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방에 입장하고 나면 처음에는 시스템이 개입해 기초적인 질문을 유도하며 5분이라는 시간동안 재미있게 대화할 수 있게 도와준다. 베타테스트가 아닌 추후 정식 버전에서는 3주 기간 동안 첫 스킨십 우정 기간을 가진다. ‘친구를 나의 춤춤으로 등록할까요?’ 물음에 둘 다 동의를 할 경우 ‘정식 춤춤’ 관계가 된다. 대화하면서도 오늘의 대화에 ‘춤춤 에테르’ 지수를 기록할 수 있다. 10일 연속 서로 만점의 춤춤 에테르 지수를 기록하면 두 사람의 프로필 메시지 아바타를 꾸밀 수 있는 귀여운 아이템들을 선물로 받는다. 3주가 지나고 정식 춤춤 관계가 되면 서로 춤춤 뱃지를 나눠갖고 두 사람은 ‘chum chum방’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곳에서는 1인이 제한 없는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이것은 추후 정식 버전에서 실현할 것이라고 공찬이 이야기해줬다.
“마음 맞으면 익명으로 춤춤 에테르 어플에서 계속 수다 떨게 해준다는 거네.”
“응. 서로 전화번호 물어보지 않고 우리 어플에서 계속 얘기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게 내가 계속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해.”
희재는 춤춤 성향 테스트를 진행하며 공찬과 통화 중이었다. 버그는 없는지 테스트 내내 통화했다. 다행히 큰 불편을 느낄만한 오류는 없었다. 이제 막 아무것도 없는 폐허의 행성에 착륙한 직후 같았다.
“네가 테스트를 끝냈으니까 내가 모은 테스터 중에서 너랑 알고리즘에 맞는 상대가 곧 매칭될 거야.”
“테스터는 언제 어떻게 모았대?”
“아 그게, 그, 제주도 있을 때 이렇게 저렇게 모았어.”
“아버님 서점 다녀간 손님들한테 전단이라도 뿌렸어?”
“어 맞아. 아버지 단골 손님 분들도 계시고 해서 꽤 모았어. 많지는 않은데.”
“그럼 나랑 매칭되는 사람 제주도 사람이려나? 나도 사투리 쓸까? 밥 먹언?”
“아니야 아마 도민이랑 관광객이랑 섞였을 거야. 신경쓰지 마.”
“하긴 이 어플 가입할 때 개인정보를 안 내니까 너도 신원은 모르겠구나. 매칭은 언제 끝나?”
“거의 다 됐어.”
기다리며 희재는 공찬이 사다 준 귤을 까먹었다. 드디어 공찬이 거의 몇 년을 매달렸던 프로젝트의 첫 테스트가 시작된다. 원기옥 모으듯 무릎을 세우고 앉았다.
“됐다 희재야. 지금 곧 대화방 입장하라는 알림 하나 갈 거야.”
[지금 나와 춤춤 에테르를 나눌 친구를 만나러 가볼까요? 버튼을 누르면 친구의 행성으로 착륙을 시작합니다.]
귀여운 알림이 떴다. 희재가 착륙 버튼을 눌렀다. 일반 메신저와 비슷한 대화방이 떴다. 드디어 화면에 나의 새로운 춤춤이 입장했습니다, 알림이 떴다.
“그럼 써보고 다시 전화해줘 희재야. 집중해서 잘 얘기해보고.”
전화를 끊자마자 메신저 창에는 알림 메시지가 하나 더 떴다.
[나의 춤춤과의 첫 만남! 두 사람이 먼저 다정하게 인사를 나눠보세요. 친구에게 답장이 오기 전까지 나는 답장을 보낼 수 없으니 신중하게 보내주세요.]
-안녕하세요!
희재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이런 플랫폼은 익숙했다. 전국민이 다 쓰는 메신저도 있고, 팬과 연예인이 소통할 수 있는 프라이빗 메신저 어플리케이션도 오랫동안 텐빌스 덕에 써봤다.
-안녕하세요.
상대에게서 매우 느린 답이 돌아왔다. 하마터면 통신 오류냐고 공찬에게 전화할 뻔했다. 고작 다섯글자를 치는데 일분 넘게 기다렸다.
-우와 이거 진짜 신기하네요.
공찬에게 제공받은 ‘제주도에서 전단지를 받아 베타테스터로 춤춤에 가입한 사람’처럼 임했다. 그래야 상대도 의심 없이 이 어플 대화에 녹아들 터였다. 상대는 공찬이 전달한 전단지를 보고 굳이 어플에 가입해준 고마운 은인이었다.
-그러게요
상대는 이 네글자를 치는데 1분 넘게 할애했다.
[친구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지 간단히 소개해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은 아주 조금 친구 행성에 나의 첫발을 디뎌보는 시간을 가져봐요]
두 사람 대화방에 다정한 안내문이 떴다.
-저는 사실 친구가 많지 않아서 한 번 가입해봤어요.
희재가 솔직하게 다가가고 싶어 본인을 소개했다.
-저도요.
명료하지만 느린 답이 돌아왔다.
[지금 나는 뭘 하고 있는지 친구와 나눠봐요]
시스템, 즉 공찬이 시키는대로 희재는 다시 입력했다.
-저는 지금 노래 듣고 있어요.
-어떤 노래 좋아하세요?
