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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춤 에테르 18화

by 모정연

5년차가 되고 그들은 봄 미니앨범 5집 발매와 동시에 새로운 셋리스트로 월드 투어를 시작했다. 비행기와 해외에서 곡 작업은 계속됐다. 미니 5집에 희찬의 곡이 많이 실렸다. 기사에는 ‘더 짙어진 감성’이라고 표현됐다. 우울해졌고 가사는 좀 더 공허에 대해 짚었다. 그 해 두 번째 월드 투어 국가였던 싱가폴에서 사고가 발생했다. 넷째가 리프트에서 점프 타이밍을 잘못 맞춰 무대 아래로 낙상했다. 바로 응급처치에 들어갔으나 골절로 당분간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청천벽력같은 첫 고난이 고갤 디밀었다. 하필이면 넷째가 늘 문제를 달고 살던 왼쪽 무릎 부상이었다. 결국 넷째는 활동을 중단했다. 졸지에 텐빌스는 잠시 네명이 됐다. 소인원 그룹에 한명의 빈자리는 너무 컸다. 셋째 넷째 투톱의 메인댄서 체제였는데, 넷째가 빠진 채 투어를 돌아야 하니 동선을 다시 짜야했다. 정규 3집 발매도 넷째가 없으니 미뤄졌다. 국내에 들어와 약 두달간 정규앨범 발매가 미루어지며 시간이 비어버린 그때 더 큰 문제가 터졌다. 둘째 희찬의 연애 스캔들이 터졌다. 한국에 오랜 기간 머무르다 꼬리가 길어 잡힌 격이었다. 상대는 둘째 희찬보다 네 살 위의 아이돌 출신 여자 배우였다. 쌍두마차 격으로 인기 높은 게 연오와 희찬인지라, 희찬의 스캔들에 팬덤이 휘청였다. 내분처럼 그간 곪았던 작고 사사로웠던 문제가 마그마처럼 움틀, 튀어나왔다.



회사의 조치인지 멤버들 자의인지 스캔들 일주일 후 연오와 막내가 라이브를 켰다. 평소처럼 좋아하는 팝을 틀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서로의 일상을 주고받는 방송이었다. 구슬픈 팝 발라드에 결국은 인생에 큰 시련 없이 살아온 맘 약한 막내가 울먹였다. “넷째형아는 잘 낫고 있어요,” 울먹이다 이내 오열했다. 연오가 “우리 막둥이가 넷째가 많이 걱정돼서 우나봐요.”라는 말에, 막내가 그 특유의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저리는 눈망울로 끅끅 소리내며 어깰 들썩였다.



안타까운 그룹 상황에 대한 모든 총체적 답답함이란 걸 모두가 알았다. 메인 댄서 넷째는 활동을 중단하고 정규앨범은 밀리고 희찬은 스캔들이 터지고 올해도 좋은 성적 내기에는 글렀고 팬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안젤로를 탈주하는 게 눈에 보였다. 연오가 달래줬지만 결국 라이브 중간, 막내는 방을 나갔다. 연오는 혼자 서글픈 안젤로를 위로했다. 그날 연오 얘기는 희재에게 꼭 필요한 위로였다.



-살다 보면 잠깐 길을 잃었다고 생각이 들 수 있잖아요. 걸어가는 길이 너무 울퉁불퉁하고 남들이 가는 예쁜 길이 아니라고 해도. 나중에 돌아보면 우리가 길을 만들면서 가는 걸 수도 있어요. 혼자서는 방향을 잃어도 물어볼 데가 없는데 우린 같이 있으니까 서로한테 물어봐주면 되잖아요. 진짜 좋지 않아요? 우리 잘 가는 거 맞아? 힘내자, 얘기해줄 수도 있고. 가끔 지치면 좀 쉬었다가 가고. 바람도 느껴보고, 풍경도 보고.



