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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Jul 11. 2022

강아지 산책레벨

우리 공원에 산책가는 거죠?

“출발할 때는 펄펄 날아다니거든? 근데 돌아올 때는 힘없이 느릿느릿 걸어. 늙어서 그런가 봐. 안쓰러워 죽겠어.”

“더 놀고 싶고 집에 돌아가기 싫은거 아니고?”

“어?”

“노견이라고 무조건 측은하다는 프레임을 씌울 필요는 없어. 슈렉이는 충분히 건강하고 행복하니까.”


그렇다. 슈렉이는 산책 중에도 자기가 원하는 루트가 아니면 엉덩이를 바닥에 내리고 앉아 버린다.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 내가 이기지 못한다. 리드 줄을 아무리 끌어당겨도 네 발을 바닥에 딱 붙이고 버티느라 주변 사람들이 “어머, 쟤봐라.” 하면서 쳐다보고 웃는 일이 다반사다. 어쩌면 지금 이 산책이 너무 좋아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그 시간을 만끽한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베이비 슈렉은 철푸덕을 자주 했었죠.

새끼 강아지들은 짧은 다리로 신나게 발발발발 걷다가도 힘들면 땅바닥에 철퍼덕 계란 프라이처럼 퍼져버린다. 그러다가도 몸에 에너지가 채워진 것 같으면 벌떡 일어나 종종 걸음으로 재빠르게 걷는다. 산책이 힘들 것이 걱정돼 몸을 사리지 않는다.


반면 성견을 지나 노견이 된 슈렉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바닥에 엎드리거나 주저앉지는 않는다. 철이 들었나 보다. 다만 걸음 속도를 늦추는 방식으로 몸을 사린다. 슈렉이에게 나이 듦의 지혜를 배운다.


엉덩이를 내리고 주저앉으면 끌고 가기 쉽지 않아요.


“슈렉이가 주저앉아서 절대 안 걸어. 이를 어째.”

“다리가 아픈가? 엄마, 슈렉이 안고 들어갈 수 있겠어?”


산책 중에 다급히 전화하신 슈렉이 할머니에게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었다. 강아지를 안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거센 비가 내리고 있었으니 슈렉이 할머니 손에는 강아지 우산과 인간 우산 두 개가 들려 있었을 테고, 8kg의 슈렉이를 들기에 역부족일 정도로 슈렉이 할머니는 왜소하시다.


‘무거운 슈렉이를 들지 못하실 텐데 우리 엄마는 어쩌나.’

‘슈렉이 다리에 문제가 생긴 것이면 어쩌지.’

‘다리를 영영 못 쓰게 되는 건 아닐까?’


전화를 받고 나니 걱정이 켜켜이 쌓이기 시작했다. 책을 보고 있는데, 아무것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잠깐 안아서 자리를 옮겨 줬더니 집까지 잘 걸어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한시름 놓았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을 때 슈렉이 할머니에게 메시지가 왔다.


“슈렉이 병원 왔다”


또? 우리 슈렉이 다리에 진짜로 문제 생긴 걸까? 커질대로 커진 걱정은 한숨의 얼굴을 하고 내 입 밖으로 나온다.  


병원이 너무 무서운 슈렉이 엄마 밑에 숨어있기

산책 중에 점프 착지를 하면서 비명을 질렀다고 했다. 강아지들은 가느다란 다리 때문에 하수도 구멍을 만나면 점프로 뛰어넘곤 한다. 비명 이후로 쩔뚝거리며 잘 걷지 못하는 슈렉이를 보고 깜짝 놀란 슈렉이 할머니는 바로 차에 태워 병원에 가신 것이다. 병원에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며 발톱이 길어서 그럴 수도 있다고 발톱을 깎아 주셨다고 했다. 수의사 선생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는 나는 슈렉이가 말을 못 하니 제대로 못 본건 아닌지, 잘못된 진단을 한 건 아닌지 쓸데없는 걱정을 빵 반죽처럼 부풀리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니 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슈렉이는 잘 걷고 잘 뛰고 잘 놀고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슈렉이의 다리 건강에 예민한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슈렉이가 걷지 못할까봐, 그래서 함께 산책을 못 하는 일이 생길까봐 두렵다. 이미 10년 이상 나와 우리 가족의 중요한 일상이 된 이 산책이라는 루틴은 매일 아침 정확한 시간에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하루종일 두통에 시달리는 나에게 카페인만큼이나 중요한 존재이다.


나는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누구에게도 슈렉이와의 산책 시간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슈렉이의 다리는 건강해야만 한다.


개와 함께 산책 나가본 인간이라면 알 것이다. 개가 앞장서서 저만치 간 다음 뒤돌아 띄우는 눈빛을. '여기까진 안전해. 와도 좋아' 하고. 개들은 항상 그런 식이다. 우리를 지켜주려고 한다. 부드럽고 귀여운 주제에.

강지혜 외,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 중에서


https://youtu.be/2Bj8qR83pJw

우리는 공원에서 요가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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