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떠나온 이 여행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 질문을 나에게뿐만 아니라 동행한 이들에게도 이 질문하고 싶었다. 여행이란 결국 자신을 발견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동안 여행은 어쩌면 구경하는 여행이었지 나를 성찰하는 여행은 아니었다. 파리 시각이 밤 9시를 넘어가고 있을 때, 아직 눈이 총총한 우리는 이번 여행에 대한 기대와 다음 날의 일정을 나눴다.
'단지 숨 쉴 시간이 필요했어요. 취미가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걱정 없이 현재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미술관에서 그림들을 천천히 느끼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중간중간 쉬고 싶으면 쉬는 자유로운 여행이 될 거라 믿어요.‘
“여행의 콘셉트가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여행하고, 먹고, 춤추고, 그림을 감상하며 수다를 나누는 일정은 흔치 않으니까요. 미술관에서 예전에 알았던 작품들과 교감할 수 있다면 충분히 만족할 것 같았어요.”
'이번 여행은 공통 관심사와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라서 즐거울 거로 생각했어요. 무엇을 보느냐보다 누구와 함께하느냐가 더 중요하죠.‘
'오랜 기간 가정사로 여행을 포기했었어요. 미술사를 현장에서 느끼고 싶고요. 이번 여행을 시작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이루어나가고 싶어요.‘
여행에 대한 이유를 듣고 보니 단순히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만이 아니라, 휴식과 기쁨을 찾는 여정에 의미가 있었다. 특히 영화 인문학을 공부하면서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떠난 여행이라 더 기대되었다. 나이 차이가 있지만 서로 마음이 편하고, 친구처럼 자연스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따뜻한 기운을 나누고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는 아부나 특정한 페르소나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진실되게 만났다.
나이가 들수록 정체성을 확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가족에만 정체성을 두고 살아가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확장하면 욕망을 넘어서 베푸는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들이 가족 중심의 정체성에 집착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한 채 허망한 노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 여행을 통해, 우리는 서로 각자가 좋아하는 예술의 영역이 확장되길 바랬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갱의 그림 <아레아레아>을 보았을 때 우리의 여행이 그림 속 여인들과 같이 내면으로 평온하고 영적인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타히티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했다. <아레아레아>는 타히티 원주민들의 풍속과 자연풍경을 묘사한 그림으로 '기쁨'이라는 의미다.
폴 고갱, 아레아레아(기쁨), 캔버스에 유채, 73x94cm, 1892, Orsay museum
폴 고갱은 35세가 되어서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릴 적부터 품었던 예술에 관한 관심과 선원으로서의 경험이 그를 예술가의 길로 이끌었다. 18세에 예비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그는 안정된 삶을 선택하지 않고 외항선원이 되어 15년간 바다를 떠돌며 이국적인 풍경과 문화를 경험했다. 이후 증권 중개인으로 안정된 삶을 살던 그는 금융위기와 가족 갈등 속에서 전업 화가의 길을 선택했다. 도시를 떠나 자연과 가까운 삶을 위해 타히티로 떠났다. 이 그림은 고갱이 타히티섬에 정착한 1년 후에 그린 그림이다. 고갱이 직접 그림에 쓰기도 했던 제목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에게 '아레아레아'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는 타히티에서 평온한 시간을 가졌을까?
커다란 나무 그늘에 앉은 여자가 타히티 전통악기인 비보 vivo를 불고 있고, 하얀 옷을 입은 여자는 홀린 듯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화면 앞의 개는 코를 킁킁거리면서 땅의 정기를 맡는 중이고, 화면 뒤편의 여인들은 폴리네시아 토속신을 경배하는 '타무레'라는 전통춤을 추고 있다. 이 정도 느낌이면 이 작품은 자연과 인간, 하늘과 땅이 어우러진 이상적인 낙원을 묘사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편안하게 쉬고 있는 여인의 눈이 우리를 향하고 있다. 그녀의 눈은 조용히 묻는다.
“당신이 찾는 낙원은 어디에 있는가?”
그 순간, 익숙했던 이 그림이 낯설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림 속 주황색 개는 땅의 기운을 감지하며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는 상징적 존재로 보인다. 고대부터 인간의 동반자로 여겨졌지만, 이 작품에서는 여성들과 거리를 두고 있어 단순한 친밀함을 넘어서고 있다. 하나가 될 수 없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경계가 있다.
나무 아래서 피리를 부는 여인의 표정은 차분하고 고요하다. 피리 소리를 따라 감미로운 평온이 주변으로 퍼지고, 옆에 앉아 있는 여인은 휴식을 취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림 속 두 여성은 나란히 앉아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이들의 모습은 겉으로는 조화로워 보이지만, 각자 다른 생각으로 감정이 단절되어 있다. 고갱이 그리려 했던 것은 단순한 낙원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걸까.
저 멀리 그림의 배경에는 타무레 춤을 추는 여인들이 보인다. 폴리네시아 전통춤인 타무레는 단순히 춤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나 감정을 표현한다. 종종 춤을 통해 사랑, 자연, 전통적인 신앙을 기념하거나 축하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즐거움과 자유를 표현하는 몸짓이다.
그림 사이사이에서 고갱이 그린 타히티 여성들은 단순한 평온함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와 그 안에서 해결하지 못한 내면의 고독이 보인다. 이 그림은 자연이 주는 평온함과 영혼의 즐거움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문명과 자연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모습도 담고 있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은가. 완벽한 휴식이 있을까?
그런데도 우리는 어쩌면 마음으로 자연 속에서 평온을 느끼는 타히티를 경험한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인문학을 통한 진솔한 연결로 만난 우리 모임은 경쟁과 질투 없이 자연스럽고 소중한 관계를 만들었다. 영화와 그림을 통해 주체적으로 예술을 이해하고 내면을 성찰하며 따뜻한 마음을 쌓았다. 이 모임은 단순히 교양을 쌓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성찰하고, 그림을 공부하며 우리의 주체적인 해석과 토론을 중심으로 예술을 향유하는 과정이었다. 그 덕분에 건조하지 않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며,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는 지혜도 배웠다. 이번 여행은 책에서만 보았던 그림들을 실제로 만나고, 예술 작품 앞에서 자신만의 휴식을 찾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여행이 끝날 즈음, 무엇을 얻었는지 다시 질문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