이때 희재도 4학년으로 컴퓨터공학과 전공을 살린 취업은 포기하고 일반 직무로 지원하며 온갖 <서류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괴로운 시절이었다. 성공한 아이돌 표본과는 점점 멀어져 슬럼프에 빠진 텐빌스나 수십 개 기업에게 불합격 통보만 받아 인생 자체를 부정당하는 듯한 희재나 청춘 한복판에서 길 잃은 꼴이 비슷했다. 멈추고 포기하기엔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는 청춘이란 것마저 같았다.



어떤 팬덤이든 응원하는 가수가 최고가 되길 바란다. 하지만 점점 쪽수도 밀리고 회사의 기획력과 역량이 부족해 결국은 역부족이라는 걸 인정해야하는 날도 온다. 모두가 정상에 올라갈 순 없다. 텐빌스는 ‘대상’에 가까워지는 것보다 ‘현상유지’를 하는 것도 벅차 보였다. 실력 좋고 유명한 프로듀서, 디렉터들이 더는 텐빌스와 작업하지 않았다. 어디선가 계속 샛별은 등장하고 한 번 정상에 올라간 선배들은 쉽게 자릴 내주지 않았다.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은 어찌나 많은지 텐빌스는 점점 다른 그룹에게 박수를 쳐주며 뒤로 밀려나는 게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5년차에 처음으로 텐빌스는 연말 시상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드디어 6년차가 된 그해. 넷째와 함께 이 갈고 돌아온 정규 3집이 발매됐다. 축제와도 같았다. 정규 2집 판매량의 4배 가까운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다. 열심히 재활에 성공한 넷째도 건강히 복귀했다. 스캔들 당사자지만 미워할 수 없는 희찬도 타이틀곡 작곡에 이름을 올렸고 모든 수록곡 작곡에 참여했다. 예술적 감각이 특히 좋았던 연오는 뮤직비디오 기획에 참여해 큰 화제를 모았다. 처음으로 지상파 음악방송 3사 1위를 거머쥐었고 희재 역시도 그 무렵 효원전자 공채에 합격해 드디어 회사원이 됐다. 모든 게 꿈처럼 완벽했던 그 해! 사건이 터졌다. 연말 시상식이 얼마 안 남은 때였다. 대상까지는 어렵더라도 본상 외 인기상 등을 기대해볼 수 있는 성적이었다. 좋은 기세를 등에 업은 것 같다고 희재와 추자도 입 모아 말했던 6년차 막바지의 겨울.



[안방극장 톱스타이자 기획사 fandora 대표 김환, 오랫동안 연예계에서 마약 밀거래 흔적 발견돼]



그해는 유난히도 마약에 대해 대중의 시선이 싸늘했다. 슈퍼스타가 마약으로 인해 너무나 괴롭다고 살려달라는 고백을 담은 라이브를 진행했었다. 대중에게 마약이 얼마나 위험한지 쇼크로 다가온 해였다. 그 시기 연예계에 마약을 조달하는 어둠의 큰손에 대한 수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중 김환도 장기간 연예계에 마약 조달을 하며 밀매해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fandroa는 공식적으로 김환이 실질적 경영업무에서 손을 뗀 지 오래되었으며, 텐빌스 프로듀싱 역시 미니 2집 이후로는 사실상 참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김환은 영웅에서 약쟁이로 몰락했다. 그가 본인 이름표처럼 만들어온 그룹도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게 물거품처럼 퐁퐁 터져나갔다. 텐빌스 외에 걸그룹 한 팀을 더 데뷔시켰고 신인 보이그룹 데뷔가 임박했던 fandora는 사실상 더는 운영할 수 없었다.



