잠을 못 이루고, 빨리 낫지 않는 것 때문에 우울해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이 마음 말이다.


강아지들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몸을 부르르 떨거나 고개를 휘젓곤 하는데, 그것이 주위를 환기시키고 생각 전환을 위한 행동이라고 한다. 강아지에게 생각 전환, 내려놓기, 마음 비우기를 배워본다.





https://youtu.be/-4OWGny0SI4

슈렉이는 엄마랑 같이 운동하고 오래오래 같이 살꺼에요.











이전 11화 개의 집중력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