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 올 해가 보름 남짓 남았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잦게 내리는 비를 보면 다시 11월 즈음으로 돌아간 듯하고. 엄마, 눈은 언제 와? 12월이 되자 아이들은 매일 눈을 기다린다. 이제 겨울이 시작인 걸. 조급해져서 두 발도, 마음도 동동 구르는 아이들에게 안심하라고 이야기해 준다. 다가오는 주말, 날씨 예보는 다시 기온이 뚝 떨어진 내리막길을 걷는다. 따뜻했다 추워졌다를 반복하는 계절, 날씨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이 더 버거워진 것 같다.
그럼에도 일상의 균형이 깨지지 않고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가족들 면역 떨어지지 않도록 먹거리에 좀 더 신경 쓰고, 이왕이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도록 돕는다. 얼마 전, 독감을 앓은 아이들도 아팠던 기억 때문인지 엄마 말에 고분고분. 아이스크림이나 냉수처럼 찬 것은 멀리하려고 노력한다. 이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일상을 일상답게 가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절실한 것인지를.
한편으로 나라는 사람의 항상성은 어떻게 해야 유지할 수 있는 것일까 고민한다. 주변 상황과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 나. 사람들의 시선 혹은 무관심에도 신경 쓰지 않는 나. 내가 지닌 장점이든 약점이든 고스란히 인정해 주고 스스로를 지지해 줄 수 있는 나. 이런 나를 꿈꾼다. 하지만 내가 꿈꾸는 나에게 도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딘가에 부딪혀 깨져버린 유리 조각처럼 마음이 흩어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내면이 단단해서 한결같은 사람. 너무 이상적인 욕심일까.
이러한 꿈이 부질없지만은 않다는 걸 글쓰기를 하며 알아가는 중이다. 누군가의 글을 읽는 일은 호로록 국수면발 넘기듯 쉽지만 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의 글을 완결하고 나면 성취감이 뒤따른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지 않는 이상, 쓰는 일에 물질적 보상이 바로 주어지진 않는다. 흔히들 이야기한다. 글쓰기는 자기만족이라고.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자신에 대하여 정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강력한 내면의 면역력을 가진 사람이다. 외부의 공격이나 변화에 흔들림 없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고 족히 여기는 사람. 내면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사람이란 이런 사람이지 않을까. 글쓰기로 나 자신과 일상 생활을 '만족'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신나는 체험이 있을까.
몇 달 동안 책 모임을 이어가는 중이다. 함께 읽고 쓰고 나누고. 내면의 면역력을 그 무엇에게도 빼앗기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울타리가 생겼다. 사실, 모임을 시작할 때만 해도 걱정하는 마음이 앞섰다. 대학 시절, 누군가와 팀을 이루어 과제를 해내는 일은 늘 부담감이 컸다. 졸업 이후, 취업 시험을 위해 들어갔던 스터디 모임에서도 매 번 불필요한 긴장을 하곤 했으니. 책 모임에 처음 나가던 날, 낯선 사람들과 어울리며 함께 과제를 수행하는 일에 대한 염려가 어김없이 밀려왔다.
첫 모임의 어색함을 풀기 위해 나름 강구한 대책은 함께 커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 나는 모임 장소에 아메리카노 두 잔을 준비해 갔다. 모임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근처 카페를 들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다. 한 손에는 우산을, 다른 손에는 벤티 사이즈 커피 두 잔을 들고 쏟아질까 조심하며 걸었다. 낯선 길이라 조금 헤매는 사이, 상대방이 부담스러운 호의라 여길까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이 되기도 했다.
여러 개의 골목길을 들어섰다 빠져나오기를 반복하자 모임 장소가 보였다. 먼저 도착하신 두 분이 말없이 노트북 을 보고 계셨다. 나는 집에서 챙겨간 종이컵 두 개를 부스럭거리며 꺼냈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두 잔의 커피를 네 잔의 커피로 나누던 내게 동시에 쏟아진 눈길.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잘 알지 못하는 이가 건네는 커피에 대한 고마움과 부담스러움, 미안함이 삼 분의 일씩 섞여있던 눈길이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때 다른 한 분이 들어서는 소리가 더해져 모임 분위기는 한층 누그러졌다. 우리는 커피를 홀짝홀짝 목 안으로 넘기며 모임의 방향과 규칙을 정했다. 얼마간 딱딱한 시간이 흘러가자, 점점 화기애애해졌다. 서로 성향도, 나이도, 쓰는 글의 색깔도 다른 분들과 이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처럼 대화가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2주에 한 번씩, 지하철을 타고 모임 장소로 달려가는 길을 기대한다. 함께 글 쓰며 사귄 친구. 글벗이라는 말도 처음엔 낯설었지만 어느 사이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가 함께 모이는 공간은 모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잘 가꾸어진 곳이었다. 단독 2층 건물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크고 작은 방들이 있고 한쪽 벽면에는 책들이 가득하다. 한 주는 함께 읽었던 책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 한 주는 각자 써서 온라인 카페에 올린 글을 합평한다. 그러고나면 두 시간이 금세 훌쩍 지나간다. 모임을 마무리하고 나오는 길에는 작은 텃밭이 가꾸어진 마당을 함께 둘러보는 여유가 생긴다. 맑은 날에는 노란 볕이 스며들어 마당 한가득 생기를 더했다. 혼자 띄엄띄엄 쓰다가 감춰놓았던 내 글에도 글벗들을 통해 생기가 더해진다. 서로 얼굴을 맞대고 상대방의 글이 어떤 면에서 반짝이는지, 또 어떤 면에서 다듬어야 할지 이야기하는 순간이 흥미롭다. 내 글이 타인의 눈과 마음을 통과하며 새로운 의미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글은 혼자만 간직하고 있으면 일기로 남을 뿐이에요. 하지만 여러 사람과 나누면 날개를 다는 것 같아요."
이 모임을 맨 처음 제안해 주셨던, 우리 중 가장 먼 곳에서 달려오시는 글벗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 내린 커피 한 잔을 집에서 홀로 마실 때, 가끔씩 그런 마음이 든다. 집 안 가득히 퍼진 커피 향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은. 나는 예가체프 커피 원두에서 잘 구운 군고구마 향을 느끼는데, 다른 이는 어떻게 느낄지. 그런 것이 궁금하다. 여러 벗들과 글쓰기를 이어가는 한, 삶의 향기를 다채롭게 맡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개인의 경험과 생각은 고유한 영역이기에 그것을 표현한 글 역시 섣불리 평가할 수 없다. 대신 서로의 글을 음미하는 일에 마음을 기울여본다. 그러다 보면 타인과 나 자신 사이에 생기는 이해와 오해의 낙차도 차츰 줄어가지 않을까. 내면의 항상성을 유지하며 살기. 쓰기를 시작하며 품게 된 크고도 지극히 내밀한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