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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일 Dec 22. 2023

오늘도 시시한 나를 견디는 이들에게

읽는 마음 (고정순, '그림책이라는 산')

그림책 작가 고정순의 일상에는 맵고 쓴 순간들이 많았다. 그녀의 두 번째 산문집 '그림책이라는 산'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고비를 넘고, 여전히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고정순 작가는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이로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 쓰고 그린다. 지난 30여 년 간 <가드를 올리고>, <철사 코끼리>, <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 등 스무 권이 넘는 그림책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길벗어린이 출판사에서 '사탕의 맛' 시리즈로 <옥춘당>이라는 책을 펴냈다.



스무 살의 고정순은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막연했다.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지만 그림책 작가는 어떻게 해야 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저 자신을 강렬하게 흔들었던 두 그림책 사노 요코의 <200만 번 산 고양이>와 존 버닝햄의 <지각 대장 존>을 탐독한 후 홀린 듯 복사지를 꺼내 반으로 접는다. 직접 그림책 형태를 만들어본 것이다. 그것을 '더미'라고 부른다는 것을 그녀는 시간이 지난 뒤에 알게 되었다.(p.12)  



20대 중반, 고정순은 '옛날 옛날 관악산에'라는 첫 그림책을 출간한다. 저 멀리, 점처럼 보이던 꿈에 닿았다. 그런데 가까이서 만난 꿈은 점이 아닌 산이었다. 그것도 높고 험한 산이었다. 꿈꾸던 일이 생계를 보장해 주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스무 살에 집을 나와 독립해야 했던 그녀는 부업으로 경륜장 매표원, 카페 점원, 구리 코일 감기, 물체 주머니 만들기 등의 알바를 거치며 돈을 벌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그림책 만드는 일에 매달렸어도 달걀 한 판을 사는 일은 그녀에게 사치였다. 



'꿈을 지지해 줄 무릎의 힘을 기르는 일과 시시한 나를 견디는 것, 내가 그림책을 만나 처음 한 일이다.'

(p.15)



고정순 작가가 경륜장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디자이너가 꿈인 친구는 가정 형편 때문에 독학으로 옷을 공부하고 있었다. 고정순은 친구가 처음으로 완성한 옷을 보며 유행에 한참 뒤처진 모양새라 판단한다. 친구는 자기도 처음 만든 옷이 별로라 말한다. 그러나 그 옷을 계속 간직하겠다 한다. 훗날 근사한 옷을 만들게 되었을 때, 자신의 미약한 시작을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그림책 공모전에 떨어진 후, 출판사에서 되찾은 그림을 공원 쓰레기통에 버렸던 정순은 친구의 말을 들으며 생각한다. 자신의 밑천을 보는 일이 괴롭다고.(p.15)



하지만 그림책이라는 산을 계속 오르내리려면 두 가지 결심이 필요함을 깨닫는다. 꿈을 지지해 줄 무릎의 힘을 기르는 일과 시시한 나 자신을 견뎌내는 것. 꿈의 모양을 어떠한 자세로 완성해 가야 하는지, 그 시작점에 선 이들에게 그녀의 말은 경험에서 우러난 현실적 조언이 된다.



작가의 두 가지 마음 자세를 본받고 싶다. 꿈을 지지해 줄 무릎의 힘을 기른다는 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신앙이 있는 내게 '무릎의 힘'이란 무릎을 꿇을 만큼 간절한 태도, 즉 '기도하는 마음'이라 읽히기도 한다. 꿈을 이룬다는 건 나 자신의 성장을 스스로 지켜보는 일이다. 나를 성장시켜 나간다는 것은 식물이 자라나는 모습처럼 아름답거나 예쁘지만은 않은 일이다. 본능적인 욕심과 질투, 게으름과 무지함으로 울퉁불퉁한 자아를 날마다 깎아내고 다듬어나가야 한다. 결국 시시한 나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그런 나를 만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임을 깨닫는다. 날마다 시시한 나를 만나더라도 무조건 응원해 주기. 작가의 말을 내 삶에 적용시켜 본다.