이미지가 가장 중요한 곳에서 약쟁이의 손으로 고르고 뽑고 그의 음악으로 만들었다는 텐빌스는 존재 자체가 부정됐다. 텐빌스의 멤버들 역시 과연 마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의심에서 멀어지기 힘들었다. 예정된 투어가 모두 취소됐다. 6년차 연말이라 재계약을 논해야 했으나 fandora 회사는 폐업수순 절차를 밟아야했다. 그룹의 존속이 휘청이지 않을 만큼 팬덤이 탄탄하거나 인지도가 단단하지 못했다. 모든 게 너무 오랫동안 김환의 명성 그림자로 이어졌다. 김환이 언제부터 약물을 투약해왔는지조차 정확하지 않았다. 이제는 모두 일반인으로 살고 있는 <김환밴드>의 오래전 베이스 멤버를 찾아 어렵사리 인터뷰를 시도했으나 김환밴드의 모든 멤버들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어렵사리 들은 말이라고는 “그럴 줄 알았다.”는 대답 한 줄이었다. 김환은 본인의 능력과 무한한 영감의 원천을 찾아 마약에 손댈 수밖에 없었음을 실토했다. 과연 텐빌스 멤버들이 약물중독 대표를 몰랐을까부터 시작해서 화살은 그들에게도 꽂혔다. 텐빌스가 적극적으로 해명할 기회는 없었다. 그들을 비추던 조명이 꺼졌고 환호성 들려오던 무대 커튼콜이 쳐졌다. 정상에 오르기 직전 같다고 느껴지던 그때 텐빌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희재 추자 연오 희찬이 스물여섯이 된 해. 판도라 기획은 결국 텐빌스 해체를 선언했고 멤버들은 자유로워졌다. 멤버 전원을 데려가는 눈먼 기획사는 없었다. 대중성을 잡지도 못했고 텐빌스에겐 아주 거대 팬덤이 있던 것도 아니라 그들이 중심 잡을 기둥이 없었다.



리더는 그룹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죄의 의미와 함께 연예계 은퇴를 암시하는 편지를 마지막으로 올렸다. 둘째는 음악 피쳐링을 몇 번 함께 해본 힙합 레이블에 들어간다는 소문만 돌 뿐 계약은 안 했다. 넷째는 작은 기획사에 들어갔고 막내는 부모님이 계신 미국으로 돌아갔다. 차연오는 아예 종적을 감추고 사라졌다.



여기까지가 텐빌스의 이야기다.



텐빌스의 모든 순간에 고희재와 김추자의 청춘이 묻어있었다. 연오를 보면서 희재는 쓰고 싶은 무한한 소설 영감을 받았다. 전공 수업엔 맘 붙이지 못하면서도 방에 처박혀 많은 내용의 소설들을 썼다. 기쁜 노래를 들을 때에는 마냥 희망찬 스토리들이 줄줄 솟구쳤고 어두칙칙한 노랠 들으면 땅굴 파고 들어가는 이야기들이 술술 잘도 나왔다. 툭하면 밥도 거르고 새벽 내내 노트북으로 이런저런 소설이 잘도 쓰였다.



사실 아이돌과 팬이 영원히 함께할 거라는 그런 맹세를 한 적은 없었다. 정상의 근처까지는 함께 가보고 천천히 바람을 느끼며 내려오고 싶었다. 덕분에 얻은 영감들로 글 쓰는 일이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 배워 고맙다고 말할 틈도 없이 모든 게 빠르게 소멸해버렸다.



열심히 한다고 뜻대로 다 되는 게 아니라는 것. 그것을 삼키기에 희재는 너무 어렸다. 승복하고 싶지 않은 결과였다. 이대로 모든 걸 끝낼 수는 없는데. 과녁 없는 오기가 닿을 곳 없이 끓었다. 더 마음이 타들어가는 건 가장 사랑했던 차연오는 그 한마디의 명제를 인생에 학습시키기로 작정한 것처럼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하는 인생도 있을 수 있는 법. 꼰대들이 쉽게 뱉는 흔한 한마디 안에 정말로 인생 궤도를 놓쳐버리기로 작정한 것처럼 차연오는 실패의 수면에 정직하게 잠겼다. 대중에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어떤 발버둥 하나 없이 고요하게 잠수해 사라졌다. 희재가 가장 분노하는 지점은 그것이었다. 차연오가 발버둥 치자고 발악했다면 기꺼이 말도 안 되는 물살과 파도 앞에서 함께 싸워줬을 수도 있는데. 너무 쉽게 파도 앞에서 포기해버리는 그 마음에 가장 상처 받은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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