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모래폭풍 속에서 인간을 묻다.

#영화<올드>리뷰

by 씨네진

영화를 본 후, 우리는 종종 예기치 못한 감정과 만난다. 영화 《올드》는 ‘시간’에 대한 공포를 건드린다. 단순한 공포영화에서 느끼는 감각적 자극이 아니라, 삶의 리듬이 압축되고 무력하게 조여드는 시간 그 자체에 대한 본질적 두려움이다.


하루가 평생처럼 흘러가고, 그 안에서 인간은 늙어가며 죽음을 맞이한다. 이 영화는 죽음의 순간보다, 시간이 빼앗긴 인간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과 무력감을 조명한다.


“시간이 있었다면 감정도 정리하고, 관계도 회복할 수 있었을 텐데.”


이 탄식처럼, 인물들은 하루라는 짧은 생 안에 감정을 소모하고, 고통을 겪고, 삶을 정리한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Old》(2021)는 이국적인 해변을 무대로 펼쳐지는 SF 스릴러이자, 인간의 본성과 취약함을 조명하는 심리극이다.


영화는 ‘시간’이라는 거대한 힘 아래 놓인 인간의 몸과 마음, 직업과 질병, 관계와 윤리를 세밀하게 해부한다.



하루가 평생이 되는 해변


가이와 프리사는 이혼을 앞두고 마지막 가족 여행을 떠난다. 리조트에 도착한 가족은 ‘비밀 해변’으로 초대되고, 다른 투숙객들과 함께 그곳에 도착한다. 하지만 해변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아이들은 몇 시간 만에 청소년이 되고, 어른들은 급속히 늙어가며 각자의 질병이 빠르게 악화된다.



해변은 ‘1시간 = 2년’의 속도로 시간이 흐르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탈출을 시도하지만, 경계를 벗어나면 기절해 버린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제약회사의 극비 실험임이 밝혀진다. 그들은 희귀 질환자들을 모아 신약의 효과를 빠르게 확인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온 것이다.

가이의 아들 트렌트는 말한다.



“우리는 실험쥐가 아니야. 우리는 사람이라고!”

끝내 살아남은 자녀들이 이 진실을 세상에 알린다



인물들은 현대인을 대표하는 은유다.




가이 – 통제의 환상과 청력의 상실


가이는 보험 계리사로 미래의 위험을 수치화하며 통제하려 한다. 그러나 해변에서는 계산이 무력하다. 그는 점차 청력을 잃으며 자녀와의 마지막 소통조차 단절된다.

그는 아내에게 말한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했잖아... 그걸 기억하자.”


이 말은 통제할 수 없는 삶 속에서도 사랑이 유일한 진실임을 상기시키려는 절박한 외침이다.



프리사 – 억눌린 감정의 종양


프리사는 박물관 큐레이터로 과거에 집착하며 현재의 삶은 회피한다. 그녀의 몸에 있던 종양은 시간 가속으로 거대화되고, 이는 억눌린 감정, 죄책감, 가족 갈등의 신체적 표출이다.종양 제거 수술을 받으며 그녀는 속삭인다.


“나는… 나 자신을 너무 오랫동안 숨겼어.”


이 고백은 억눌린 삶의 진실이자, 감정이 억압된 사람들의 내면을 대변한다.



찰스 – 권위의 붕괴


외과의사 찰스는 자기 권위를 맹신하며 통제하려 하지만, 점차 조현병적 망상에 빠져 폭력적으로 변한다.

그는 계속 반복한다.


“그 남자의 직업이 뭐였는지 아는 사람? 그가 의심스러워.”


이는 의심과 공포, 망상에 사로잡힌 현대 남성의 불안정한 자아를 상징한다.



크리스탈 – 외모 지상주의의 말로


SNS 모델인 크리스탈은 노화에 극심한 공포를 느끼며, 칼슘 결핍으로 뼈가 부서지는 장면은 외적 자아가 산산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외친다.


“불을 켜! 내 얼굴이 보여야 해!”


이 절규는 타인의 시선에 종속된 자기애의 붕괴이자, 외모 중심 사회의 공포 그 자체다.



패트리샤 – 치료자도 상처받는다


심리치료사인 그녀는 간질을 앓고 있다. 이는 예기치 않은 감정의 폭발을 상징하며, 공감 피로와 번아웃을 겪는 감정노동자의 현실을 대변한다.

간질 발작이 오기 전, 그녀는 중얼거린다.


“모든 사람을 도와주려고 했는데… 나 자신은 돌보지 못했어.”


제런 – 착함은 방패가 아니다

간호사 제런은 질병은 없지만, 가장 먼저 심리적으로 붕괴된다. 그는 합리적이고 이타적이지만, 비정상적인 현실 속에서 가장 먼저 무력감에 빠진다.

그는 말한다.


“이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문제야. 나는 더는 설명할 수 없어.”


그 말은 이성적 세계관이 무력화될 때의 절망을 드러낸다.


실험자들 – 윤리의 실종



제약회사 연구진은 환자들을 해변에 가두고 신약 실험을 진행한다.

그들은 차분하게 말한다.


“우리는 인류를 구할 수 있습니다. 하루에 20년의 데이터를 얻을 수 있어요.”


이 말은 윤리를 잃은 과학의 냉정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Old》는 단순히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공포를 다룬 영화가 아니다. 각 인물의 직업은 그들의 세계관이며, 질병은 억눌린 감정과 사회적 짐의 은유다.


이혼 직전이던 부부가 마지막엔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죽음을 맞는 장면은, 시간의 압축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가이는 마지막으로 프리사에게 말한다.

“나는 네 목소리를 듣고 싶어. 마지막으로.”

그 한마디에 담긴 인간적인 절실함은, 우리가 끝내 붙들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사랑, 용서, 몰입, 고요함—삶의 본질은 결국 ‘시간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가 매일 쌓는 모래성처럼, 언젠가는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오늘을 살아내는 일.

그 진실을, 이 영화는 가슴 깊이 새기게 한다.



#올드

keyword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