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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Jul 18. 2022

유모차? 개모차!

“슈렉이 누워있던 자리에 피가 묻어 있어.”

“피가 왜? 수컷이 생리하는 것도 아니고!”


강아지가 아프면 난감하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는 것도, 그렇다고 아기처럼 우는 것도 아니니 그저 세심하게 관찰하고 알아차려서 병원에 데려가는 수밖에 없다. 예민하신 슈렉이 할머니는 슈렉이 몸을 샅샅이 살펴보시다가 왼쪽 뒷발이 문제라는 것을 발견하셨다.


“으르렁(내 발 건들지 마라)”


자세하게 관찰하도록 아픈 발을 내어 줄 슈렉이가 아니다. 슈렉이 할머니는 자연스럽게 몸을 쓰다듬는 척하며 발을 관찰하고 사진까지 찍어서 나에게 보내주셨다. 하얀 발바닥 털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털색이 변할 정도니 피가 많이도 흘렀다.



“그냥 물로 핏자국 씻기고 후시딘 발라주면 안 돼?”

“슈렉이가 그렇게 하도록 가만히 두겠니? 애가 어떻게 될 줄 알고 그래, 당연히 병원에 데려가야지.”


슈렉이 할머니는 바로 강아지를 둘러업고 병원으로 가셨다. 꼼꼼하지도, 예민하지도 않은 나였으면 슈렉이가 아픈 것을 발견조차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슈렉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싶지 않아서 눈을 감고 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슈렉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것은 슈렉이보다도 나에게 더 극심한 스트레스이다. 병원에 가기 싫어서 차를 타기 전부터 비명을 지르고 차를 타고 있는 내내 벌벌 떨고 있는 슈렉이를 보는 게 너무나 힘들어서, 차라리 병원에 가지 않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슈렉이를 집에서 치료해주고 싶어서 반려동물 아로마테라피 자격증도 땄었다. 그걸로 의학적 치료는 할 수 없지만.  


붕대감고 와서 시무룩

의사 선생님은 뒷발 네 번째 발톱이 거의 빠져서 달랑거린다며 발톱을 뿌리만 남기고 뽑았다고 하셨다. 그 때문에 슈렉이는 공포의 병원을 3일 동안 매일 내원하여 드레싱을 받아야만 했다. 내가 발톱을 뽑고, 붕대를 감고 살며 며칠간 드레싱을 받으러 다녀봐서 아는데, 그건 정말 다른 차원의 고통이며 괴로운 상황이다. 강아지가 말을 못 하고 감정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슈렉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 예상처럼 슈렉이는 온몸으로 괴로움을 표현하며 불편함을 호소했고, 붕대를 칭칭 감은 왼쪽 뒷다리를 쉬지 않고 핥았다. 살도 아닌 꺼끌꺼끌한 붕대를 말이다.


붕대 핥는 슈렉. 보는 엄마 마음 찢어짐

야속하게도 슈렉이가 발톱을 뽑은 지난주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실외배변견 슈렉이는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우비에 우산까지 쓰고 시간을 맞춰 4번의 산책을 나가지만, 붕대는 쉽지 않았다. 부랴부랴 고무 재질의 강아지 방수 장화를 주문하고, 택배가 도착할 때까지 임시로 집에 있는 신발을 꺼내 신겼다. 슈렉이가 어렸을 때 눈 위에 뿌리는 염화칼슘이 발바닥 피부를 손상시킬 것이 걱정되어 샀으나, 슈렉이가 완강히 거부해서 한 번 신고 포기했던 신발이다. 이미 붕대가 감겨 있어서인지, 네 발 중에 한 발에만 신겨서 인지 이번에는 크게 거부하지 않고 잘 걸었다. 산책 중에 만난 어떤 분이 “그런데 왜 신발을 한짝만 신었나요?” 라고 묻길래 대답해드리긴 했지만, 이게 신발을 싫어하는 슈렉이에게는 최선이다.


다만, 산책 중간중간에 주저앉는 빈도가 늘었다. 나와 함께 걷는 저녁 산책은 30분 이상이 소요되는데 15분도 채 걷지 못하고 들어왔다. 걷다가 주저앉을 때마다 슈렉이를 안았고, 다시 내려주면 스스로 걷는 걸 5번 반복했다. 슈렉이가 내일도 이러면 어쩌나, 허리를 숙여 9킬로나 나가는 슈렉이를 번쩍 들고 걷는 것이 60대 중반의 슈렉이 할머니 할아버지께 괜찮을까, 걱정이 들었다.


붕대감은 발에만 신발

‘이래서 개모차를 사는구나.’


슈렉이와 함께한 11년 만에 처음으로 개모차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은 벤츠 개모차….. (출처: 인스타그램)


p.s. 슈렉이는 붕대를 잘 풀었습니다. 발톱이 평소와 다른 모양으로 바짝 잘려있긴 하지만. 이제 다시 병원에 안 가도 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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