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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Jun 20. 2022

강아지 산책의 낭만과 현실

산책하는거 좋아요

"아우, 아우, 아우. 개랑 같은 엘리베이터 못 타니까 기다렸다가 다음 것 타세요."

"큰 개는 사나우니까, 가까이 가지 마."

"개한테 입마개 씌우세요!"

"개새끼한테 옷을 입히고 모자를 씌우고 돈지랄이네. 쯧쯧"


슈렉이는 몸무게 8킬로그램, 몸길이 40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강아지인데 입마개를 씌우라는 등, 사납다는 등의 소리를 듣는 것은 다반사이고, 이 아파트 단지에 사는 어떤 할아버지는 슈렉이만 보면 지팡이를 휘둘러서 때리려 했다. 가끔 "악!! 악!!!"소리를 내며 슈렉이가 무섭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사람을 보면 '아줌마가 더 무서워요. 우리 강아지 놀라겠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곤 한다. 그러니 리트리버 같은 대형견들이 받는 수난은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상상할 수 있다. 그건 이렇게 글 한편에 담아내기도 힘들 것이다.


워낙 개 물림 사고 같은 것이 뉴스에 많이 보도되기도 하고, 무고한 피해자가 생기는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목줄, 인식표, 배변봉투 등 지켜야 할 모든 법과 매너를 준수하며 강아지를 자식처럼 돌보는 반려인들이 상처받는다면 그들 또한 피해자가 아니겠는가.


모든 풀은 다 코로 검사하고 지나가요.

이게 바로 현실의 산책이다.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로부터 듣는 참견, 비난, 욕설을 참아내는 것 말이다.


그런데 강아지와의 산책을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강아지가 나와 발걸음을 맞춰서 산책 친구가 되어주고, 또 산책하는 나를 더 돋보이게 해주는 그런 그림을 생각한다. 이를테면 시베리안 허스키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개, 도베르만 같이 섹시한 개와 산책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로부터 “우와, 짱 멋지다.”와 같은 찬사를 듣는 장면 말이다.


엄마랑 숲에서 요가하기

개들은 산책하는 동안 냄새를 맡으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슈렉이가 냄새를 맡는 동안 충분한 시간을 주고 그게 얼마나 오래 걸리던 기다려준다. 강아지와 산책을 하면서 내 페이스에 맞게 운동을 하는 것은, 내가 아는 한 불가능하다. 10미터 정도 같이 CF에 나오는 것처럼 뛰었다손 치더라도 금세 강아지는 전봇대로 가서 냄새를 맡고, 그 위에 마킹을 하기 일쑤다. 


반려동물행동전문가가 강아지의 문제행동 코칭을 하면서 완전히 강아지의 의도대로 이끌려서 하는 산책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산책에서부터 서열정리가 안 된 강아지는 집안에서도 자기 마음대로 문제행동을 일으킨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산책을 하면서 주변에 눈길도 주지 않고, 냄새도 맡지 않고 직진만 하는 훈련이 매우 잘된 강아지들을 보면 부럽기보다는 안쓰럽다. 강아지 행동학 측면에서 내가 틀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슈렉이를 위해 산책을 하고 싶다. 


이 정도로 작으면 안 무서워할껀가요? 크기로 판단하지 마세요.


“아빠 운동하셔야 하니까 슈렉이는 네가 데리고 나가.”

“슈렉이 산책시키시는 게 곧 운동이 될 텐데?”

“슈렉이 산책 따라다니다 보면 반은 가만히 서서 기다리셔야 하니깐. 아빠한테 필요한 운동량 충족이 안돼.”

“하긴, 그건 그래.”


강아지 산책은 분명 운동이지만, 그러면서도 또 운동이 아니다.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을 규칙적으로 밖에 나와서 걷게 하는 운동 효과는 있지만, 땀을 뻘뻘 흘리는 고강도의 운동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운동 효과가 없다는 말이다. 당뇨와 고지혈증 진단을 받으신 우리 아빠께는 숨이 찰 정도의 유산소 운동과 더불어 계단 오르기처럼 근육을 사용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강아지의 발걸음에 맞춘 느린 산책은 내가 스스로를 일으킬 힘이 없을 때, 세상으로 나갈 힘을 모으지 못했을 때, 그때의 나에게 딱 맞는 운동이었다. 강아지가 한걸음 걷고 꽃 냄새 맡고, 또 한걸음 걷고 흙냄새 맡는 그 발걸음에 맞춰 걷던 산책은 나를 집 밖으로 꺼내주었고, 내가 더 이상 주저 않지 않도록 다리의 힘을 길러줬다.  


큰 개가 사납다는 것은 편견. 순둥순둥


평소 출퇴근을 할 때는 분초를 다퉈가며 걷느라 주변을 돌아볼 새가 없다. 하지만 같은 길도 슈렉이와 산책을 할 때면 골목 구석구석을 탐방하고, 풀과 나무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아파트 옆 동 구석의 보이지도 않는 잔디밭, 옆 동네 남의 아파트 단지에는 평소에 들어갈 일조차 없지만 슈렉이와 함께라면 좋은 잔디밭을, 놀이터를 찾아야 하니까 기꺼이 탐험을 떠난다. 그렇게 찾은 구석구석은 좋은 요가 영상 촬영 스폿이 되기도 한다.


슈렉이는 하루에 4번씩 꼬박꼬박 산책을 한다. 시작은 슈렉이의 원활한 배변활동과 스트레스 해소였지만, 지금은 우리 가족 모두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강아지 산책은 그런 것이다.



https://youtu.be/kJMa0rb_nkc

강아지랑 요가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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