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빌 Monaco Ville
“아무리 모나코가 그레이스 켈리의 나라라고 하지만 이건 좀 놀랍다.”
“그러게. 근데 사진은 잘 나와. 여기 서 봐. 같이 찍어줄게.”
모나코 시내 중심에 위치한 몬테카를로 카지노 앞에는 아니쉬 카푸어의 설치미술 <Mirror>가 있다. 제목 그대로 큰 거울 그 자체인 이 작품은 카지노 앞의 아름다운 정원을 비춘다. 카지노 앞에는 두 개의 정원이 펼쳐지는데 하나는 ‘작은 아프리카 정원 Jardins de la Petite Afrique’로, 이국적인 열대식물들이 화려함을 뽐내는 곳이다. 다른 하나는 ‘카지노 정원 Jardin du Casino’인데 초록 정원 한가운데에 설치된 조각 작품이 인상적이다.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대공의 토르소도 여러 작품 중 하나이다. 국왕이 없는 나라에서 온 내 눈에는 뭔가 어색하긴 하지만. 북한에 걸려있다는 김정은 초상화가 떠오른다고나 할까.
모나코를 이야기하며 그레이스 켈리를 빼놓을 수는 없다. 1955년 아카데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자마자 다음 해, 26세의 나이로 모나코 왕비가 된 할리우드 배우. 사실 여자들에게 더 친숙한 이름으로는 에르메스 켈리백의 그 켈리.
레니에 3세가 경제적, 외교적으로 위기에 빠진 모나코를 살리기 위해 전략적으로 할리우드 스타인 그레이스 켈리와 결혼을 했고, 이 모든 것을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가 계획했다거나, 그래서 그레이스 켈리의 삶이 불행했고, 53세의 젊은 나이에 자동차사고로 켈리가 세상을 떠난 것이 사실은 왕실의 계획이었다는 등 여러 루머가 있다. 진실은 알 수 없으나 그녀가 모나코에 큰 영향력을 끼친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1956년 ‘세기의 결혼’이 개최되는 일주일 동안 모나코는 1년 치의 관광수입을 벌어들였고, 이를 시작으로 미국인 관광객이 유입되며 1960년대 초 모나코는 제2의 도약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하니 켈리의 경제적 영향력은 입증된 셈이다. 니콜키드먼이 주연한 영화 <그레이스 켈리>를 보면, 프랑스의 내정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레이스 켈리가 대공비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니 외교관으로서의 영향력도 인정.
어디 그뿐인가, SNS에서는 모나코 왕족 후손들의 유전자 업그레이드에 관한 재미있는 영상들이 있다. 그레이스 켈리가 레니에르 3세와 결혼 후 1남 2녀를 낳았고, 그들이 낳은 자녀들인 그레이스 켈리의 손자, 손녀들이 이제 성인이 되었는데, 손자가 켈리를 닮아 잘생겨서 디올의 엠버서더로 활동 중이라거나, 손녀가 켈리를 닮아 외모가 빼어나 구찌의 엠버서더로 활동한다는 내용 같은 것들이다.
몬테카를로 지역에 카지노와 쇼핑몰, 요트클럽이 있다면, 모나코빌은 모나코 대공궁, 모나코대성당, 시청, 관공서 등이 모여있는 지역이다.
모나코 대성당은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의 결혼식이 열렸으며 그녀를 포함한 왕족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기도 한, 모나코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곳이다. 그녀의 무덤이 있는 모나코 대성당 Cathédrale de Monaco 마저 모나코 관광 시 들려야 할 코스가 되었으니 모나코 곳곳에 그녀의 흔적이 남지 않은 곳이 없다.
3월 비수기라는 이유로 모나코 대공궁은 입장할 수 없었지만, 대공궁을 방문하지 않아도 도시 전체에서 그레이스 켈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레이스 왕비 장미원 Roseraie Princesse Grace 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원으로 300여 종이 넘는 장미 8000그루가 있다고 한다. 화려한 장미와 그보다 더 아름다운 켈리의 조각상을 기대하고 그레이스 왕비 장미원을 찾아갔으나, 3월 중순은 막 장미를 심고 있는 시기였다. 생각보다 투박하긴 하지만 켈리의 조각상도 볼 수 있다.
그레이스 켈리가 백마 탄 왕자를 만나 신분상승을 한 연예인일 뿐이라 생각했던 것은 큰 착각이었다. 모나코를 여행하며 그녀가 모나코에 끼친 정치적, 경제적, 외교적 영향력을 알아가며 내 편견은 조금씩 깨졌다. 명실상부 모나코 최고의 브랜드는 그레이스 켈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