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성공찬이 만든 어플 아니랄까봐 설명 긴 것 좀 봐.”
추자가 실험용 어플 곳곳을 눌러보며 웃었다.
“이거 누르면 뭐야? 왜 글씨가 두 번씩 번져서 보여?”
“아 이거는 얼른 가서 고쳐야겠다. 원래 글씨가 한번만 나와야 되는데.”
“여기도?”
공찬과 추자가 어플의 쓰임에 대해 토론하느라 희재는 혼자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은 별이 많이 안 보이네. 하얀 입김이 펄펄 나오는 그 중얼거림을 두 사람은 듣지 못했다.
애매한 추위에 오래 떠들지 못하고 세 사람은 금방 내려왔다. 이모에게 인사를 마친 세 사람은 나란히 분식집을 나왔다. 추자가 경기도까지 온 공찬을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공찬이 한사코 거절했다. 오랜만에 서울 버스를 타고 싶다고 완곡하게 고집을 부렸다.
“어플 얘기는 다음에 만나면 또 해줘라. 나 오늘은 먼저 간다.”
추자가 여전히 업무 전화가 쏟아지는 핸드폰을 흔들며 인사했다. 추자 차 뒤꽁무니에 두 사람은 손을 흔들어주고 공찬의 버스정류장 앞까지 걸었다. 희재와 추자 동네인 경기도 외각의 분식집에서 S대 정문앞 공찬 옥탑까지는 꽤 멀었다.
“요즘 글은 잘 써져?”
“차연오 그 자식이 사라지고 난 뒤로는 그분이 아예 안 온다 공찬아. 뮤즈가 사라지면서 내 글도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림.”
희재가 개그프로그램에서 유행하는 개그맨 말투를 흉내냈다. 구성진 말투에 공찬이 웃으며 이게 다 차연오 때문이네, 같이 장단 맞춰줬다.
“얼른 고희재한테 다시 글빨 주는 뮤즈 나타나면 좋겠다.”
“성공한 씨이오 성공찬한테 이런 칭찬 받으니 감개무량해. 넌 잘 될 거야 공찬아. 말로만 했던 걸 진짜로 해내네. 내 친구지만 진짜 멋있는 거 알지. 너 때문에 내 어깨가 지금 지구 뚫고 나갈 판이야.”
“고희재가 얼른 성공한 작가 돼서 춤춤이 영감 주는 뮤즈였다고 홍보해줬으면 좋겠다.”
“와! 공찬아! 딱 기다려! 내가 내 책 띠지에다가, 내 모든 글의 원천은 춤춤에서 얻었다고 쓴다!”
웃음이 밤바람에 나부꼈다. 저 멀리서 초록색 마을버스가 왔다. 이 버스정류장 이름도 희재분식이었다.
“희재야 어플은 내가 다시 전화해서 알려줄게. 안 복잡해서 너도 금방 알 거야. 내일 접속하면 돼.”
“어 그래 공찬아 알겠어. 또 전화하자. 버스는 눈치없이 벌써 오고 난리야.”
공찬이 맨 앞자리에 앉아 창문을 열었다. 손 흔들 타이밍도 없이 버스가 출발했다. 아무것도 안 보이는 버스 뒤꽁무니를 보며 희재는 한참을 서있었다.
집에 돌아오니 기분이 이상했다. 친구는 벌써 꿈을 찾아 저만치나 앞서갔는데 고희재는 여전히 꿈은 꿈으로 남겨둔 채 현실에 두 발을 붙이고 서있었다. 침대로 낙하하고 춤춤 에테르 어플에 다시 들어갔다. 그 시절 농담처럼 오간 고민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어 웃음이 났다. 우주여행 컨셉으로 광활한 지구인들의 우정을 이어주는 메신저. 꿈. 그 반짝이는 것이 현실이 되는 기분은 뭘까. 그것은 또 다른 착륙의 느낌일까 아니면 끝없이 설레는 비행의 기분일까.
희재도 소설을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머릿속이 텅 비었다. 쓰고 싶도록 심장 뛰게 만드는 그 어떤 스토리와 캐릭터도 없었다. 반짝이는 꿈을 찾았다면 로켓을 만들어야했다. 그래야 그 로켓을 타고 빛나는 꿈에 닿을 수 있다. 어떤 청춘은 로켓을 만드느라 젊음을 다 축내는 것은 아닐까. 또 누군가는 기대한 적도 없던 로켓에 빠르게 탑승하느라 너무 빨리 자신의 꿈인 북극성에 닿았다. 북극성엔 너무 빨리 도착해도, 또 영원히 도착하지 못해도, 완벽한 해피엔딩이 없었다. 그게 반짝이는 꿈이 가진 딜레마였다. 포기하기엔 머리 위의 그 북극성이 너무 밝았다. 막상 도착한 그 별은 황폐하고 적적하고 살갗을 태워버릴 정도로 춥기만 할 수 있대도, 멀리서 보는 그것은 아름답게 반짝이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기만 했다.
스물한살 초여름 희재분식 옥상. 풀벌레 우는 소리가 꼭 노랫자락 같이 정겨웠던 밤. 추자는 팩소주에 취해 잠들었고 공찬과 희재가 별을 보며 떠들었다.