'컨디션이 괜찮은 시기에는 앉아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다른 부업도 병행할 수 있었다. 나는 '조금' 나아진 상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었다. 내 몸에서 가석방을 허락받은 기분이다. 과로는 금물이 아니라, 내겐 꿈이다.'(p.56)



책방에서 일하며 이전보다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정순에게 생활고 보다 더 큰 시련의 바람이 분다. 그녀는 어느 날부터 뼈가 있는 모든 부위에 통증을 유발하는 자가면역질환을 앓게 된다. 얼마의 시간 동안 앉아있기. 냉혹한 삶은 그림책 작가라면 꼭 쥐고 있어야 할, 이 최소한의 여건도 마련해주지 않는다. 앉아서는 잠시도 버틸 수 없어 그녀는 누워서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뒤집개로 뒤집은 부침개처럼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면서.(p.50) 그러면서 몸이 아픈 작가로서 잔기술(?)을 장착해 가고 힘을 덜 쓰고도 다룰 수 있는 채색 기법을 만들어간다. 그렇게 앓으면서 그리고 쓴 책이 <최고 멋진 날>과 <슈퍼 고양이>, <점복이 깜정이>라는 동물 이야기이다.



고정순 작가에게 그림책은 '생계를 위한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붓을 쥘 수 없어 손에 동여매고 작업했다는 그녀에게 그림책은 한 시도 떨어질 수 없는 애인 같은 존재다. 행복이자 기쁨, 생을 이어가게 만드는 에너지 같은. 아픈 몸을 추스리기도 벅찰 텐데 치열하게 일에 몰두하는 모습은 안타깝기도,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녀는 책을 쓰고 그리는 일에 늘 아쉬움이 남았다고 한다. 이 '아쉬움'은 다음 그림책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된다. 이전 책을 만들고 나서 느낀 아쉬움은 새로운 이야기와 그림을 만드는 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녀는 말한다. 한 권의 그림책을 다 만들었는데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자신이 그림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라고.(p.51) 그림책에 대한 아쉬움이란 독자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 같은 게 아닐까. 작가들의 마음 안에는 꽁꽁 숨겨진 실타래 한 뭉치씩 들어있나 보다. 책 한 권을 다 만들고서도 여전히 풀려나오지 못한, 이야기라는 실타래. 아직 갇혀있는 이야기를 위해 그녀는 그리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내기에서 이긴 건 바람이 아니라 햇볕이라는 옛이야기가 있다. 옛이야기는 나이가 들수록 서사의 의미가 뚜렷하게 느껴진다. 내 우중충한 시련의 외투를 벗기는 건, 비장한 각오나 결심이 아니라 한 줌 웃음이다.'(p.103)



산문집 중간중간에는 작고 귀여운 그림들이 놓여있다. 동물이나 사람, 아니면 동물과 사람이 뒤섞인 오묘한 얼굴들이 하나같이 강해 보이지 않아 정이 간다. 그 모습이 짠하면서도 웃음을 짓게 한다. 작가의 꾸밈없는 마음, 맨 얼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웃음은 주기적으로 죽음을 생각할 만큼 우울감이 컸던 작가의 생활력, 삶의 철학이 된다. 나는 하루에 몇 줌의 웃음을 지을까. 웃음의 힘에 대해 깨닫는다. 웃음은 누군가를 바라볼 때 터져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작가의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다. 책 후반부에는 그녀의 삶에 울림을 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정순은 지역 주민들에게 쓰고 그리는 일을 가르치며 혼자만의 작업실을  벗어난다. 결혼하지 않은 정순은 엄마들이 주로 모인 그림책 수업이 처음엔 힘들었다. 육아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으며 가족만이 글과 그림의 소재가 되는 엄마들. 그녀들이 겨우 꺼내 놓는 감정도 행복이나 기쁨, 사랑이나 따스함 정도이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서툰 엄마들을 바라보며 정순은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자기를 표현해 가는 엄마들을 바라보며 그녀는 가르치는 일에 용기를 낸다. 매 시간, 어떻게 수업을 준비해야 할지 새롭게 고민하며.