희재는 유튜브 URL을 전송했다. <숨겨진 케이팝 개명곡 플레이리스트> 이름의 동영상이었다. 이 플레이리스트는 희재가 만든 리스트로, 약 50여개의 아이돌 수록곡들로 구성됐다. 45곡이 텐빌스의 수록곡, 5곡은 다른 아이돌 그룹 곡을 넣었다. 유일한 댓글은 ‘무슨 노래가 다 텐빌스밖에 없네.’였다.
-다 들으려면 3시간 넘게 걸리는 플레이리스트네요.
-제가 저녁에 집에 와서 잠들기 직전까지 매일매일 듣는 리스트에요. 숨겨진 명곡들로 구성됐죠.
-이런 노래 좋아하는구나.
희재는 내심 ‘저도 좋아하는 노래에요’ 같은 반응을 기대했지만 그런 반응은 돌아오지 않았다.
[서로 소개도 마쳤다면 오늘 내 하루에 침투했던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는 건 어떨까요?]
아직 상대 소개는 듣기도 전인데 알람이 떴다. 타자가 느린 사람에게는 소개 시간이 너무 빠른 것 같다고 공찬에게 말해야겠다.
-저는 오늘 하루 종일 기대했어요. 이 어플로 어떤 분 만나게 될까…. 기대 안 하고 가입한 어플인데 재밌는 것 같아요. 행성 로켓 디자인 이런 것도 아기자기 너무 귀여워요.
희재는 자꾸 춤춤 홍보대사처럼 말하고 싶어 손가락이 근질댔다. 어플에 대한 칭찬을 유도해 공찬에게도 전하고 싶은 희재표 우정이었다.
-저도요.
다시 같은 답이 돌아왔다. 희재는 메시지를 보내는데 10초도 안 걸렸고 상대는 곱절 이상 할애했다. 부모님 세대의 어르신일까. 공찬 아버님이 아들이 만든 거라고 본인 친구들에게도 소개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정에 나이도 국경도 없다는 철학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집중하기 위해 피곤한 눈꺼풀을 비볐다.
-저도 되게 신나요! 솔직히 저는 이런 어플이 세상에 왜 안 나오나 했거든요! 솔직히 별별 어플이 다 있고 별별 사람 이어주는 어플은 다 있는데! 왜 진짜 순수하게 친구 만들어주는 어플은 없는지! 이런 게 생기기를 아주 옛날부터 기다렸어요!
희재가 결국 참지 못하고 춤춤 홍보대사처럼 말했다.
-신기한 것 같아요.
상대 단답에 시무룩할 틈도 없이 알림이 떴다.
[대화 시간이 45초 남았습니다. 오늘 밤을 잘 보내라고 친구에게 인사해주세요. 내일부터 대화할 시간을 의논해서 정한 뒤 입력해주세요.]
-저희 내일 몇시에 대화하실래요? 시간은 한 번 정하면 앞으로도 계속 같은 시간에 만나야 하나봐요.
희재가 모르는 척 말했다. 친구로 익숙해지기 전까지 <시간의 루틴>을 만들어 만남에 익숙해지게 하자는 게 희재와 공찬의 지론이었다. 상대가 워낙 느린 탓에 대화 주도권이 오롯이 희재에게로 돌아왔다.
-이 시간 괜찮으세요?
지금은 새벽 한 시 가까운 시간이었다. 상대에게는 이 시간이 편한가보다.
-네네 저는 상관 없어요!
-그럼 괜찮으시면 이 시간으로 할게요.
[오늘의 정해진 대화 시간이 끝났습니다. 내일부터 만날 시간을 입력해주세요. 초록 말풍선 친구가 시간을 입력해주면 내일 그 시간에 대화창이 열립니다. 우리 내일 다시 만나요.]
초록 말풍선은 상대였다. 희재는 빨간색 말풍선이었다. 희재는 새벽 한시 가까운 늦은 시간에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했다.
‘저는 자정 넘은 새벽이 좋아요. 세상이 불 꺼지고 딱 우리만 남은 것 같잖아요.’ 언젠가 팬들과 하는 라이브 방송에서 연오가 말했었다. 수면 루틴을 소개해주겠다면서 룸메이트 넷째와의 방을 소개했었다. ‘저는 자정이 넘으면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이야기 하고 싶은데, 민이는 아침에 빨리 일어나는 친구여서 일찍 잠들어서 아쉬워요. 그래서 자꾸 늦은 시간에 라이브를 켜나봐요. 여러분들이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주무셔야 하는데 맨날 늦은 시간에 와서 미안해요.’ 자정 넘어서만 라이브 켜던 연오였다. 라이브 방송 제목은 항상 방송을 켜는 시간이었고 언제나 <1234>였다. 숫자가 연결된 시간이라 시간이 예쁘지 않아요? 별다른 스케줄 없는 날이면 연오는 자주 <1234> 라이브로 찾아왔었다. 밤 12시 34분 연오 라이브 보는 게 희재 새벽 루틴 중 하나였다. 초록 말풍선의 상대가 입력한 앞으로 두 사람의 대화 시간은
AM 12:34
1234였다.
희재는 상대가 입력한 시간을 보면서 손톱을 딱 소리 나도록 물어뜯었다. 일이삼사. 저 시간을 타인에게서 지정받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 기시감에 심장 뛰는 뻐근함이 오랜만에 느껴졌다.
답장 한 번 보내는데는 느렸던 상대가, 1234 대화 시간을 지정하는 데에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