공찬아 있잖아 세상은 왜 사랑 타령만 할까. 지겹지 않아? 진부하지 않아? 사랑이 최고야? 사랑만 감정이야? 연인만 관계야? 커플 아니면 다른 것들은 다 가치 없는 관계야? 왜 하룻밤 파트너 만들고 결혼 상대 만나게 해주는 업체랑 사이트들은 있는데, 왜 진정한 우정을 만나게 도와주는 어플은 없어? 왜? 인생에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 건데? 익명으로 사랑은 할 수 있지만 익명으로 어플은 못 구해? 공찬아 나는 우정도 구할 수 있는 어플이 있었으면 좋겠어. 왜 친구는 학교 회사에서만 사귀어야돼? 동호회를 들라고 하겠지? 근데 그게 힘든 사람도 있잖아. 사랑 같은 거 없이 좀 담백하게 우정을 쌓을 순 없는 거야? 공찬아 나는 걔한테 좋은 친구들이 있었으면 좋겠거든. 인생에 친구가 한명만 있어도 전화로 내 하루를 주절댈 수 있잖아. 걔 같은 애들이 얼마나 외로움이 많은데. 외로움의 적은 우정이거든. 그런 애들이 적당한 익명성에 숨어서 말 잘 통하는 친구 사귈 수 있게 해주는 어플! 공찬아! 너 그걸 개발해봐라! 돈방석에 앉진 못하겠지만! 아무도 안 만드는데는 이유가 있겠지만! 온갖 음침하고 불순한 의도 갖고 들어오는 인간들 쳐내느라 힘들겠지만! 99%의 인류가 우정보단 사랑을 택하겠지만! 근데 딱 1%! 그 1%에게는 우정이 간절하게 고플 수도 있잖아? 공찬아, 인생에 꼭 사랑만 있어야돼? 우정으론 못 살아? 공찬아! 학교도 안 다니고, 직장도 안 다니고, 동호회 가입할 수도 없고, 밖에 나다니기가 쉽지도 않고, 생활반경도 좁고, 그런 사람이 친구를 사귈 수 있게 세상이 도와줄 순 없을까? 명색이 4차산업혁명 시대잖아! 넌 그 4차산업혁명을 앞에서 끌고 가고 싶은 사람이잖아! 소셜 네트워크처럼 나 얼마나 잘났고 행복하고 친구 많은지 자랑하는 어플 말고! 집구석에서 배달만 하면 전국팔도 지구를 가르고 모든 게 총알배송 오는 세상인데! 펜팔로 익명 친구 사귀던 그 옛날의 낭만이 다 죽어버린 게 말이 되냐! 4차산업혁명시대에 맞는 낭만을 개발해줘! 새벽배송으로 총알같이 나랑 딱 맞는 우정이 배달오는 세상! 공찬아 네가 만들어주면 안 되겠냐? 친구 답장을 기다리며 두근대는 그 낭만시대를 성공찬이가 다시 열어재끼는 거야!
세상에 우정을 찾아주는 낭만적인 어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발상의 시작점은 차연오였다. 텐빌스가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의 일이었다. 지금 가장 생각나는 친구를 적으라는 피디의 미션에 연오가 무안한 표정으로
“멤버들을 적어도 될까요?” 물었다.
피디는 실제 친구를 적으라고 했다. 그러자 연오는 연필을 들고 한참을 고민하다 난감한 얼굴을 했다. “생각나는 친구가 없어요. 저한테는 멤버들밖에 없어요. 학교를 거의 못 다녀서….” 그 말이 가시처럼 희재 목에 턱 걸렸다.
친구가 없다는 연오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신생기획사 소속 텐빌스는 같은 소속사 선후배도 없고 다들 내향적인 성격 탓인지 아이돌 친구도 많이 없었다. 이따금씩 시상식 같은 큰 무대에서 텐빌스는 다섯끼리만 똘똘 뭉쳐있는 게 팬들에게도 자주 포착됐다. 까불까불한 희찬 조차 다른 아이돌 그룹엔 친구가 없다고 털어놨다. 희재는 연오에게 연예계 친구들보다는 본질적인 진짜 벗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심란한 어느 밤 무작정 연락해서 오늘의 공허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며 위로받을 수 있는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은 거였다. 일반인들과 뒤섞여 살 수 없는 곳에 사는 애들도 세상과 연결되는 다리를 놔주고 싶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사랑의 작대기 이어주기에만 관심이 넘쳐났다. <하트 시그널>은 있어도 <프렌드십 시그널>같은 건 기획조차 되지 않았다. 우정은 사랑만큼 인간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감정이 아니었다.
우정도 최첨단 알고리즘으로 매칭해주는 뉴노멀 시대를 만들어봐 공찬아. 희재의 말에 공찬 눈빛이 반짝였다. 초기 기획 어플 이름은 ‘춤춤’이었다. 후지다면 참으로 후진 작명 센스였다. 국문학과와 컴퓨터공학과를 복수전공하는 반반 인간 공찬의 센스였다. 추자는 좀 난감하게 들린다고 했다. 일단 사람들은 chum이라는 영단어가 ‘벗’, ‘친구’를 뜻한다는 걸 모를 거라고 충고했다. 춤 배우는 어플 같다고 했다. 하지만 공찬은 chum이 ‘춤’도 되지만 ‘첨’으로도 읽혀서 좋다고 했다. 새 ‘친구’를 ‘처음’사귀는 마음을 의미하는 중의적 의미가 가능하다나 뭐라나. 추자는 이해하지 못할 감성이라고 혀를 내둘렀는데 희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 희재의 동의로 인해 3명 중 과반 이상이 통과시켰다. 어차피 추자는 저 농담의 춤춤이 실제 어플로 나올 거라는 기대 자체를 안 했다.