'수강생들에게 외롭고 힘든 누군가를 찾아내는 일이 바로 예술이라고 말했다. 천재적인 감각으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것도 예술이겠지만 누군가를 위해 '달빛을 햇빛 삼아' 달리는 마음도 예술이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아픈 아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또 누군가는 끝내 화해하지 못한 아버지를 그리며 문장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한 줄이라도 정성껏 쓰고 그리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바로 예술이다.'(p.142)   



한 수강생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산에 숨어 있던 엄마를 찾아다녔다는 글을 쓴다. 어둑한 숲 속에서 '달빛을 햇빛 삼아' 달렸다는 수강생.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글로 풀어내며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렸고, 정순은 그녀의 글을 통해 예술이 무엇인지 이야기한다. 외롭고 힘든 누군가를 찾아내는 일이 예술이라고. 그 사람을 위해 한 줄이라도 정성껏 쓰고 그리는 마음이 바로 예술이라 말한다. 여름에 들었던 책 쓰기 수업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말을 들었던 것이 기억난다. 글을 쓸 때, 내 이야기가 필요한 '한 사람'을 품고 쓰라는 말. 그 한 사람을 찾아내어 정성껏 쓰고 그리는 일. 예술이란 것을 이렇게 소박하고 따뜻하게 정의 내린 문장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고정순 작가는 힘들게 느껴졌던 그림책 수업을 4년간 이어나갔고 현재 '달극장'이라는 그림책 독립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그곳에서 매표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그녀는 여전히 이야기를 쓰고 그리는 사람으로 살고 있다.

  


'그림에 어떤 규칙이 있는지 몰라도 적어도 내겐 어떤 것도 규칙이 될 수 없다는 걸 조금씩 배워 나갔다. 작은 자물쇠 하나를 연 셈이다. 지도를 그리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내가 얽매인 관념으로부터 홀가분해진다는 걸 알았다. 내가 원하는 건 매끈하게 잘 그린 그림보다 이야기와 보폭을 맞춰 걷는 그림이다. 오늘도 지도를 그린다.'(p.64)



눈이 내려 온 동네가 하얗고도 환해진 날, 도서관에 가서 고정순 작가의 책 몇 권을 찾아보았다. 그날은 <가드를 올리고>, <철사 코끼리>, <어느 늙은 산양 이야기> 세 권을 만날 수 있었다. 내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은 <가드를 올리고>였다. 복싱 선수들이 취하는 손 자세를 '가드'라고 한다. 목탄으로 굵고 거칠게 표현한 그림체가 녹록지 않은 인생의 무게를 담고 있었다.



복싱 선수 '나'는 단박에 산을 오를 듯 포부에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정작 인생이라는 링 위는 좁은 길, 바위와 웅덩이, 높은 언덕 같은 장애물로 가득하다. '나'는 강력 펀치를 맞으며 링 위에서 쓰러졌다 일어서길 반복한다. 여기가 어디지? 나는 뭘 하는 거지? 올라갈 수 있을까? 머릿속은 온통 의문과 의심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일어나 자세를 가다듬는다. 가드를 올리고, 아무도 없는 모퉁이 한쪽에서 마지막까지 서 있다.



작가의 삶과 링 위의 선수 '나'가 똑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말하는 '이야기와 보폭을 맞춰 걷는 그림'이란 어떤 그림을 말하는 것일까. 밝고 화려한 채색과 이미지로 이야기를 파묻지 않는 그림, 여백이 많아 독자의 아득한 기억마저 풀어놓게 만드는 그림, 외롭고 힘든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 이런 그림들일까. 그동안 그림책을 너무 쉽게만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과 글, 둘 중 마음에 드는 한 가지에 치중해서 보았던 적도 많았다. 한 권의 그림책을 균형 있게 감상하는 일이 중요함을 깨닫는다.



그녀의 그림과 글 속에는 분명 울림이 있었다. 울다가도 웃게 만드는, 그래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훌훌 자리를 털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울림들. 그런 꿋꿋함이 배어있는, 고정순 작가의 그림책을 계속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녀가 더욱 건강해지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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