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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져니박 Nov 26. 2023

마라 맛 vs 순한 맛, 당신의 선택은?

중국식 샤브샤브 홍탕과 백탕 사이, 질리지 않는 피드백 방향은


요즘 잘 먹지도 못하는 매운 음식이 그렇게 당긴다. 소위 마라~ 로 시작하는 중국 음식들은 먹기 전에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게 한다.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빨간색에, (생각보다 더 맵겠는 걸... 나 먹을 수 있겠지?)  고추기름에 음식점 조명 불빛이 반사되어 번쩍번쩍하는 탓이다.


그래도 입 안에 넣자마자 얼얼하고 짜릿한 감각에 놀랐다가도, 시원한 맥주를 털어 넣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워진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롱패딩에 얼굴도 손도 깊숙이 파묻고 훠궈, 중국식 샤브샤브 집에 도착했던 어느 날. 반반, 홍탕, 백탕 중에 뭐로 할까?라는 저녁메이트의 질문에 망설임 없이 '홍탕!'을 외쳤다. 크... 시뻘건 고추기름과 시큼 짭짤한 두반장에 고기 한 점을 푹 담그면 얼마나 맛있을까.


그래도 너는 처음 와봤으니 둘 다 먹어보자는 말도 일리가 있었다. 홍탕(마라 맛)과 백탕(순한 맛) 둘 다 맛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마라 맛 vs 순한 맛, 나의 최종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마라 맛 vs 순한 맛 : 샤브샤브 편


처음에 나는 빨간 탕에서만 열심히 젓가락을 놀렸다. 촘촘히 난 버섯이나, 얇은 소고기는 잠깐만 홍탕에 넣어도 금방 맵고 짭조름한 맛이 깊게 배었다. 크... 이 맛에 마라 먹지. 그런데 그렇게 한 접시 두 접시 먹다 보니 그 맛이 그 맛 같았다. 특히 청경채와 배추 맛이 비슷했고, 표고버섯과 팽이버섯은 정말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맛있었지만!)


한편, 국물이 맑고 새하얗다고 얕봤던 백탕의 고기도 그 나름대로 구수한 맛이 배었다. 저녁메이트가 하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고 똑같이, 청양고추와 간장을 적당량 섞어서 양념장을 만들어왔다. 이 양념장에 찍어먹으니 백탕에 있었던 팽이버섯도 매콤한 맛을 냈다. 원래 재료 맛을 해치지 않고 말이다.


재료는 다양하더라도 한 번에 요리되어 나오는 마라샹궈, 마라떡볶이와 상황이 달랐다. 샤브샤브니까 보글보글 끓고 있는 탕에 살짝 재료를 데칠 수 있다. 게다가 그 재료를 찍어 먹을 수 있는 소스도 여러 가지로 먹을 수 있는 상황이다.


고추기름에 질리거나 매운맛에 감각이 무뎌지는 일 없이 이것저것 먹기에는 심심하고 깔끔한 백탕이 더 나았다.


출처 : 져니박 본인


탐색의 여지가 있는 순한 맛이 좋아요


똑같은 버섯이, 어떤 탕에 끓여지냐에 따라 그 질감이나 맛, 색깔이 바뀐다. 우선 샤브샤브라는 것이 무조건 생 버섯보다는 맛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히 더 다양한 맛, 다양한 결과물을 내놓는 것은 백탕이다. 오래 데쳐도 부드러워질 뿐이다.


한편, 마라맛 홍탕은 시각, 후각, 촉각 모두를 자극하는 맵고 매력적인 비주얼로, 허옇기만 했던 버섯을 변화시키지만 거기까지다. 오래 데치면 정말 시뻘건 고추기름이 원래 작업을 피드백하는 것이 아니라 삼켜버려서, 더 이상 다른 맛을 느낄 수 없게 한다. 


홍탕! 을 외치던 처음과 달리, 나의 선택은 순한 맛이었다. 그러고 보니 회사생활에 있어서도 나는 순한 맛 피드백을 선호한다.


'OO보고는 이런 식으로 목차를 구성하고, 이런이런 레퍼런스를 가져와야 합니다' 단락단락마다 피드백을 제공하는 경우, 짧은 시간 내에 모두가 (회사가 원하는 형식에 부합하는) 시각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인상 깊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티 안 나는 피드백의 여유, 지속가능한 이유


하지만 회사에서 해야 할 일 중에 한 방에 승부를 보아야 하는, 일회성의 보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구성하는 하루하루의 좀 더 작은 규모의 업무가 있다. 이런 루틴 한 업무에도 빨강 피드백을 주는 것은 좋은 판단일까?


서로 다른 성향을 지녔고, 다른 결의 경험을 해 온 구성원들이 하는 업무에 있어, 목표와 목적만 부합한다면 심심한 피드백을 주고, 직접 이런저런 색깔과 방향을 탐색할 수 있게 여지를 준다면 어떨까. 


마라맛 피드백, 빨간펜 선생님의 모범답안을 제공하면 분명 짧은 시간 원하는 결과물의 내용과 형식을 이끌어내기 효과적이고 효율적일 것이다. 그러나 보다 지속가능한 조직에서 위임과 분업이 잘 이루어지려면, 한 걸음 물러나서 피드백을 주는 것이 어떨까?


오히려 그 원재료의 맛과 질감을 크게 바꾸려들지 않는 여유를 보이면, 피평가자가 자발적으로, 보다 좋은 결과물로 개선해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이 버섯으로 가장 맛있게, 그러면서 계속 손이 가는 맛을 찾을 수 있을 테니.


출처 : Unsplash 의 Jonathan Borba


져니박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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