튈르리 정원에서 햇빛에 앉아 잠시 쉰 후에 센강을 따라 서쪽으로 걷다 보니 크림색 벽면으로 된 오랑주리 미술관이 보였다. 커다란 직사각형 창들이 길게 배열된 건물은 자연광이 충분히 들어와 따뜻해 보였지만, 1월의 비바람은 미술관을 차갑게 식히고 있었다. 입구 앞에는 입장객이 길게 줄을 서 있었고, 붉은색, 노란색, 보라색 등 다양한 우산들이 어우러져 점묘화 같은 장면을 만들어냈다. 우리도 그 긴 줄에 끼여 비와 추위를 견디며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 자연스럽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오랑주리 미술관 장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까지 오랑주리 미술관을 가장 아름답게 담아낸 작품을 꼽자면, 아마 이 영화가 최고일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길은 연인 이네즈, 그리고 스스로를 모네 전문가라 칭하는 친구 폴과 함께 타원형 전시실을 가득 채운 모네의 수련 연작을 감상한다.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전시실은 마치 연못을 에워싸듯 작품을 감싸고 있으며, 천장에서 내려오는 자연광이 공간을 한층 더 환하게 만든다. 모네는 수련 연작을 위해 특별히 오랑주리 미술관의 공간을 채광을 이용할 수 있도록 구상하지 않았던가! 영화 속 미술관은 파리에서 가장 가고 싶은 곳으로 다가왔고, 작품을 감상하며 나누는 길, 폴, 이네즈의 대화는 우디 앨런 감독 특유의 패러독스를 담아 더욱 인상적이었다.
이네즈: "모네 전문가라 배울 게 많을 거야. 문화생활 좀 하자구."
폴: "색의 병치가 정말 놀라워! 모네야말로 진정한 추상표현주의의 아버지야.
아니야, 터너겠다."
이네즈: "터너도 좋아하지만, 이 작품은 정말 대단하다."
폴: "내 기억이 맞다면 이걸 완성하는 데 2년이 걸렸대. 작업은 지베르니에서 했는데…"
길: "내가 듣기로 모네가 실험했던 것 중에…"
이네즈: "쉿, 폴 얘기 듣고 있잖아."
폴: "카유보트가 자주 들렀대. 내가 보기엔 과소 평가된 화가지."
이 대화는 전문가 폴을 우스꽝스럽게 묘사하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진정한 감상의 태도임을 강조한다. 폴은 작품 자체보다 미술사적 지식과 화가의 에피소드에 집중하는 이론가다. 반면, 길은 모네의 실험과 창작 과정을 따라가려 했으나 끝내 완전히 말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림을 감상할 때 화가의 삶이나 역사적 맥락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모네의 작품은 그림을 바라보는 방식을 암묵적으로 감독은 말하고 있다.
추위 속에서 두 시간을 기다린 끝에 미술관에 들어섰지만, 기대와 달리 실망이 컸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자연 채광이 필수인데, 흐린 날씨 탓에 빛이 거의 들지 않아 수련 연작은 뿌연 먼지 속에서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 '다른 날, 맑은 날 왔어야 했는데… 날씨를 체크했어야 했어…' 순식간에 여러 가지 후회가 밀려왔다. 햇볕이 들기를 기다렸지만, 하늘은 점점 더 흐려질 뿐이었다.
수련(Les Nympheseas), 모네, 오랑주리 미술관, 파리
실망이 커질 즈음, 나는 카메라를 들어 그림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렌즈를 통해 본 작품 속에서 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수련은 마치 물속에서 빛을 머금고 다시금 환하게 빛나는 듯했다. 물론 그 빛은 전시용 보조 빛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빛으로 그림이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그로 인해 화가의 진실한 표현에 숙연해졌고, 그의 세계에 깊이 몰입했다. 가까이에서 본 붓질과 색채는 추상적인 느낌을 주었지만, 한 걸음 물러서자 색이 조화를 이루며 연못과 수련의 형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모네는 빛과 색을 활용해 시간을 담아내려 했고, 그의 붓 터치는 순간을 영원히 고정하려는 시도로 보였다. 내가 바라보는 것은 수련일까, 아니면 빛이 남긴 흔적과 흐르는 시간의 본질일까? 질문을 남기게 했다.
진정하고 다시 타원형 전시실에 걸린 초기 작품을 바라보았다. 초록, 파랑, 연한 분홍과 흰색이 중심을 이루며, 연못과 수련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 하늘이 조화롭게 반영되어 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대학 초년생 시절, 연둣빛 스웨터를 입고 나무 아래에서 친구를 기다리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스웨터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물 위를 스치는 미세한 파동이 붓 터치로 생생하게 살아난다.
중반으로 갈수록 원근감이 사라지고, 노랑, 분홍, 파랑이 강조되며 형태보다 색과 붓 터치가 중요해진다. 모네는 빛과 반사의 효과를 깊이 탐구하며 점차 추상적인 표현으로 나아갔고, 덕분에 나는 연못을 넘어 물속에 비친 하늘과 구름까지 함께 경험하게 된다. 때로는 물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런 경험을 못 했다면 ‘물속에 비친 하늘은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어린애 같은 질문을 했을 것 같다. 당연히 그 고민은 모네가 다 해버렸다.
끝으로 타원형 전시실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 순간 붉은색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수련은 더 이상 뚜렷한 형상을 갖지 않고, 하얀 벽면을 따라 물결 속에서 색이 녹아내리는 듯하다. 붉은색과 오렌지색은 태양의 마지막 빛을 붙잡으려는 듯 강렬하고, 잠깐씩 보이는 어두운 녹색과 보라색은 깊은 물속의 비밀을 담고 있다. 그 색과 형태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서는 순간, 마음은 끝없이 얽힌 씨실과 날줄 속으로 빠져들고, 수십만 화소의 색채 속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을 정도로 다른 세계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마지막 그림 앞에서 우리는 모네가 백내장의 영향으로 색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붉은 계열의 색을 많이 사용했다는 평론가들의 말에 휘둘린다. 그러나 그가 시도했던 끝없는 표현의 도전을 되돌아보면, 명확한 형태를 포기한 것은 단순한 시력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점차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감각적 경험을 추구했고, 결국 색과 붓 터치만으로 감각을 전달하는 길을 선택했다. 그의 이런 실험적인 접근 방식은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적인 요소로 평가받기도 한다. 마크 로스코의 색면 회화(color field painting)에서 보이는 색과 감각의 조합은 모네의 후기 작품과 연결된다.특히 조안 미첼은 모네의 수련 연작에서 볼 수 있는 자유로운 색칠의 흐름과 붓의 터치에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마주한 수련 연작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그림을 바라보는 순간, 색과 형태가 경계를 허물며 시간과 공간, 자연과 감각이 하나의 세계로 융합되었다. 연못 속에 비친 풍경과 화가의 시선이 겹쳐지면서, 나는 현실의 틀을 벗어난 듯한 색과 빛의 흐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또 다른 차원에서 펼쳐지는 몽환적인 세계를 경험했다.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미리 알고 있던 정보들이 내 시선을 제한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번 모네의 수련 연작은 알고 있는 배경 지식을 내려놓고 온전히 작품을 마주할 때, 더 깊이 몰입할 수 있었다. 미술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보고 예술과 교감하는 장소임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