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괜찮아질까-Wim Wenders의 응시

영화 <에브리싱 윌 비 파인> 리뷰

by 씨네진

“Everything will be fine.”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는 이 짧은 문장은 위로처럼 들리지만, 이 영화 안에서는 거대한 물음표처럼 떠다닌다. 빔 벤더스는 이 익숙한 문장을 제목으로 삼음으로써 오히려 관객에게 되묻는다.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 아니, 괜찮아질 필요는 있을까?


영화는 한 작가가 겪은 비극적인 사고 이후 12년의 세월을 따라가며, 괜찮아지지 않아도 살아지는 삶, 말보다 오래 남는 죄책감, 말할 수 없는 감정의 무게를 보여준다.


침묵 속의 사고


이야기는 조용한 눈길 위에서 시작된다. 작가 토마스는 운전 중 미끄러져 어린아이를 치는 사고를 낸다. 그러나 카메라는 그 충격적인 순간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침묵, 정지된 차량, 창밖으로 흩날리는 눈송이—관객은 그 장면을 보지 않고도 ‘느끼게’ 된다. 가장 강한 고통은 때로 말해지지 않고, 보여지지 않으며, 그저 오래 남는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의 첫 번째 윤리이자 미학이다.



말하지 못한 감정


사고 이후 토마스는 고통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한다. 감정을 말하지 않고 글쓰기로 우회한다. 작가로서 그는 이 고통을 책으로 가공하여 성공하지만, 인간으로서는 점점 무감각해지고 관계에서 멀어진다.

첫 연인 사라는 그에게 마지막 기대를 접고 뺨을 때린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감정이 부재한 자에게 던지는 윤리적 경고다.


“Do you even feel anything anymore?”
(넌 지금도… 아무 감정이 없니?)


그녀의 질문은 곧 관객을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고통을 말하지 않는 자, 혹은 고통을 예술로 포장하는 자는 과연 진실한가?

침묵하는 자의 생존법

아이를 잃은 엄마 케이트는 울지 않는다. 말을 줄이고, 남은 아들 크리스토퍼와 함께 묵묵히 시간을 버틴다. 그녀의 얼굴에 흐르는 건 눈물이 아니라, 고통을 버티는 무표정이다.


“Silence is not forgiveness. But it is a way to survive.”
(침묵은 용서가 아니야. 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이 될 수는 있어.)


그녀는 용서하지 않되 증오하지 않고, 끝까지 감정을 감내한다.

시간은 상처를 지우지 않는다

이 영화는 12년에 걸친 시간을 다룬다. 그러나 그 시간은 상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삶 속에 자리 잡게 하는 과정이다. 잊는 것이 아니라 품는 것,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길’은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메타포다. 토마스는 끝없이 차를 몰고 다니지만, 그 길에는 목적지가 없다.


“Sometimes the past is not behind you. It’s still the road you’re on.”
(가끔 과거는 지나간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여전히 걷고 있는 길이다.)


풍경으로 말하는 감독


이러한 정서적 리듬과 시각적 거리감은 빔 벤더스의 영화 세계에서 매우 특징적이다. 그는 파리, 텍사스, 베를린 천사의 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등에서 늘 길, 고독, 침묵, 시간이라는 주제를 다루어 왔다.

Everything Will Be Fine에서도 그는 인물보다 공간을 먼저 보여주고, 사건보다 여운을 강조한다. 특히 3D 촬영은 인물과 인물 사이의 거리감을 물리적으로 체감하게 하며, 감정의 벽과 고립감을 화면 속에 투명하게 부유시킨다.


사계절의 감정 리듬


계절의 흐름은 인물의 감정 곡선을 시각화한다.
겨울의 사고, 봄의 망설임, 여름의 충돌, 가을의 감내.

영화 후반, 청소년이 된 크리스토퍼와 토마스가 재회하는 장면은 단 몇 초의 눈 맞춤만으로도 말하지 못한 시간이 흐르게 한다.


“Maybe we don’t need to talk. Just… be here.”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여기에 있자.)


이 응시는 용서도 화해도 아닌, 감정의 감내에 가까운 울림이다.


예술은 구원이 되는가


토마스는 작가다. 그는 고통을 글로 옮기고, 그 글로 인정받는다.
하지만 질문이 남는다. 작가의 글쓰기는 치유가 되는가?

그의 문장은 자신을 구한 것 같지만, 타인에게는 이해받지 못한다. 고통을 미학으로 편집하는 일이 때로는 또 다른 거리감이 되기도 한다.


“Writing saved me.”
(글쓰기가 날 살렸어.)


그러나 그 글은 누구를 구했는가? 독자인가, 작가 자신인가?


반면, 케이트는 그림을 그린다. 말 대신 색과 선으로 감정을 표현하지만, 그 그림은 치유가 아니라 감정의 환기일 뿐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대신 그림을 그렸어.”


그림은 그녀 안의 고통을 드러냈지만, 그것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모든 게 괜찮아지지 않더라도

이 영화는 마지막까지 묻는다.
예술은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아니면 고통을 정리하고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방식일 뿐인가?

결국 Everything Will Be Fine은 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상처 입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 감정을 말로 정리할 수 없는 사람들,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맴도는 사람들.


“Everything will be fine. Maybe not today, maybe not ever. But still—we live.”
(모든 게 괜찮아질 거야. 오늘은 아닐 수도, 영원히 아닐 수도 있어.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


빔 벤더스는 말한다.
삶은 괜찮아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살아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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