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라리며느리 Nov 29. 2020

아이들과 이스라엘을 여행했다.

기억하고 싶은 히브리어 5개

그동안 유대인들의 하브루타 교육 방법에는 관심이 많았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나였다. 이스라엘이 '스타트업 국가'로 불린다는 사실도 몰랐다. 서울보다도 적은 750만 인구를 가진 나라가 전 세계에서 인구 대비 스타트업 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인 동시에 미국 다음으로 글로벌 기업가정신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인 것도 이번에 알 수 있었다. 또한 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비 지출이 가장 큰 나라이자 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과학자와 연구자가 가장 많은 나라, 노벨상 수상자를 12명이나 배출한 나라라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 작은 나라에서 이런 결과들이 나올 수 있었는지 인발 아리엘리가 쓴 '후츠파'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하고 싶은 말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글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단어들을 중심으로 글을 풀어보려 한다.



'후츠파'라는 단어를 접하고 생뚱맞게도 제일 먼저 떠오른 건 내가 어렸을 때 즐겨봤던 만화 드래곤볼의 '에네르기파'였다.(본의 아니게 나이 들통?)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는 '후츠파'정신이 드래곤볼 주인공인 손오공에 있는 필살기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이 필살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이번 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내가 여행을 할 수 없는 요즘, 이 책을 통해 이스라엘을 여행할 수 있었고 중요한 몇 개의 히브리어를 배우면서 유대인 부모의 양육방식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내가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알게 되었다.





후츠파(Chutzpah)



우선 이 책 제목이기도 한 '후츠파'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표적인 정신이다. 삶을 대하는 확고한 자세이자 당당하고, 용감하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태도를 말한다. 이 정신을 좀 더 알고 싶어 찾아보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rqvXJxUvQ98


이 영상만 봐도 후츠파 정신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었고 이것이야말로 작은 나라인 이스라엘에서 혁신적인 기업이 많이 나오는 이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된다'는 말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자세, 입학한 지 6개월 된 학생이 교수님에게 당당하게 교수님이 틀렸다고 하는 자세가 후츠파이며 이런 것이 바로 이스라엘 혁신의 중요한 요소라고 하는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였다면 그 수업에서 쫓겨났던지 그 교수님에게 찍혀 대학 생활이 힘들어졌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우리나라에도 이 후츠파 정신이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길 바란다. 물론 이것이 정답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발라간(Balagan)


    


이 '발라간'이라는 단어는 이스라엘 사람뿐 아니라 사회 체제까지 즉흥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이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모두가 발라간의 태도로 삶을 살아간다는 사실이 놀랍다.


무질서는 혼란을 초래한다는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이스라엘의 발라간은 유연성을 발휘해 주변 상황을 수용하도록 돕는다. 놀이나 사회생활을 할 때 엄격한 규칙을 따르기보다 발라간의 태도로 열린 마음을 유지하면 변화를 수용할 여유가 생긴다. 즉 발라간은 인생을 살면서 맞닥뜨리는 의외의 상황에 대응하는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유도한다. p. 44


아이들이 쓰레기장 놀이터에서 논다는 것을 알고 충격이었다. 위험하다는 생각부터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행동을 제재하지 않고 그저 아이들을 보고만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래도 예전보다 아이들에게 위험한 것이 무엇인지 미리 알려주고 자유를 많이 주려고 하는 내 모습에 뿌듯함도 느껴졌다. 조던 피터슨 '12가지 인생의 법칙' 중 열한 번째 법칙인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는 방해하지 말고 내버려 두어라'와 연결된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 점은 지금도 계속 노력하고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싶다.


https://brunch.co.kr/@jini00024/37


발라간을 통해 이스라엘 아이들은 세상에 처음부터 정해진 규칙과 질서가 없다는 사실을 배운다는 이야기에 나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규칙을 만들어 주고 있진 않은지 반성하게 되었다. 사회적, 개인적 행동을 규제하는 질서가 적을수록 표현의 자유가 커지고 이로 인해 아이의 감정, 욕구, 바람을 제한하는 뚜렷한 경계가 사라진다는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무질서 속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도 발라간을 통해 기업가에게 중요한 창의력, 문제 해결 능력, 독립심을 기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질서에서 벗어나 일상 속에 약간의 혼돈을 더해 보길 권유하는 저자의 말을 꼭 기억해야겠다. 우선 우리 아이들을 어른들과 내가 만든 틀에 가두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도로 조직화된 사회보다 적당히 무질서한 사람, 기관, 체제로 이루어진 사회가 더 효율적이고, 탄력적이고, 창의적이고, 대개 더욱 효과적이다." p. 49



리즈롬(Leezrom)


이스라엘에서는 아이들이 보호자 없이 자유롭게 보내는 시간을 긍정적으로 본다. 또한 정해진 계획 없이 발 닿는 대로 걸어 다니길 장려한다. 히브리어로는 이렇듯 즉흥적인 행동을 '리즈롬' (직역하면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는 뜻이다)이라 부르며 굉장히 높게 평가한다. p. 88


리즈롬이라는 의미를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행동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인생을 살면서 마주하는 예상치 못한 순간을 즐길 힘을 뜻한다고 한다. 아이들이 혼자 신호등을 건너거나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혼자 외출할 때 성장한다고 느끼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특히 목적지까지 가는 길을 익히거나 어른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 지름길을 스스로 찾을 때 아이들은 더 큰 자부심을 드러낸다고 한다.


