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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 세 번의 <키스>

로댕미술관

by 씨네진

로댕미술관에 대한 나의 기억은 오래되었다. 처음 로댕의 작품에 매료된 건 아마도 문방구에서 팔던 작은 명화 엽서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여고 시절, 문방구 진열대에는 명화 엽서가 놓여 있었다. 그중에서도 로댕의 <키스>는 유독 인기가 없었는지, 오랜 시간 팔리지 않아 종이는 누렇게 바래있었다. 한때는 대리석처럼 빛나던 질감이 엽서 속에서는 희미했지만, 나는 그 남자가 로댕이고 여자가 그의 뮤즈 카미유 클로델이라 믿었다. 그들이 지독히 사랑한 연인이라 생각했고, 언젠가 로댕의 작품을 볼 날이 오겠지만, 빛을 보지 못한 클로델의 조각을 언젠가는 꼭 보러 가리라 다짐했었다.


그 후 독일에서 공부할 기회가 있어 쾰른에서 살게 되었다. 여름 방학이 되자 후배와 함께 기차를 타고 7시간을 달려 파리로 여행을 떠났다. 그때 나는 여행에 익숙한 후배를 따라 루브르, 오르세, 베르사유, 퐁피두 등 주요 미술관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생각해 보니 먹을거리는 바게트에 마늘 치즈가 전부였고, 다섯째 날이 되자 그것조차 더는 먹을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도 바게트에 마늘 치즈는 손이 가지 않는다. 마지막 날엔 동전까지 다 털어서 타일랜드 레스토랑에서 짜고 매운 칠리소스를 밥에 비벼 먹었다. 얼마나 짰던지 물값이 더 나왔다. 슬프지만 잊히지 않는, 여행의 흑역사지만 여행의 기억은 언제나 아련함으로 남는다.

날씨가 유난히 맑았던 그 여름날, 나는 처음으로 로댕미술관을 찾았다.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생각하는 사람>이었지만, 내 관심은 오직 <키스>에 쏠려 있었다. 몇 해 동안 낡은 엽서 속에 박제되어 있던 그 작품을 실제로 보았을 때, 작품 자체보다는 오래도록 엽서로만 보아왔던 실제 작품이 ‘지금 여기서’ 보고 있다는 사실에 설레는 마음뿐이었고, 그 감정이 전부였다.

여전히 나는 여인이 로댕을 사랑했던 카미유 클로델이라 생각했고, 그들이 열정적으로 키스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미술에 대한 지식은 없었지만, 그저 본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로댕 미술관의 정원을 산책하며, 후배에게 방금 본 감동을 호들갑스럽게 이야기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내가 본 두 사람의 애틋한 입맞춤은, 오랫동안 내게 사랑의 위대한 증거처럼 남아 있었다. 그들의 입술이 실제로 닿았는지, 떨어져 있었는지조차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 후 두 번째로, 결혼한 뒤 남편과 함께 다시 로댕미술관을 찾았다. 당시는 워킹맘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시기였고, 이번 여행 역시 그저 잠시 휴식을 위한 관광일 뿐이었다. 로댕의 <키스> 앞에서 여전히 감탄했지만 그때도 그들의 입술이 닿았는지 닿지 않았는지 보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무조건 입을 맞추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방문이라 그런지, 깊이 있는 감상보다는 ‘이미 본 작품’이라는 생각이 앞섰고, 감정도 그만큼 스쳐 지나갔다. 여행을 마친 뒤에도 예술 작품에 대한 기억은 흐릿했고, 오히려 남편과의 감정싸움이 더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드디어 세 번째, 나는 다시 파리에 왔고 로댕미술관에서 <키스> 앞에 섰다. 두 인물은 서로의 몸에 완전히 기댄 채 안고 있다. 남자는 여인의 허리를 감싸고, 여인은 살짝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입술을 내민다. 그러나 그들의 입술은 아직 닿지 않았다. <키스>라는 제목과 달리, 이 장면은 입맞춤의 절정이 아니라 그 직전, 숨을 고르는 찰나를 포착하고 있었다.

그들의 살결은 부드럽게 빛나고, 근육과 곡선은 유려하며 유연하다. 조각 아래 받침대는 거칠게 만들었다. 거친 받침대 때문일까, 조각이 마치 돌 속에서 막 깨어 나온 듯한 인상을 준다. 로댕은 사랑의 열정을 정적인 돌로 만들었지만, 그 안에 긴장과 머뭇거림, 순간의 떨림까지도 느껴진다. 이는 단순한 사랑의 모습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솟구치는 순간의 감정을 응시하고 있다. 과연 이 모습은 사랑의 감정인가 절제의 감정인가! 멈춰 있는 그들의 입맞춤이 깊은 사색으로 나를 이끈다.

로댕의 작품 《키스》는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프란체스카 다 리미니와 시동생 파올로 말라테스타의 비극적인 사랑을 형상화한 것이다. 원치 않았던 남편과의 결혼은 프란체스카에게 감옥과도 같았고, 사랑 없는 결혼 생활 속에서 그녀는 남편의 동생과 금지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두 사람의 마음은 점점 깊어졌고, 결국 그들의 관계는 들통나고 만다. 분노한 남편은 그들을 발견한 순간 망설임 없이 살해한다. 그러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육체를 벗어난 뒤에도 꺼지지 않았고, 그 대가는 혹독했다.


단테는 이들을 지옥의 두 번째 층에 놓았다. 거기서 그들은 영원히 거센 바람에 휩쓸리는 형벌을 받는다. 손끝이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결코 서로를 마주할 수 없는 채, 서로를 향한 갈망만이 바람결에 흩날리며 영원을 맴돈다. 하지만 로댕은 절망이 아닌, 사랑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했다. 그가 포착한 것은 입맞춤의 정점이 아닌 그 직전, 숨결이 스치는 찰나다. 무엇보다 인상 깊은 점은, 두 연인의 입술이 닿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미완의 입맞춤은 끝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운명을 암시하고, 사랑과 비극이 얼마나 긴밀히 얽혀 있는지를 조용히 드러낸다.

흥미롭게도《키스》는 원래 《지옥의 문》의 일부로 계획되었지만, 너무 아름답고 평온한 분위기 때문에 제외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옥의 형벌 속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이들의 사랑은, 로댕의 손에 의해 ‘지옥’이 아닌 ‘사랑’을 상징하는 작품으로 남게 되었다. 이 조각은 또한 로댕과 까미유 클로델의 격정적인 사랑을 반영한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로댕은 그녀를 사랑했지만 끝내 떠났고, 클로델은 버려졌다.


《키스》는 그들의 뜨거운 사랑과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슬픔의 정서로 볼 수도 있고, 사랑하는 연인의 눈으로 바라보아도 좋다. 사랑은 닿을 듯 말 듯 다가가는 순간, 바로 그 찰나에 최고의 절정을 이룬다. 여고 시절 문방구에서 샀던 낡은 엽서에서 이 작품을 보았을 때부터 나는 이 조각을 로댕과 클로델의 사랑의 모양으로 바라보았고, 지금도 그 감정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금지된 사랑에 도전했다는 것인데, 그 도전이야말로 더 절실한 사랑의 감정이 아니던가! 이 느낌을 그대로 가슴에 놔두련다.


#로댕미술관#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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