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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음악 없는 음악회

튈르리 공원

by 씨네진

아침, 센강을 따라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여행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호텔 레스토랑에서 여유로운 아침 식사하고 있었다. 창밖에서 그들을 힐끗 바라보던 나는 갑자기 한기를 느끼며 쓸쓸한 여행자의 마음 한구석으로 들어갔다. 길가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은 엊그제 여행을 떠나오기 전 우리의 모습 아니던가!


새벽 산책길에 고흐의 그림 같은 센강을 본 나의 마음은 별빛을 가득 안은 마음으로 충만했으나 육체는 또 다른 언어로 허기를 불러왔다. 아침 식사는 무엇으로 준비할까? 겨울의 차가운 한기를 온몸에 두르고 돌아온 우리에게 가장 빠르게 차릴 수 있는 한 끼가 필요했다. 누군가 벌써 누룽지를 끓이고 있었다. 누룽지 끓이는 냄새가 구수하게 퍼지는 동안 김치와 멸치 조림을 반찬으로 식탁을 차렸다. 간소하지만 함께 따뜻한 식사를 같이하는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이 작은 식사 의식은 오늘 하루를 준비하는 예고편이었다.


우리가 첫 번째로 방문할 미술관은 오랑주리 미술관이었다. 우선 지하철 표는 일주일간 사용할 수 있는 ‘나비고’를 구입했다. 한국에서 예약한 뮤지엄패스 6일권도 수령했다. 손에 쥔 지하철과 뮤지엄 티켓은 여행의 어려운 짐을 반으로 줄여주었다. 미술관을 가기 위해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콩코드역에 내렸다. 잠시 후 그림처럼 튈르리 정원의 입구가 밝은 햇살과 함께 눈앞에 펼쳐졌다. 이날 파리의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때로는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고, 곧이어 부드러운 빗방울이 흩날렸다. 우산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작은 선택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미술관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공원의 차가운 철제 의자들을 세워 물기를 닦은 뒤 앉았다. 파리지앵처럼 의자에 나란히 앉아 햇빛을 즐겼다. 따뜻한 바람과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드는 순간, 긴 대화 없이도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멀리서 새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의 잔잔한 대화 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일행 중 누군가 송창식의 ‘푸르른 날’을 흥얼거리기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 작은 소리로 따라 불렀다. 파리의 역사와 예술을 품은 이 공원의 넉넉한 여유가 마음을 열게 했다. 우리가 이토록 편안한데,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예술가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문득 그들의 감정을 상상해본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여기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19세기 파리지앵들에게 예술과 문화가 숨 쉬는 공간이었다. 19세기 초에 음악회가 대중적 행사로 변화하면서, 공원에서 열리는 음악회도 왕족이나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즐길 수 있는 문화 행사로 확장되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정원에 울려 퍼지면, 사람들은 나무 그늘에서 음악을 감상하거나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이러한 풍경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의 작품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1862)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마네가 튈르리 정원에서 열린 음악회를 배경으로 19세기 중반의 파리 상류층의 문화적 생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다.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 1862, 내셔널갤러리, 영국


이 작품은 가로 길이가 약 1미터에 불과한 비교적 작은 유화이다. 제목은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지만, 정작 연주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고 다양한 인물들이 그려져있다.왼편 끝에 약간 잘린 부분에 서있는 사람이 마네, 왼편에 앞을 바라보며 베일 쓰고 있는 마네 부인 쉬잔 렌호프, 소설가 샹플뢰리, 시인 보들레르, 그의 동생과 작곡가 오펜바흐도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당시 파리 예술계를 이끌던 주요 인물들로,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튈르리 정원이 단순한 공원이 아닌 문화적 교류의 중심지였음을 보여준다. 당연히 그 당시 무용가 음악가, 일반 시민도 등장한다.



이 그림에서 연주자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매우 특별하다. 음악회가 한창 진행 중인 듯하지만, 그림 속 인물들은 음악을 듣지 않고 각자 대화에 열중하고 있다. 마네는 왜 연주자의 모습을 그리지 않은걸까? 아마도 그는 음악 연주 자체가 아니라, 음악을 듣는 순간의 분위기와 사람들의 반응을 포착하는 데 집중하고자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마네와 시인 보들레르 두 사람의 대화로 마네의 의도를 유추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아주 친했으며 튈르리 공원을 자주 산책했다고 한다. 마네는 공원 벤치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튈르리 정원의 음악회에서 내가 포착하고 싶었던 건 음악이 아니라,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순간적인 모습이었어요. 순간은 금방 사라지지만, 그림은 그 감각을 붙잡을 수 있죠.”

보들레르는 그의 말을 곰곰이 곱씹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겠지요. 나 또한 사라지는 감각과 인상을 시 속에 새기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과거의 이상에 머물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기록해야 합니다.”


마네와 보들레르는 각자의 방식으로 변화하는 현대적 감각을 포착하려 했다. 마네는 음악을 소리가 아니라 빛과 색채로 당대의 분위기와 감각을 담아냈다면, 보들레르는 시를 통해 도시의 생동감과 찰나의 인상을 기록하고자 했다. 그들에게 예술은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영원히 남기는 행위였다.



마네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이란 단순히 연주되는 음악이 아니라, 그 음악을 듣고 느끼는 순간들 사이에서 흐르는 그 무엇임을 전하고자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주로 조용하게 대화를 나누거나 음악을 감상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마네는 그들의 자세와 표정을 통해 당시 파리 사회의 문화적 관심을 보여주려고 했다. 단정할 수는 없으나 그림 속에서 읽어지는 마네의 확신을 믿는다.

그의 작품에서 자유로운 빛과 색채로 그려진 분위기는 오늘 내가 선택하고 싶은 휴식같은 장면이었다. 마네가 그린 작은 캔버스 속에서 나 역시 음악회 관객처럼 작은 점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 그림 속에서 연주되지 않은 음악이 내 여행 속에서도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교감 속에서 흐르는 감각이었다. 마네의 작품을 통해 나는 내 여행의 기억을 이미 기록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들이 바로 나를 만들고 있는 귀중한 블랙박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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