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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카유보트의 비오는 거리를 걷다

파리의 첫날

by 씨네진

2024년 1월 3일 저녁 6시 30분,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이미 내린 어둠과 차가운 공기는 덤으로 나의 불안에 동참했다. 낯선 공간은 여전히 두렵다. 확실하지 않은 상황을 기다리고 있는 순간순간 미세하게 눈까풀에 경련이 일어났다. 미리 겪는 불안 증세였다. 짐을 챙겨 숙소까지 가는 차량을 찾기 위해 공항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공항의 복잡한 풍경이 점점 내 눈에 미로처럼 보였다. 그 길을 따라가야 할지, 잠시 멈추어 서서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되묻고 싶을 때가 있었다. 고흐가 자주 사용하는 크롬 옐로색으로 칠해진 주차장 벽은 우리의 들뜬 분위기를 더욱 북돋웠다. 이미 우리의 목소리는 높아졌으며 누구의 말이든 자지러지게 웃었고, 몸짓은 모두 춤 짓으로 흔들거렸다. 그사이 나는 나도 몰랐던 나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여행은 낯섦과 마주하는 것 아닌가! 그러다 보니 천천히 두려움은 기대와 설렘으로 환승하고 있었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빗줄기가 차량 지붕을 두드렸다. 숙소로 가는 길, 첫날부터 비라니 실망스러웠으나 간헐적으로 제모습을 드러내는 도시의 모습이 기대감으로 변했다. 파리 서쪽으로 불로뉴 숲을 지나고 있을 때, 이 숲이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배경으로 유명하기도하고 숲이 넓어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도 하며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라고 기사님이 안내해주셨다. 숙소까지 가다 보니 공항에서 꽤 먼 거리였다. 한 달 동안 미술관 일정과 자료 준비, 교통편과 숙소를 고민하며 완벽한 계획을 세우려 애썼지만, 완벽이란 늘 허구에 가깝다는 사실을 또 깨달았다. 여행지에서 계획은 늘 새롭게 바뀌기 마련인 것을, 이런 작은 실수마저 여행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숲을 지나 1시간 후, 파리 외곽에 있는 3층 독채 숙소에 도착했다. 1월의 공기는 겨울답게 차가웠지만 맑고 상쾌했다. 숙소 옆에 지하철역이 있어 이동 걱정도 한결 덜었다. 숙소는 2층에 주방과 거실, 3층에 욕실과 방이 있었다. 하나둘 꺼낸 음식 재료들이 식탁을 가득 메웠다. 조금씩 준비해 온 재료들은 2주 동안 먹고도 남을 만큼 넉넉했다. 첫날의 메뉴는 라면과 햇반, 그리고 김치로 단출했지만, 뜨거운 국물과 익숙한 밥맛은 속을 달래기에는 충분했다.


식사를 마친 후, 나는 혼자 집 주변을 산책했다. 숙소 옆에는 트램 정류장과 작은 뮤지엄이 있었고, 은은한 가로등이 비추는 벽과 하얀 벽에 파란 창문이 달린 집이 보였다. 자잘한 비가 내리고, 우산을 든 사람들이 지나가는 자갈길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그 순간, 구스타프 카유보트의 <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가 떠올랐다. 수십 번 본 그림이지만, 직접 서 있는 이 자리는 그 그림 속 풍경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림 속 풍경은 정지된 이미지지만, 여기에서는 빗방울의 소리와 차가운 공기, 자갈길 위의 움직임이 나의 감각을 두드렸다. 내가 이곳에 서 있다는 사실이 풍경에 의미를 더하며, 과거와 현재, 기억이 교차하는 특별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래서 이 순간이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을 우리는 파리의 마르모탕 마네 미술관에서 축소된 준비 버전으로 보았다. 이 작은 그림은 원작을 위한 연구나 축소 복제품으로, 대형 작품을 완성하기 전에 구성을 탐구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모네의 아들 미셸 모네가 소장하다 미술관에 기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작은 현재 시카고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크기가 212.2cm x 276.2cm에 이르는 대형 유화로, 시카고 미술관 큐레이터 글로리아 글룸은 이를 “19세기 말 도시 생활을 담은 위대한 그림”이라 평가하며, 마치 그림 속에서 산책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고 정교하다고 소개한다.

그림 속 거리는 19세기 중반 나폴레옹 3세와 오스만 남작의 주도로 재건된 오스만 양식 건물이 있는 생라자르역 근처 더블린 광장(Place de Dublin)이다. 현재 더블린 광장은 카유보트의 시대와 비교해 큰 구조적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으며, 그림 속 중앙에 있는 건물 1층의 약국도 여전히 운영 중이다. 이는 당시와 현재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요소로, 19세기 파리의 역사와 현대를 동시에 간직한 공간으로 남아 있다. 지금의 더블린 광장은 카유보트의 작품 속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산을 쓴 남녀는 느릿하게 광장 거리를 걸으며 어딘가를 보고 있다. 중심에 있는 남녀는 19세기 파리 상류층을 대표하는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있다. 남성은 프록코트와 나비넥타이, 탑 모자를 썼고, 여성은 타이트한 상의와 풍성한 스커트를 입은 채 모피로 안 감이 된 코트를 걸쳤다. 앞의 인물은 크게 클로즈업되어 있고, 멀리 있는 사람들은 점점 희미해진다. 마치 카메라 렌즈를 통해 순간을 포착한 듯한 구도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표현이었다고 한다. 특히 오른쪽에 묘사된 남자의 잘린 뒷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낯설고 파격적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혼자 걷는 남자, 사다리를 메고 가는 남자, 문가에 서 있는 남자 등 그들의 모습은 급격히 변화하는 도시에서 남성으로 사는 고독하고 힘들어 보인다. 특히, 여성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나며, 이는 그 당시 여성의 제한적인 사회적 역할을 반영한다.

화면을 가득 채운 회색빛 자갈은 감청색 우산 아래에서 비 오는 날의 무게감을 더한다. 베이지와 크림색으로 칠해진 건물과 도시의 색채는 부드럽기도 하고 보라색이 보태져 우아하기까지 하다. 상큼한 초록빛 가로등은 삶의 욕구마저 솟게 한다.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노란빛과 주황빛은 회색 톤의 도시 속에서 작은 활력을 부여한다. 이 그림 속에서는 마차의 바퀴가 도로를 구르며 나는 소리,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이 급하게 뛰어가는 발소리가 들려온다. 원형의 우산과 네모난 포석, 마차의 둥근 바퀴, 직선으로 그려진 건물은 각기 다른 시각적 시선을 요구한다. 그림 속의 사물들은 비에 젖은 보도와 포장 돌에 희미하게 반사되어, 마치 그림 속 또 다른 그림처럼 착각을 일으킨다. 이 반짝이는 빛들은 우울한 날씨 속에서도, 마치 도시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듯한 순간을 선사한다.

젖은 자갈길과 빗소리, 도로 위 포장 돌의 작은 반짝임, 멀리 보이는 창문들까지, 내 앞의 펼쳐진 풍경은 카유보트의 그림〈비 오는 날, 파리>의 거리와 충분히 겹쳐 있다. 이 그림은 단순히 과거의 파리를 담은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도 잊히지 않을 현실의 창문이 되었다. 내일 아침, 밝은 하늘 아래에서 마주할 파리의 모습도 어쩌면 이 그림 그대로일 것만 같다. 거리는 카유보트의 그림처럼 내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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