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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Nov 30. 2019

요트경기규칙이 존재하는 이유




고도의 집중력, 신체적 능력을 포함한 민첩성, 강인한 정신력.    

                

요트경기에 필요한 능력도 다른 스포츠의 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여기에 굳이 요트만의 특성을 꼽자면 '감각'을 추가할 수 있겠는데, 바람의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수면 상태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그런 감각 말이다. 이 감각은 어느 방향으로 항해할지 코스를 잡고 실행에 옮기는 재빠른 판단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요트를 타기 위해서는 항상 공부해야 한다.  어쩌면 단 한 번도 동일한 파도와 바람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기상, 조류, 세일에 작용하는 그날의 바람뿐 아니라 시합을 한다면 경기룰은 기본이고, 상대의 전술에 따라 어떻게 대처하고 적용해야 할지까지 연구해야 한다.  요트경기에는 코스도 따로 없다. 넓은 바다가 전부 경기장이고 덩그러니 떠있는 마크를 도는 것이 경기이다. RC정 Racing Committee과 마크를 잇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선이 출발선이 되고, 각자 바람을 이용해 코스를 만들어가며 마크를 돌아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룰이 매우 촘촘하게 마련되어 있다.

수많은 의미를 지닌 신호기들을 배웠고, 태킹 하지 않고 마크를 지날 수 있는 코스에 있을 때를 지칭하는 펫칭 fetching이라던가 오버랩되었을 때 사용하는 클리어 어헤드, 클리어 어스턴과 같은 용어를 배웠으며, 규칙을 위반했을 경우에 수행해야 할 벌칙, 그러니까 페널티 턴 penalty Turn에 대해서도 배웠다. 또한 두 배가 마주쳤을 때, 스타보드택이 포트택에 대해 항로권을 가진다거나, 풍하배가 풍상배에 대해 권리정이 된다는 등의 실질적인 레이싱 룰까지도 말이다.

    

우리는 이 룰들을 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중이고, 열정 가득한 우리가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따지듯이 질문해도, 노련한 선생님은 수십 년의 경력과 노하우로 물샐틈없는 대답을 해주신다. 요트경기의 규칙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룰을 잘 활용하여 전략으로 삼아 내가 상대에 대해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함이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다른 요트의 진입로나 그들의 경기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한 신사적인 목적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스포츠맨십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요트경기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는데 세 척 이상의 요트가 경기를 하는 플릿레이스 fleet racing, 두 척의 동급의  요트가 일대일로 경주하는 방식의 매치레이스 match racing, 2~4척의 요트가 한 팀이 되어 두 팀이 시합을 하는 팀레이스 team racing가 그것이다. 플리트레이스와 매치레이스는 마크를 도는 방향이 각각 반시계 방향과 시계방향으로, 경기 룰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전략도 달라진다. 매치레이스에서는 출발 신호가 울리기 전, 프리스타트부터 룰과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전략 싸움이 시작되는데, 실력이 고만고만한 우리 수준에서는 사실상 출발이 승패를 결정한다고 보면 된다.     


출발 5분 전 클래스기(우리는 K36 요트를 타니까 K36 이라고 쓰여 있는 깃발)가 올라가면 블루 배와 옐로우 배는 왼쪽 오른쪽 각각의 경기구역 바깥에서 대기(요트가 가만히 정지하고 있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간을 정확히 계산해서 일정 거리를 간 후 턴하여 돌아와야 한다.)하다가 4분 전 준비신호기가 올라가면 출발선을 통과하여 들어오는 엔터링 entering을 마쳐야 한다. 그 후에는 권리정에 관한 룰(Rule 12)을 적용한 스타보드정과 포트정의 싸움이 시작되는데, 기본적으로 스타보드정이 권리정이기 때문에 포트정은 스타보드정을 잘 피해 패널티 턴을 받지 않아야 한다.          

          

대진표 상 포트정이었던 우리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두 번 모두 상대팀에 승리했는데, 그건 앞에서 말한 적절한 출발 전략 덕이었다. 시간을 기민하게 맞추어 4분 준비신호기가 올라갈 때 엔터링을 정확하게 한 후, 뒤늦게 엔터링하는 스타보드정에 대해 우리가 스타보드 위치를 차지하여 상대팀을 궁지로 몰아 제시간에 스타트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렇게 룰을 제대로 이해하고 팀으로 움직이다보니, 요트를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 룰이 뭔지도 모를 때, “스타보드”라고 외치며 나에게 피하라는 신호를 주던 요트를 보며 “저 사람은 왜 나에게 소리를 치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 갈 길을 가던 무식하고 용감했던 나의 부끄러운 시절이 떠오른다.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이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 모든 것을 만들어내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법과 규범과도 그리 다르지 않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법과 규범 역시 내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함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조화롭게 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조금 더 범위를 좁혀보면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지만,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는 타인에게 더 다정하고 친절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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