자유를 통제받고 스스로 위험에 대응해본 경험이 적은 아이는 어른이 되고도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데 불편을 느낀다. 게다가 여기에는 더 큰 문제가 있다. 독립적으로 행동할 의지 자체를 잃는다는 것이다. p. 90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한 아이들은 커서도, 심지어 대학교 입학을 하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부모가 자녀의 진로뿐 아니라 대학생이 된 자녀의 과제까지 해주며 심지어 교수님에게 전화까지 하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부끄럽기 그지없다. 나는 이 리즈롬을 통해 아이들의 자립심을 키우는데 더욱 노력해야겠다 다짐했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를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키우는 것임을 꼭 기억해야겠다.


쉬프주르(Shiftzur)


이스라엘 군인들


이 단어는 개선, 재창작, 재건을 뜻하는 쉬sh, 프p, 즈tz에서 파생했다. 쉬프주르는 기존 물건이나 장비를 개인의 취향, 선호, 필요에 맞춰 개조하는 행동을 의미한다. p. 224


이스라엘 군인은 입대하면서 자신들의 장비와 군복, 심지어 무기까지 자신의 몸에 맞게 개조한다고 한다. 성능을 개선하려는 목적뿐 아니라 자기의 개성을 나타내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를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히브리어로 '쉬프주르'다. 우리나라 군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군대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이 부분은 명확히 말할 수 있다. 군인에게 개성과 창의력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미군처럼 우리나라 군인도 마찬가지다. 필요에 의해서든 부대의 자부심을 표현하기 위해서든 자유롭게 장비를 개조하라고 장려하는 이스라엘 군대 문화를 우리나라 군인들이 알게 되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바인헤버 박사는 쉬프주르를 "이스라엘의 다양성을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군대는 이스라엘 사회의 축소판으로, 쉬프주르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현재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적응하고 변화하고 개선할 방법을 찾아요.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는 법이 없어요. 늘 진보와 발전을 추구하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을 두고 변화를 위한 변화라고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많은 사람이 즉흥적으로 개선을 이루어 냅니다." p. 227


이는 애덤 그랜트가 쓴 '오리지널스'의 개념과 연결되는 것 같다. 대세에 순응하지 않고 구태의연한 전통을 거부하는 독창적인 사람들을 칭하는 오리지널스야 말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장 보수적일 수 있는 군대에서 군인들의 개성과 독창성,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혁신이 아닐까?


우리나라 군대 문화가 이스라엘처럼 바뀐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궁금해진다. 군대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에서도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개성 있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문화가 있으면 좋겠다. 다행히 지금 이 부분은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또래 아이들과 다른 성향과 특이점을 보여주는 우리 아이를 위해서도 너무나 필요한 문화가 아닌가 싶다.



이히예 베세데(Yiheye beseder)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아기부터 성인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도전과 실패를 반복하며 학습한다. 정신적, 신체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방법을 배운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는 맹목적일 만큼 긍정적인 신념을 가졌다. 히브리어로는 이를 '이히예 베세데'라고 부른다. p. 286


마지막으로 이 단어는 우리가 살면서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낙관주의를 말하고 있는 '이히예 베세데'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래에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긍정이 아니다. 이와 함께 꼭 있어야 할 것이 '행동'이라고 말한다. 이것이야말로 이스라엘에서 말하는 낙관주의, 즉 이히예 베세데를 의미한다.


"이히예 베세데가 이런 부작용을 보이는 이유는 근거 없는 낙관 때문입니다." 페레스가 이야기하길 "뭐든 다 잘될 거라고 말만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말만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이 다 잘되도록 행동해야죠. 제대로 노력하지도 않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믿는다면 어리석은 생각이에요. 내 마음이 편하려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이히예 베세데를 남용하면 위험합니다. 이히예 베세데를 핑계로 책임을 분산하다가는 끔찍한 결과가 나올 겁니다." p. 290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긍정적인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나 또한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야 내가 버틸 수 있고 힘든 상황을 잘 이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만 한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에 맞는 노력, 실천이 필요하다.


이히예 베세데 정신은 이스라엘 문화와 유대인의 역사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생존자가 지니는 삶의 태도라는 것이다. 이 말에서 우리 모두에게 이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지금 좋지 않은 상황에 있더라도 곧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이 정신의 기본이다.


이스라엘 문화의 중심에서 기업가정신을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이히예 베세데'를 기억하며 살아야겠다.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가 있다는 것을 믿고 많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변화와 성장을 추구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본받고 싶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내가 지금 열심히 책을 읽고 공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위에 언급한 다섯 개의 히브리어뿐 아니라 그 외에도 기억해야 할 많은 단어들이 있다. 책을 읽고 이처럼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책은 처음이다. 글을 쓰면서 챕터별 서평을 다시 써봐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만큼 정리해야 할 것도, 기억해야 할 것도 많다는 의미이다. 정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아이들(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꼭꼭 씹어먹어야 할 책이라는 것을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이 책으로 아이들과 함께 이스라엘을 여행한 기분이 들었다. 이전에 읽었던 '폴리매스' 책을 통해 양육에 대한 막연한 계획이 있었다면 이번 '후츠파'를 통해 그 막연했던 계획들이 훨씬 구체적으로 변했다. 가히 인생 책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95311494?OzSrank=1




참고도서 <후츠파>  인발 아리엘리 지음 / 김한슬기 옮김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매주 주식을 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