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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Jun 07. 2022

개의 집중력

보통 부엌에 이렇게 서있습니다. 거의 함께 요리를 하는 수준이죠.


“슈렉이를 보면서 알게 됐는데 말이야, 간식을 들이대면 시선을 떼지 않는 그 집중력이 대단한 것 같아.”

“슈나우저가 사냥개 혈통이라는 거 같던데?”

“이까짓 사료 한 알이 뭐라고, 내가 앉으라 그러면 앉고, 서라 그러면 서고 하냔 말이지”

“그러게~ 나 같으면 ‘더럽고 치사해서 안 먹는다.’하고 가버릴 텐데 말이야.”


그렇게 목표한 사료 한 알을 먹기 위해 슈렉이는 사료를 따라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왼쪽으로 돌렸다, 앉았다 섰다를 반복한다. 물론 사료를 얻고 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휭 지나간다. 그래 너도 견생 피곤하겠지, 그 정도는 이해해.


집중력 훈련이래요.


그런 걸 보면 개의 DNA에 먹이에 대한 집중력이 포함되어 있나 보다. 그러니 강아지 스포츠인 장애물 넘기, 즉 어질리티를 할 때도 보호자가 간식을 들고뛰는 것 아닌가. 개는 겉으로 보기에는 각종 장애물을 뛰어넘고 있지만 실은 간식을 쫓아 달리고 있다는 사실.


“으르렁(만지지 마)”

“어머? 엄마 무는 강아지가 세상에 어디 있어?”

“으르렁(하지 말라고)”

“너 엄마한테 이러기야? 내가 엄만데!”


권위가 1도 없는 서열 최하위의 나는 슈렉이의 털을 빗기는 것조차 마음대로 못한다. 슈나우저의 상징인 주둥이 털 좀 예쁘게 해 보려고 손만 뻗으면 그렇게 잇몸을 드러내고 이빨을 보이며 으르렁댄다.


머리빗기 전쟁

그러다가 개껌을 하나 꺼내 눈앞에 보여주면, 세상 온순한 슈렉이로 돌변하여 ‘앉아’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내 앞에 앉는다. 갑자기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이며 간식을 노려본다. 그리고는 아무리 빗질을 많이 해도 개껌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정도껏 했어야 하는데 가만히 있는 게 신기한 나는 선을 넘기 시작한다. 주둥이를 다 빗겼으면 칭찬 간식을 줘야 하는데 가슴털까지 빗기려고 시도한다. 그러다가 화가 나 ‘왕’하고 물려하는 슈렉이의 기에 눌려 간식을 내어주는 루틴이 반복된다. 그러니까 슈렉이 교육을 망치는 이유의 90%는 일관성 없는 엄마인 나 때문이다.


이렇게 예쁘게 웃으면 간식이 나와요.


췌장염으로 두 번째 입원을 한 후부터 슈렉이의 식단 관리가 시작되었다. 우유 맛 개껌, 고구마 소고기 말이, 단호박 쿠키, 이런 것들은 다 옛날이야기이다. 이제는 매일 엄마가 만들어주는 자연식 식단을 먹고, 췌장염 처방식 사료 몇 알을 과자처럼 간식으로 먹을 뿐이다. 처방식 사료라야 지방을 쪽 뺀 것일 테니 맛은 없겠지만 씹는 맛에 먹는 것이라 해야 하나. 아무튼 그 맛없는 사료 한알에도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주니 착한 슈렉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목표로 한 걸 얻을 때까지 목표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슈렉아, 오늘도 엄마가 너에게 배운다.


아름답고 완전한 동물들
동물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사는데도 저렇게 아름답구나. 무언가를 배우지 않아도 될 만큼 완전하구나.

최은영, <우리가 배울 수 없는 것들> (단편집 <애쓰지 않아도> 중에서)



https://youtu.be/nclEBVCqjqI​ ​

나의 집중력을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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