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둘째 날,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아 새벽 6시에 모두 잠에서 깨어 산책을 나섰다. 1월의 차가운 바람이 털모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여전히 어두운 시간, 거리에는 사람 하나 보이지 않았다. 해가 뜨기까지 아직 두 시간이 더 남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 마주한 건물들은 유령처럼 어렴풋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텅 빈 거리와 가게 네온사인 불빛조차 없어 섬뜩함이 느껴졌다. 작은 마을을 걷다 보니 저쪽에서 환하게 불빛이 비쳤다. 아직 치우지 않은 크리스마스트리와 작은 인형들을 비추는 조명이었다. 한참 만에 만난 그 불빛에 위안받았다. 그런데 순간, 가로등 아래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가 쓸쓸해 보이더니 혼자 있을 남편이 생각났다. 지금 남편은 춥다고 옷깃을 여미며 퇴근하여 불 꺼진 아파트 문을 열겠지. 나도 8,900km 떨어진 낯선 파리의 외곽에서 내 옷깃을 여몄다.
어제 숙소로 오늘 길에 보았던 센강을 향해 걸어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차가운 공기가 코를 통해 들어와 폐 속까지 시원하게 채웠다. 희미한 강물 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다. 가로등 불빛은 어둠 속에 길게 퍼져 나가며, 그 빛은 강 위에 잔물결처럼 아른거리며 흔들렸다. 어두운 새벽, 강물 위에 비친 가로등의 노란 불빛은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1888)>을 떠올리게 했다. 지난해 오스트리아 린츠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밤에 산책하며 바라본 도나우강의 물결 역시 고흐의 그림 속 론강을 닮았다. 어쩌면 나는 고흐의 그림을 너무 자주 봐서, 강과 하늘, 가로등 불빛, 그리고 별을 마주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을 떠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Starry Night over the Rhone. 1888, 72cm x 92cm, 오르세 미술관 파리
이 작품의 배경은 프랑스 아를에 있는 론강이다. 론강은 스위스 알프스에서 흘러내려 아를 지방을 지나 지중해로 흐른다. 고흐의 그림 속 론강은 북두칠성이 빛나는 푸른 하늘 아래 펼쳐져 있다. 북두칠성은 북쪽에 위치해 쉽게 볼 수 없는데, 고흐가 상상으로 그려 넣은 것이다. 고흐가 그린 하늘은 그 당시 거의 새로운 표현이었다. 그 이전에는 고흐처럼 밤하늘을 살아있게 묘사한 작품은 드물었다. 고흐는 움직임을 불러일으키는 붓질로 별을 소생시켰다. 전통적인 어두운 밤의 색 대신 짙은 코발트블루와 보라색을 사용했다. 별빛과 가로등의 불빛은 강물 위로 퍼져 나가며, 노란빛으로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림 속에서 두 연인의 모습은 푸르른 밤하늘과 반짝이는 강물의 흐름 속에 작지만,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별빛이 자신들을 축복하는 풍경 속에서 오롯이 서로에게 집중하는 듯하다. 별빛이 마치 폭죽처럼 터지며 강물 위에 흩어지고, 가로등의 따스한 불빛이 그들의 발걸음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두 연인은 서로에 대한 애틋한 온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은 전체 풍경 속에서 상대적으로 작은 존재지만, 그 미묘한 실루엣은 사랑의 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보여준다. 나는 그들의 평화롭고도 소중한 순간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이 마음속에서 커져만 갔다. 고흐는 이 모든 장면을 물감의 두께와 질감을 통해 생동감 있게 담아냈다. 고흐는 누이에게 밤 풍경을 그릴 때 더 풍부한 색감이 나온다고 말했다. 또한, 동생 테오에게 이 그림에 대해 글을 써 보내기도 했다. 그림을 보지 않고도 그 감정을 상상할 수 있는 표현이다.
‘나는 지금 아를의 강가에 앉아 있네! 오른쪽 귀에선 강물 소리가 들리고 별들은 알 수 없는 매혹으로 빛나고 있지만 저 아름다움 속에서 얼마나 많은 고통을 숨기고 있을까? 두 남녀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고 이 강변에 앉을 때마다 목 밑까지 출렁이는 별빛의 흐름을 느낀다네 나를 꿈꾸게 만든 것은 저 별빛이었을까? (1888.6 고흐의 편지)
고흐의 글에서 밤은 아침을 잉태하기 위한 고통을 견디는 시간으로 해석된다. 고흐의 그림처럼, 하늘은 밤사이에 진통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밤은 고독하고 외롭고 무서운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침묵의 시간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시공간으로 보인다. 지금 센강 위에서 느끼는 가로등의 빛 역시 그러했다. 노란빛은 차가운 새벽 공기를 뚫고 따스함을 전하며 여행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새벽하늘이 점차 밝아오며, 센강은 또 다른 모습을 드러냈다. 고흐의 그림에서 밤은 별빛으로 빛났다면, 새벽의 센강은 별 대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을 품고 있었다. 강물 위에 남아 있는 노란빛은 밤에서 아침으로 이어지는 고요한 다리가 되어 주었다. 하늘은 불그레하고, 푸른빛은 점차 엷어지며, 강물에 비친 누런빛이 어우러졌다. 잠이 오지 않아 밖으로 나와 헤매다 뜻밖의 행운으로 만난 파리의 이름다운 새벽이었다. 센강에서 본 밤 풍경도 단순한 어둠과 고요가 아니었다. 어둠 속에서도 끊임없이 흘러가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고흐가 지금 이 장면을 보았다면 어떤 색으로, 어떤 감각으로 표현했을지 상상했다. 밤과 새벽, 어둠과 빛, 그리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강의 얼굴이 그의 화폭에서 어떤 색채로 살아 숨 쉬었을지 궁금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일지도 모른다.
이른 새벽 산책길에서 만난 센강은 고흐의 그림을 완벽하게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오르세 미술관에서 봤던 그의 그림은 가슴 떨리는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우리가 직접 경험했던 그 풍경을, 위대한 화가의 작품 속에서 다시 마주했을 때,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느꼈던 생명력과 밤의 진통이 현실로 다가왔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그 작은 그림은 축복받은 휴식의 시간처럼 느껴졌지만, 동시에 에너지와 가능성을 품은 부적처럼 내 가슴에 던져졌다. 그의 그림이 내 기억 속에 문양처럼 새겨져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이 모든 경험이 가능했던 건, 우연히 만난 센강 덕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